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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커, 흡혈귀, 슈퍼맨 그리고 좀비 - 제5, 6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5
차삼동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6월
평점 :
황금가지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록커 흡혈귀 슈퍼맨 그리고 좀비>는 좀비 소재가 여전히 무궁무진한 장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흥미진진한 단편소설들이 모였습니다. 차삼동, 김성준, 손장훈, 서번연, 유권조, 조성희. 여섯 작가의 좀비 작품이 실린 <록커 흡혈귀 슈퍼맨 그리고 좀비>. 제목부터 기이합니다.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을 하나씩 딴 제목이에요.
일가족의 먹을거리를 탈탈 터는 무리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생일대의 첫 콘서트를 한 록커 영재로서는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 현실입니다. 수천 명의 무시무시한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된 콘서트 현장에서 간신히 탈출했지만, 이미 좀비들의 세상으로 변해버린 도시의 모습에 경악합니다. 근근이 버티다 그를 거둔 일행과 함께 움직이며 약탈자로 생활하는데.
어느 날, 온갖 비상식량과 물자가 쌓인 컨테이너를 영재 혼자 발견하게 되면서 다이내믹한 사건이 예측됩니다. 게다가 근처 체육관에서는 좀비들을 관중이라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록커 꿈나무를 만나기도 하죠. 며칠 동안 소년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던 영재는 일행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재의 희망대로 일은 순탄하게 이어질지.
좀비 세상이 닥친 후 생존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소설 <록앤롤 싱어>에서는 꿈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기도 성공하기도 하는 어쩌면 평범했었던 모습이 악이 만연한 세상에서는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소설 <그가 택한 세상>은 흡혈귀에게 애잔함을 느끼게 되는 웃픈 소설입니다. 좀비 세상이 되면서 목구멍이 포도청 신세가 된 흡혈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독극물과 같은 좀비의 피를 마실 순 없죠. 천 년을 산 흡혈귀조차 참혹하고 절망적인,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이 되자 좀비 때문에 흡혈귀 팔자도 망해버렸네요.
재미있는 건 직장인의 비애를 위트있게 접목한 부분입니다. 현실에 고달팠던 이들의 비애, 아침에 눈뜨면 자동적으로 출근하던 이들 중 혈액원에 근무하던 사람의 뒤를 쫓다보니 역시나 흡혈귀가 찾아헤맨 혈액원이 딱~! 좀비가 되고서도 직장으로 무심코 가는 좀비라니. 슬프네요. 흡혈귀는 무사히 혈액팩을 손에 쥘 수 있을까요. 흡혈귀의 신세타령,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자신이 슈퍼맨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정신병자의 이야기 <슈퍼맨이 돌아왔다>. 어느 날 기괴하게 바뀐 사람들. 정신병원도 아수라장입니다. 원장은 자신을 가두기 위해 지하에 크립토나이트를 묻어뒀고, 좀비가 된 이들은 크립토나이트 피폭을 당한 것이라 믿는 자칭 슈퍼맨. 절망적인 상황에 닥쳤지만 여전히 슈퍼파워는 돌아올 생각이 없습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분량도 꽤 되는 편인데 무엇보다 좀비 하면 떠오르는 역겨운 묘사는 다 나오고 있어요. 사실 좀비들보다 생존하려는 인간들이 더 참혹한 장면을 자아내지만요. 지저분한 좀비와 인간 군상을 묘사한 작품도 잘 읽는다면 오히려 반길만한 스토리입니다.
블랙아웃이 된 세상. 가스, 물, 전기가 끊기고 악취에 휩싸인 도시. 한 가족의 일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아들에게>. 자폐증을 앓는 아들을 둔 부부의 조곤조곤한 일상 묘사가 매력적입니다. 담담하게 진행되는 스토리 속에 극악스러운 사건을 등장시키며 생존자가 정녕 생존자인지, 좀비 바이러스에 당한 좀비들은 과연 없애야 할 악인지 그 경계를 허물어버린 소설입니다. 슬프고 애달프고... 임팩트 있는 소설이네요.
좀비 세상이 오면 무조건 세상이 무너질까요. <성모 좀비 요양원>은 현대 군대가 가뿐하게 좀비를 처리하고 살아남은 좀비 무리들을 요양원에 가둔다는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좀비가 된 이들도 저마다 가족이 있었을 테죠. 좀비가 된 가족을 차마 요양원에 못 보내고 집에서 몰래 데리고 있다든지, 좀비 요양원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다든지. 이 세상으로 치면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를 바 없어 씁쓸한 현대인의 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판타지한 분위기가 들어간 <왕국의 도래> 소설도 신선 그 자체다 싶을 정도였어요. 충분한 물자를 가진 한 남자가 좀비 세상에서 그만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사람 몇 명을 챙겨주면서 안전한 장소로 이동할 준비를 합니다. 세계 멸망을 대비할 공동체를 준비하는 그는 순탄하게 그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을까요. 아담과 이브, 노아의 방주 모티브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입니다.
<록커 흡혈귀 슈퍼맨 그리고 좀비>에서는 왜 좀비가 되었는가에 대한 원인보다는 좀비 세상이 되었을 때 벌어지는 이야기들에 집중한 소설이 대부분이네요. 차라리 세상이 끝났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생존 욕구는 무시 못 합니다. 물리적인 잡아먹힘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으로 비유하는 건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니... 우리는 좀비 세계에 이토록 빠져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