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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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11년 만에 떠오른 문학 천재 루시아 벌린의 단편 선집 <청소부 매뉴얼>. 단편소설이라고 해도 인생 에세이 같은 짧은 단상들이 모여 만든 이야기들이라 독특하고 신선한 느낌이었어요.

 

미국 남서부 식당, 세탁소 등 우울함이 감도는 배경 속에서 재치와 유머 한 스푼이 담긴 글들은 달콤씁쓸함을 남깁니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요. 고달픈 삶 속에서 희망만을 꿈꾸거나 비참한 자괴감에 빠져들지는 않습니다. 꾸역꾸역 사는 삶처럼 어떻게든 우리는 살아내고 있으니까요. 단편 선집 <청소부 매뉴얼>은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단편소설 작가 루시아 벌린. 국내 알려진 소설이 없어서 작가에 대해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많은 분들이 이 책으로 루시아 벌린 작가가 레이먼드 카버, 데니스 존슨과 비견될만한 작가임을 알게 될 겁니다. 추천사를 보면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인 것 같아요.

 

<청소부 매뉴얼>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이해하려면 작가의 삶을 살펴보면 됩니다. 그의 인생 단편이 이야기 곳곳에 묻어 나오거든요. 알래스카에서 태어나 칠레로 이주, 세 번의 결혼과 이혼 후 더 이상 재혼하지 않고 네 아들을 혼자 부양하며 삽니다. 팍팍한 형편에 싱글맘으로 네 아들을 키웠으니 그의 직업 이력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만할 거예요. 고등학교 교사, 전화 교환수, 병동 사무원, 청소부, 내과 간호보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도 스물네 살에 처음 단편을 발표한 이래 계속 글을 썼습니다.

 

 

 

단편 선집에는 43편이 수록되었습니다. 나만 알고 싶은 작가였던 루시아 벌린의 작품들 하나하나가 매력적입니다. 한 번 읽고는 그 맛을 잘 못 느낄 때도 있을 테지만 분명한 건 가끔은 펼쳐보고 싶은 이야기라는 거예요. 강렬한 단짠맛이 아니어서 오히려 곁에 두기 좋은 이야기들입니다.

 

1인칭 서술로 담담히 끌어가는 이야기는 구질구질한 인생이지만 구원을 바라는 대신 공감을 자극합니다. 읽으면서 정말 묘했던 게 우울한 이야기 같은데도 읽으면서 우울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상황은 우울하지만 전달하는 방식의 차이가 루시아 벌린이 가진 강점인 것 같습니다.

 

단편에 담긴 진짜 에피소드를 눈치채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표제작 <청소부 매뉴얼>에서는 알리 칸 왕자가 담뱃불을 붙여줬던 일을, <H. A. 모이니핸 치과>에서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기는 식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배치해뒀습니다.

 

감각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식에서 활력을 얻게 되는 단편 선집 <청소부 매뉴얼>. 에세이 같기도, 자서전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내 이야기 같기도 한 독특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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