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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서울 역삼초등학교 18기 동창모임 준비위원회
한차현 지음 / 답(도서출판)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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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졸업할 때 다들 꼭 모이자는 말을 반드시 지킬 것처럼 약속했건만 막상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모임은 까무룩~ 고등학교 졸업만 해도 뿔뿔이 지역을 벗어나니 만나기 더 힘들어집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초등학교 동창들이 느닷없이 생각 나기라도 하면 그제서야 그 시절을 슬쩍 추억해보다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고요.
소설 속 주인공 차연 역시 서른일곱 살에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친 동창 덕분에 옛 시절의 기억을 소환합니다. 20년 만에 만난 동창을 단숨에 알아본 것도 모자라 이름까지 다이렉트로 떠올려 왠지 자존심 상해하는 모습부터 웃음을 주네요.
고등학생 시절 동창모임을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만난 그 동창과 어떤 인연이 얽혔던 건지, 싱숭생숭 해하는 차연의 스토리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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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서울역삼초등학교 18기 동창모임 준비위원회>에서는 고등학생이 된 역삼초 출신 아이들이 동창모임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 기가 막힌답니다. 차연이네 고등학교 1학년 짱이 역삼초 출신 애를 맘에 둔 탓에 그 여자애와 친하지도 않은데 그저 같은 반이었다는 죄로 하필 차연에게 불똥이 튑니다.
그 여자애와 만날 고리를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처한 거죠. 부탁을 가장한 명령을 거절하지도 못한 채 끙끙 앓다 결국 동창모임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겁니다. 동창모임 준비를 한답시고 미리 만나 자연스럽게 학교짱과 그 여자애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성사시키려는 계획은 생각 외로 잘 풀립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복병의 감정을 만나는데.
초등 시절에도 학교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났던 그 여자애를 마음에 두게 된 차연. 스스로의 감정을 깨닫게 되기까지 참 스펙터클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짝사랑 이야기가 요즘도 공감 주제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때만 해도 정말 가장 핫한 주제 아니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하이킥을 몇 날 며칠 날려도 모자랄 러브레터의 시절이었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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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의 향수를 부르는 당시 배경 상황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한 소설입니다. X세대, 오렌지족, 도시락, PCS폰... 90년대 노래와 당시 상영한 영화 제목도 툭툭 튀어나오니 색다른 즐거움을 안고 읽었습니다.
한창 혈기왕성한 고등학교 1학년 시절 회상에서는 날 것 그대로의 대사가 오가기도 하는데 생각보다 정말 찰져요 ㅋㅋ. 공부도, 운동도, 싸움도, 외모도 참 평범한 차연의 기억 속 그 시절 그때의 사건들은 특별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추억을 건드리는 기폭제가 됩니다.
초등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성인이 된 현재의 시점을 오가는 구성이어서 더 흥미진진하게 읽혔어요. 영화의 쿠키영상처럼 작가의 말 뒤에 다시 짤막하게 등장하는 스토리 구성도 신선하네요. 그 시절 아이들을 다시 만나면 "잘 살았냐"라는 영혼 없는 질문들이 오가다 자연스럽게 연락하며 지내거나 또다시 평생을 안 만나거나 둘 중 하나일 테지만, 아련한 추억을 잠시나마 떠올리는 시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