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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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의 가장 큰 세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작가의 소설이 드디어!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 드라마가 멋들어지게 버무려진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손바닥 크기의 앙증맞은 책인 만큼 분량은 짧아도 스토리는 강렬합니다.


아파트 화재로 추락사한 아버지. 집 안에서 홀로 떨고 있는 젊은 딸에게선 폭행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혼자 살던 빌라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30대 K 씨. 그 집엔 청테이프로 묶인 채 감금된 여성이 발견되었습니다. 혼자 사는 집에서 익사한 갑질 사장. 폐에서 플랑크톤이 검출되었지만 욕실은 건조된 상태였습니다. 세 사람의 죽음은 미제 사건으로 남을 만큼 의문이 가득합니다.


세 사건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건 오십대를 앞둔 중년 여성 '시미'입니다. 젊은 취향도 못 따라가고 그렇다고 꼰대까지는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선 시미는 타투 대신 문신이라는 고전적인 이름이 더 익숙할 정도의 캐릭터입니다.


힙하지도 쿨하지도 않은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시미는 직장 후배 '화인'의 목덜미에 있는 샐러맨더(도롱뇽) 타투를 보고 생각이 많아집니다. 직장 상사는 화인을 발랑 까진 아가씨로 단언하며 무례한 발언을 일삼지만, 시미는 화인으로부터 문신술사를 소개받아 가게를 찾아가 볼 정도로 타투에 끌리게 됩니다.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 나온 후 혼자 살아온 시미. 아이는 아빠가 데리고 살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자 시미는 아이를 만나보고 싶어 했습니다. 아이에게 다가서기 위해 용기를 냈지만, 이제는 아이가 엄마를 거부합니다. 아이의 의사로 더 이상 만날 일 없는, 아픔을 가진 시미에게 타투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됩니다. 자신만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수단으로 바라봅니다. 문신의 문 자도 모르고, 부작용에 대한 걱정도 많으면서도 결국 문신술사를 찾아갑니다.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그 와중에 화재로 인한 추락사 사건의 딸이 화인이라는 게 밝혀집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무차별적 경멸과 폭력의 희생자인 화인의 모습은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모멸적인 언어폭력을 포함해 무수히 많은 침해를 입는 여성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다음, "정말로 나를 지켜줬어요. 제일 절박했던 순간에. 이러다 죽을 것 같았을 때."라며 화인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의문을 더합니다. 화인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지켜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래된 체념과 무기력에 침잠된 사회적 약자들의 내면을 다룬 이야기를 써 온 구병모 작가의 소설들은 뻔한 결과물로 이끌지 않아 통쾌함을 동반한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됩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도 그래요. 무엇이 자신을 지탱해줄지 암담한 현실에서 그 사람을 지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는 타투에 숨은 비밀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충동이 솟는다는 건, 태울 에너지가 생성됐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 누구보다도 빛나기를 바라는 열망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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