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한 녹나무를 지키는 파수꾼과 녹나무에 얽힌 이야기 <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 데뷔 35주년을 기념해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에서 동시 출간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는 소설입니다. 보름달이 뜬 밤, 웅장한 녹나무, 기원을 바라는 마음을 어여쁘게 표현해낸 책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반짝반짝하는 금박이 신비함을 더해줍니다. 


추리소설계의 거장이면서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따스한 이야기를 풀어낼 줄 아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 이번에도 뭉클한 여운을 안기는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한 달 전만 해도 경찰서 유치장 신세였던 '레이토'. 지금은 녹나무 파수꾼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지름이 5미터는 되겠다 싶은 거목에 20미터 넘는 높이의 웅장한 녹나무를 지킨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요.


아버지 없이 태어난 레이토는 어린 시절 어머니마저 병으로 잃고 할머니와 지내며, 그동안 어떤 식이든 살아갈 수만 있으면 된다는 느낌으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애초에 가족의 사랑과 정을 못 받고 살아왔으니 든든한 배경 하나 없이 홀로 버틴 셈입니다. 그렇다고 자수성가 같은 일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변변찮은 일을 하다 결국 유치장 신세까지 지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배다른 이모라는 사람이 나타나 곤경에 처한 레이토를 빼내주었고, 가문의 부지에 있는 오래된 녹나무의 파수꾼 역할을 맡깁니다. 유치장에 있을 수는 없으니 이모의 제안대로 했지만 그조차도 동전 던지기로 자신의 운명을 걸어버릴 정도로 자존감이 없는 레이토입니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분명한 자기 의사에 따라 결정 내리지 못하는 염세적인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레이토. 요즘 시대 어쩌면 낯설지 않은 유형 아닐까요. 어떻게 살아야 인생을 제대로 살아내는 인간이 되는 걸까요.


"결함 있는 기계는 아무리 수리해도 또 고장이 난다, 그 녀석도 마찬가지여서 어차피 결함품, 언젠가 훨씬 더 나쁜 짓을 저질러서 교도소에 들어갈 것이다."- 녹나무의 파수꾼 



녹나무 파수꾼 일을 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한 나무라는 녹나무의 밑기둥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만한 거대한 구멍이 나 있고, 안쪽에는 동굴 같은 공간이 있습니다.


녹나무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령 마니아들에게도 인기 있는 파워스폿인 녹나무. 낮에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있지만, 밤에는 기원을 드리러 오는 예약자만 받기에 녹나무 파수꾼은 밤에 그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밀초를 주며 "OO님의 염원이 녹나무에게 전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기원드리러 온 사람이 무사히 기원을 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녹나무 파수꾼. 하지만 기원의 내용이나 기원자에 대한 것은 절대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우연히 알게 된 대학생 유미와 얽히게 되면서 녹나무에 관한 비밀을 하나 둘 알게 되는 레이토. 그믐날과 보름날 밤에만 기원을 드리는 이유, 미신도 전설도 아니고 정말로 소원을 이루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인지. 저마다의 사연 속에서 의문들이 밝혀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염원을 녹나무를 통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걸까요. 녹나무의 수수께끼는 추리의 형식을 취하지만 하나하나의 사연들은 가족애와 사랑을 동반한 관계에 대한 것들입니다. 살면서 후회했던 것, 물려주고 싶은 꿈... 스스로도 미처 몰랐거나 알고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기도 하고, 가슴 깊이 간절히 원했던 것들입니다. 만일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당신은 무엇을 빌겠습니까.


정통 추리물을 원했던 독자라면 장르 면에서 아쉬울 순 있겠지만, 워낙 작품 세계관이 넓은 히가시노 게이고니까요. (저는 그의 정통 추리물보다 그 외의 장르 쪽을 선호하는 편이긴 해요) 감동 스토리도 너무 질척이지 않게 절묘한 완급 조절, 순삭 흡인력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다운 소설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