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하는 상상은 누구나 해봤을 거예요. 내 삶은 내가 선택한 것들이 축적된 결과물입니다. 내 삶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을 또렷이 인지하며 고민을 거듭할 때도 있지만,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나도 모르게 흘러가기도 하지요.


어린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윌라의 인생을 담담히 그려낸 소설 <클락 댄스>. 윌라는 아주 평범한 우리 할머니, 내 어머니 혹은 나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일컬어지는 앤 타일러 작가. 프로필 사진 분위기가 <클락 댄스>의 윌라를 만나는 듯한 기분입니다. 늘어지지 않는 문체에 흡인력 무척 좋은 소설입니다.


1967년 초등학생 시절, 1977년 대학생 시절, 1997년 두 아들을 둔 엄마 시절을 거쳐 2017년 예순한 살의 나이에 이른 윌라. 과거 시절은 윌라의 인생에 변곡의 기폭제가 된 사건을 보여줍니다.


열한 살 윌라는 집을 나가버린 엄마 때문에 행복한 가정이란 뭘까 고민합니다. 금세 되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살피는 윌라와 여동생은 이미 큰 고통을 받은 상태입니다. 괴팍한 엄마 밑에서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을 겪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결혼을 원하는 남자친구 때문에 윌라가 원했던 공부 라이프에 지장이 생깁니다. 결혼 대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기에 선뜻 결정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로부터 20년 후, 어느새 장성한 두 아들을 둔 윌라에게 교통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내는 시련이 닥칩니다. 첫째를 임신하면서 결국 학업을 중단했던 윌라는 아내로,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왔지만 결국 크나큰 상실감을 안게 됩니다.



그리고 할머니라 불리는 나이에 이른 2017년. 두 아들은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고, 윌라는 재혼을 해 평화로운 일상을 보냅니다. 어느 날 낯선 이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윌라는 엄마에게서 받은 고통을 몸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늘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윌라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는 '예측 가능한' 엄마입니다. 엄마의 기분을 살피지 않아도 되게끔 말이지요.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눈치 있게 남편을 대하는 요령을 터득하는 윌라입니다. 이런 모습은 상대의 감정과 기분을 파악하느라 자기주장 없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전화를 받고 생기는 일들은 윌라의 가치관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뭔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남들이라면 하지 않을 일을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윌라.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에는 무엇이 윌라의 마음을 건드렸길래 행동의 변화를 주게 되었는지, 윌라의 인생 제2막의 방향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읽게 됩니다.



<클락 댄스>에는 사와로 기둥 선인장을 좋아하는 윌라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선인장은 특별한 보살핌 없이도 환경 적응을 잘 하며 무심하게 사는 것 같지만, 모든 걸 담담하게 참고 견딘 차분하고 인내심 많은 식물입니다. 윌라의 인생과 닮았습니다.


표제이기도 한 '클락 댄스'는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것처럼 째깍 소리에 맞춰 아이들이 팔을 움직이며 춤을 추는 장면에서 언급됩니다. 그런데 윌라가 생각하는 클락 댄스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가버리느라 흐릿한 색깔만 보이다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찰나의 인생과도 같습니다.


상실감에 빠졌을 때 윌라가 들은 조언이 있습니다. 더이상 기대할 게 없을 때면, 하루를 각각의 개별적인 순간들로 쪼개 그 순간들에만 집중해보라고 말이죠. 하지만 윌라에게는 썩 도움이 되진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우리는 광활한 우주를 떠다니는 아주 미미한 유기체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이죠.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윌라에게 새롭게 찾아온 기회를 두고 일어나는 변화를 그린 소설 <클락 댄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왜 그냥 바라기만 해요? 왜 우유부단하게 망설이기만 하세요? 왜 모든 일에 정면으로 나서지 않고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 있는 거예요?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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