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 의사
포프 브록 지음, 조은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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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학박사, 이과석사, 법학박사, 공중위생학사, 이학박사이자 세계적 석학인 존 R. 브링클리 박사.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20세기 최고의 돌팔이 의사로 이름을 남긴 희대의 사기꾼이지 뭐예요. 무엇으로? 염소 고환 회춘술로요.

 

맷 데이먼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질 <돌팔이 의사>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기적에 대한 갈망이 만연한 시대를 돈벌이에 접목한 존 R. 브링클리와 그를 쫓던 의료 사기 사냥꾼 모리스 피시바인의 삶을 다룹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공연하면서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한 약을 팔고 다니던 시대가 있었죠. 아무런 효능도 가치도 없는 약이 플라세보 효과만으로도 입소문이 나기도 하고, 홍보 수완에 따라 기가 막히게 잘 듣는 고가의 약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나고 보면 어떻게 저런 이야기에 속을 수 있을까 싶을 테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피해자인 줄 모른 채 깜빡 속아넘어갑니다. 존 R. 브링클리 박사는 사람들의 어떤 점을 건드렸길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앙하게 되었을까요.

 

학위를 제외한 모든 것을 갖춘 브링클리. 탁월한 사업 수완을 가진 그는 당시 유행하는 치료법에 손을 대며 한 탕 크게 하고 튀어버리는 전략으로 젊은 시절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 잡았을 때 찾아온 한 농부의 이야기에 아이디어를 얻으며 희대의 사기극 서막이 오릅니다.

 

남성의 정력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브링클리는 왕성한 짝짓기를 하는 숫염소의 고환을 사람에게 이식해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고 선전하게 됩니다. 당시 시대정신인 젊음을 되찾는다는 풍조도 한몫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 수술 실험이 부작용 없이 성공해버린 바람에... 그렇게 염소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업이 번창해 기차역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했을 정도였다니. 학위 빼고는 다 가진 브링클리라고 언급했는데, 그의 마케팅 능력은 정말 어마어마했어요. 군중과 개인의 심리를 지배할 줄 알았고, 당시 아무도 하지 않았던 라디오 광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직접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할 정도였습니다.

 

건강에 대한 집착이 나날이 강해지던 시대여서 브링클리만 정력에 관심을 쏟은 건 아니었습니다. 돌팔이들의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돌팔이 의사들의 황금시대였던 그때는 국제적인 뉴스거리가 된 원숭이 고환을 인간에게 이식 수술한 사례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분비선을 이용한 회춘술에 다들 열광하던 시대입니다.

 

어쨌든 회춘술의 스타 반열에 등극한 존 R. 브링클리는 할리우드 스타, 판사, 상원의원, 부통령 등 유명 인사들까지 친분을 쌓으며 입지를 다집니다.

 

 

 

다른 돌팔이 의사와 다른 점이라면 그는 자잘한 사기 대신 큰 물에서 놀 줄 알았다는 겁니다. 공격을 당하면 그에 맞선 마케팅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였어요. 무려 캔자스 주지사 출마까지 나섰다가 정말 안타깝게 패배했을 정도니 당시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될 겁니다.

 

하지만 브링클리에겐 그의 삶을 방해하는 연적이 있었습니다. 미국 의학협회지에서 활동하며 의료 사기를 타파하는데 일생을 바친 모리스 피시바인. 지옥의 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브링클리의 뒤를 쫓았습니다.

 

브링클리의 발목을 잡은 건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가 많았다는 게 밝혀지기 시작하면서입니다. 잘못된 의료 행위로 환자가 사망해도 유죄를 받기 힘든 허술한 법률 체계에서 피시바인은 어떻게 브링클리를 상대할까요. 절망의 대공황 시대에 희망을 약속하는 브링클리의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는데 말입니다.

 

브링클리와 피시바인의 이야기는 한 편의 첩보물처럼 재미있었지만, 더욱 흥미를 끈 건 뭐니 뭐니 해도 브링클리의 기발한 능력이었던 것 같아요. 녹음된 라이브를 라디오 방송에 접목해 사전 녹음 시대를 연 것도 그가 최초였고, 선전용 트럭을 이용한 선거를 한 것도 그가 최초였습니다.

 

브링클리가 자신을 신격화한 채 염소 고환 회춘술에 단단히 빠져들지 않았더라면, 그의 능력이 다른 방향으로 쓰였더라면 어떤 놀라운 변화를 일궈냈을까 기대될 정도로 그는 대단한 혁신가이기도 했습니다. 한마을의 경제를 살리기도 했을 정도니 브링클리의 평판이 무조건 악질 돌팔이 의사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극과 극을 오가는 것도 이해될 정도입니다.

 

브링클리는 약탈자이면서 그 시대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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