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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구매
백선경 지음 / 든해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백선경 작가의 책은 읽은 적 없지만 12년 만의 신작이라는 <공동구매>로 미처 몰랐던 보물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스릴러 소설이지만 영미권 스릴러와는 결이 다른 한국형 스릴러 다운 맛이 제대로였어요.
간혹 드라마나 개그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는 바바리맨.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바바리맨 출현 기사를 볼 때마다 경악스럽습니다. 소설 <공동구매>에서는 바바리우먼이 등장해 소설 초반부터 충격 한 방 안겨주고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정신적으로 불안한 화영의 이야기는 과거의 기억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주로 남성이 하기에 바바리맨이라 불리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화영의 모습을 보며 과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화영의 이야기에 이어 콜린이라 불리는 인물의 이야기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탐욕이 뚝뚝 흘러넘치고 뒷담 쩌는 이야기들 일색입니다.
공장 잡역부 일을 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난 상황에서 우연히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된 콜린. 김치를 팔려고 만든 카페를 시작으로 기민하게 세상의 변화를 캐치해 공동구매 카페를 만들어냅니다. 소설에서는 소비력 강한 주부들이 모인 공동구매 카페에서 벌어지는 천태만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찌나 리얼한지 백선경 작가가 실제로 공구 카페 운영 체험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가 일품입니다.
불운한 어린 시절을 겪은 화영은 타인을 믿지 못하면서도 정에 굶주립니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무너져있습니다. 기억의 덫에 걸려 공포감에 사로잡혀있으면서도 죄를 지은 자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화영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를 위해 행동합니다. 그것이 바바리우먼의 행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밝혀지는 과정이 소설의 백미입니다.
콜린의 공동구매 카페 이야기는 그 나름의 자극적인 요소가 무척 많은 소재여서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질투, 과시욕, 유혹 등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끄집어냅니다. 구질구질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더라도 죄책감 대신 변명으로 정당성을 짜 맞추는 상황에 이르게 합니다.
소설 <공동구매>에는 '주부세상만세' 일명 주세만으로 불리는 공구 카페에서 벌어지는 온갖 행태를 보여줍니다. 크고 작은 트러블, 편가르기 등 카페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분란들이 등장합니다. 저도 카페를 맡고 있다 보니 다양한 분란 양상을 접해봐서 실감 나게 읽게 되더라고요. 있음직한 이야기를 넘어서는 생생한 이야기들입니다.
가정폭력, 성폭행 화두의 중심에 선 화영의 이야기와 신분세탁 가능한 익명의 공간에서의 콜린의 이야기는 페미니즘과는 또 다릅니다. 쓰레기 같은 남자들과 억눌려 산 여자들이 등장한다 해서 그 결말은 뻔하게 향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복수의 통쾌함을 원하며 읽을 테고 누군가는 정의와 도덕을 내세우며 당위성 있는 결말을 원하며 읽을 겁니다. 생각보다 결말이 참신하다는 반응을 이끌어낼 정도로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소설이어서 색다른 맛으로 읽은 백선경의 소설 <공동구매>입니다.
"간혹 인간들은, 자신은 거짓을 일삼으면서 상대에게서는 진실을 갈구한다. 무고한 이가 피를 흘리면 안 되지만 때로는 무고한 이가 흘리는 피는 진실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도 해서 진실을 밝히는 데는 희생이 필요하다. 그래서 진실은 모순덩어리다." -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