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 전화기 너머 마주한 당신과 나의 이야기
박주운 지음 / 애플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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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백수 생활과 짧은 직장 생활을 오가며 20대 시절을 버틴 평범한 청년 주운 씨.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와 미래의 불투명함으로 퇴사를 반복하다 월세살이의 급한 불은 꺼야 하기에 3개월만 다녀야지라는 생각에 들어간 콜센터. 그리고 어쩌다 보니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대부분은 콜센터 상담원 일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시작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번듯한 직장을 알아보기 전 잠시 머무는 곳 정도로 생각하며 시작했겠지요. 어김없이 몇 개월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이 속출하는 곳이지만, 퇴사 후에 다시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장기근속자들도 있을 만큼 그곳도 누군가에겐 애증의 직장입니다.


뮤지컬, 콘서트, 연극, 전시, 체험, 행사 등의 티켓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한 주운 씨. 온갖 군상의 고객을 응대해봤고 실수도 하며 5년의 콜센터 근무를 버텼습니다. 버텼다는 말을 굳이 쓴 건, 떠나고 싶은 업이지만 당장 떠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다닌 세월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업무 태만 따위의 일은 벌이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있을 때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업무에 충실했습니다.





기록이자 일기, 고발이면서도 하소연인 글을 쓰며 버틸 수 있었다는 콜센터 상담원 박주운 저자의 에세이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감정노동자로서의 애환을 낱낱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예매한 티켓의 취소, 예매 방법, 할인 적용 방법 같은 간단한 것에서부터 본사나 공연 기획사 확인을 거쳐야 하는 복잡한 것까지. 티켓 예매처에서 티켓팅을 한 번쯤 해 본 사람들이라면 콜센터에서 하는 일들이 어느 정도 짐작은 될 겁니다. 그 짐작을 넘어서는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는 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지만요. 아무튼, 상상 그 이상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감정노동자들의 고통은 뉴스를 통해 한 번씩 터지기도 했었죠. 그저 극소수 일부만의 문제였을 거라며 남일로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넘어갔던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감정노동자.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구조적 취약성은 그대로 안고 있는 운영방식 때문에 감정노동자들의 상처는 여전합니다.


이상한 것 투성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규칙에도 적응이 되는 게 인간의 모습입니다. 실수를 할 때도 있는 법. 하지만 실수에 자존감이 바닥칠 정도로 이어진다면? 완벽한 나의 모습을 기대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되면서 주운 씨도 자발적 노예로서 점차 자기 비하의 덫에 빠지는 걸 인지하면서도 다니고 있었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문제는 그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자질을 탓하는 것으로 끝날 게 아니었습니다.


온갖 사람을 상대하는 상담원은 일을 할수록 멘탈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 상처 입은 마음을 스스로 마주하기 힘들어 회피하는 건 아닌가 하며 자조하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공감되었어요.


"고객에 맞춰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진짜 내 마음이 어떤지는 돌아보지 못한다." -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성 통화보다 콜 수에 희비가 교차하는 구조이기에 보통 고객이 갑질한다는 표현에 익숙하지만 고객은 갑이 되기도 하면서 정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놀라웠어요. 콜센터가 아웃소싱으로 대부분 운영되기에 본사와 기획사가 갑이고, 콜센터 상담원은 최전선의 총알받이일 뿐이었습니다.


왜 상담원들의 말투와 멘트는 비슷비슷한지, 칭찬을 하면 해당 상담원에게 인센티브가 적용되는지, 상담원도 진급을 하는지, 월급은 얼마인지 등등 콜센터 상담원의 실상을 아낌없이 털어주는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울컥하며 눈물 나게 하는 에피소드, 웃음 빵 터지게 하는 에피소드, 분노하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합니다. 콜센터 상담원 일을 하고 싶거나,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 되는 조언을 진솔하게 나눕니다. 콜센터를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를 배운 건 덤입니다. 이제는 퇴사하고 새로운 길을 걷는 주운 씨의 앞날도 술술 잘 풀리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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