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전 -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 위하여
김버금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마음을 나도 정의 내리기 힘들 때, 그 마음을 알고 싶지만 내 마음의 이름을 도무지 모르겠을 때 펼친 국어사전. 사랑하다, 슬프다, 그리워하다, 외롭다, 든든하다, 설레다... 외에도 마음과 관련한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나요.

 

브런치북 6회 대상 수상작 <당신의 사전>은 사전에서 꺼낸 천 개가 넘는 이름을 통해 그동안 모른 채 외면했던 마음들의 이름이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김버금 저자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입니다.

 

"모든 마음에게는 이름이 있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마음에게 이름을 불러주고서야 알았다." - 책 속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이름을 불러줬을 때 비로소 존재가 드러납니다.

 

내 마음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내버려 두지 않고 이름을 불러주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살면서 내팽개친 마음들이 꽤 많을 겁니다. 그것들도 다 내 마음이었는데 말입니다.

 

텀블벅 에세이 분야 1위, 브런치북 6회 대상 수상작에 빛나는 김버금 작가의 <당신의 사전>은 서글픈 마음, 애틋한 마음, 서툰 마음, 그리운 마음에 관한 47개의 이름을 들려줍니다.

 

스스로의 슬픔마저 속였던 날엔 처연하다는 마음을, 어린 시절 엄마의 일기장에 쓰인 "나에게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글을 보고 쓸쓸하다는 마음을, 비 오는 날 이미 젖어버린 운동화를 장화 신었을 때처럼 마음껏 걸을 때의 홀가분한 마음을 알아채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아빠의 첫 해외여행길에서 투닥거렸던 부녀 간의 에피소드에서는 저도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늦은 나이에 해외여행을 처음으로 간 아빠는 다른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셨을 텐데 더운 날씨에 긴팔을 챙긴 아빠에게 화를 내기만 했습니다. 아빠의 땀으로 먹고 자란 딸이 뒤늦게 깨닫는 여정이 뭉클합니다.

 

김버금 작가의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당시엔 별것 아니어서 잊어버렸던 기억들이 샘솟습니다. 영어 간판 일색인 길에서 햄버거 가게를 찾아 헤매시던 할머니에게 키오스크 주문하는 법까지 알려드리려고 했던 에피소드는 저에게 친정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었어요.

 

처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드렸던 날인데요. 화면을 슥 밀면서 터치하는 방식이...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얼마나 낯선 일인지를 그날 깨달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제가 친정 엄마에게 하나씩 설명해드릴 때 어찌나 버벅댔는지. 어쩜 그렇게 아이콘이 많고, 숨어 있는 메뉴가 많은지 당황했어요. 당시엔 그저 요즘은 다 이렇게 나오니깐 얼른 익숙해져야 한다는 식으로만 생각했을 뿐. 고군분투하는 친정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드리지 못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김버금 작가는 햄버거 가게를 찾던 할머니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 간질간질거렸던 마음에게 이름을 붙입니다. 그저 길을 알려드린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귀 기울이고 귀담아들으며 살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바라다'라는 이름을요.

 

보편적으로 쓰이는 마음의 이름들에게는 어떤 에피소드가 있을지 기대하며 읽게 되는 <당신의 사전>. 비슷비슷한 류의 에세이가 지겨워 에세이를 점점 멀리한 독자에게도 (네, 제가 요즘 그렇...)  권해봅니다. 여린듯한 감성이 보이다가도 옹골차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매력 느낄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