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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나무꾼
쿠라이 마유스케 지음, 구수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평점 :
오랜만에 일본 미스터리 소설 손에 잡았어요. 그동안 살짝 심드렁했던 일본 미스터리물에 다시 흥을 돋울만한 소설을 마침 만나서 성공적!
제17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수상작 <괴물 나무꾼>. 첫 소설부터 대박을 터뜨린 쿠라이 마유스케 작가의 소설입니다. 자꾸 괴물 사냥꾼이라고 말하는 통에 ㅋㅋ 나무꾼!이에요.
연쇄살인마를 쫓는 사이코패스 변호사의 끈질긴 추격전이라는 문구가 절 사로잡았습니다.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 사이코패스에 훅 빠졌던 전적이 있는지라 사이코패스물이면 일단 그냥 좋아합니다. <괴물 나무꾼>에서는 그냥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사이코패스 변호사라니. 명예와 돈을 사랑하는 변호사라면 있을법한 캐릭터라 생각되어 흥미진진해졌습니다.
토우마 부부 집에서 네 명의 유아를 구조하고, 열다섯 구의 유아 사체가 발견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26년 전에 벌어진 이 사건이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전초가 될 거라는 걸 보여줍니다.
권력과 명예를 쫓으며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니노미야 아키라는 변호사입니다. 그는 사이코패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저 자신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사람을 살해하는 살인자입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없어서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 변호사. 그러던 어느 날 급습을 당합니다. 괴물 마스크를 쓰고 손도끼를 든 남자로부터.
이쯤에서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를 한 편 소개합니다. 나무꾼으로 변신한 괴물이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는 괴물 나무꾼 이야기입니다. 평소엔 나무꾼으로 변신해 살고 있다 보니 자신은 괴물인지, 나무꾼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이 이야기는 소설 <괴물 나무꾼>에서 사이코패스 살인자의 비밀과 연결됩니다.
손도끼로 머리는 다쳤지만 죽을 위기에서 벗어난 니노미야는 경찰이 잡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놈을 잡아 죽이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괴물 마스크에 대한 살의가 솟구칩니다.
그런데 입원해 있는 동안 자신의 머릿속에 칩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뇌 신호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사람을 보조하기 위한 의료기기로 사용되었던 뇌칩이 윤리적 문제로 20년 전에 금지되었건만. 어린 시절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갔다니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걸까요. 무언가를 무서워하는 본능이 없던 그에게 그 순간만큼은 공포의 감정이 찾아올 정도입니다.
괴물 나무꾼과 사이코패스 변호사가 서로를 죽이려 드는 상황입니다. 괴물 나무꾼은 연쇄 살인으로 언론에서 떠돌 만큼 이미 몇 차례 살인을 저지른 상태였습니다. 연쇄살인범은 피해자들의 뇌에 집착했습니다. 26년 전 사건을 이미 소설 초반 오픈했기에 연결 고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의 정체, 사이코패스 변호사와의 머리싸움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집니다. 사이코패스 변호사도 악인, 괴물 나무꾼도 악인의 행보를 보였으니 누가 이길 것인가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괴물 나무꾼>은 악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평범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견고한 듯 보이는 선과 악의 경계가 너무나도 쉽게 무너질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그 근원조차도 헷갈리게 만듭니다. 결말을 접하고서 통쾌함을 느낀다면 작가의 흐름에 동참한 셈이겠지요. 분명 뭔가 이건 도덕적으로 아닌데? 싶은데도 찝찝함 따위 쿨하게 날려버릴 수 있는 묘하게 후련한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