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존 캐리루 지음, 박아린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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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한 방울' 신화를 만들어낸 실리콘밸리 사상 최대 스캔들, 테라노스 사건의 전말을 파헤친 <BAD BLOOD 배드 블러드>.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몰락한 기업 테라노스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영화 헝거게임의 제니퍼 로렌스 주연으로 영화 제작 중이라니, 테라노스 사건의 충격은 뇌리에서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첨단 혈액 진단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기업 테라노스(Theranos). 피 한 방울로 수백 가지 질병을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대규모 라이브로 시연하며 성공을 축하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의료계에 혁신을 불러일으킬 주역은 스물두 살의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입니다. 19세 대학 중퇴자로 실리콘밸리 최초 여성 억만장자 기술 기업 창업자라는 명성을 얻게 될 인물입니다.

 

테라노스의 혈액 진단 기술이라면 환자 개개인에게 약품이 섬세하게 맞춤화되는 세상이 눈앞에 온 셈입니다. 하지만 기술 시연은 속임수였고, 그 이면엔 경악할만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거대한 사기극의 시작일 뿐이라는 겁니다. 앞으로 엘리자베스 홈즈의 주변에는 더욱 막강한 인물들이 포진하게 되고, 정치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군대는 물론이고 언론까지 뒷받침하며 테라노스와 엘리자베스 홈즈의 거짓말에 갇히게 됩니다.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월스트리트저널」 탐사 보도 전문 저널리스트 존 캐리루는 전직 테라노스 직원 60명이 포함된 150명 넘는 사람과의 인터뷰와 법적 소송 기록과 문서를 기반으로 <BAD BLOOD 배드 블러드>를 완성합니다. 2015년 10월 15일 월스트리트저널 첫 페이지에 테라노스를 폭로하는 기사를 실으며 전 세계적으로 충격 폭탄을 투척한 존 캐리루. 첫 기사를 싣기까지 온갖 협박과 감시로 얼룩진 무시무시한 과정도 책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워낙 큰 사건이라 웬만한 거짓말은 애교 수준으로 만들어버린 테라노스 사건을 파헤친 기자 자신의 비중은 낮춘 대신, 협박과 보복 속에서도 애써준 전직 테라노스 직원들에게 집중해 사건의 전말을 들려줍니다. 

 

도대체 엘리자베스 홈즈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쾌활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다고 정평 난 엘리자베스 홈즈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와 대화할 때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했다. 거의 최면과 같았다."라고 주변에서 말할 정도니까요.

 

스티브 잡스를 광적으로 추종한 엘리자베스 홈즈. 스티브 잡스처럼 검은 터틀넥을 입고, 전 애플 직원들을 영입하고, 테라노스 기기를 '보건계의 아이팟'이라고 스스로 불렀다고 합니다. 광고 역시 애플사 광고를 맡았던 곳에 맡길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엔 제2의 스티브 잡스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홈즈는 자신의 비전에만 매몰됩니다. 꿈을 위해서라면 희생되어도 괜찮은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사회마저도 장악하고, 직원들에게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면서도 의사소통은 꽉 막힌 근무 환경, 끊임없는 해고 등 예스맨만 남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토록 저명한 인물들이 계속 엘리자베스 홈즈에게 모여들고 그녀의 아우라에 푹 빠지게 되었을까요.

 

 

 

<BAD BLOOD 배드 블러드>에서는 엘리자베스 홈즈가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폭로합니다. 피 한 방울로 수백 가지 검사를 수행할 수 있다는 테라노스의 기술은 온갖 문제를 안은 상태로 기술 개발 진행 단계에 불과했습니다. 이미 시중에는 테라노스가 보유한 기술보다 더 나은 분석기가 존재했고, 심지어 테라노스는 타사 분석기로 검사를 수행하며 속임수를 저지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테라노스의 기술은 완성되었고,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출시 임박 상태라고 믿게 됩니다.

 

뻔뻔한 거짓말 일색인 엘리자베스 홈즈의 실태를 알게 되니 할 말이 없게 만들더군요. 왜 그녀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수 없었는지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믿고 싶은 것만 보이는 것처럼 테라노스 사건은 피 한 방울의 신화를 믿고 싶었던 대중들의 바람이 얽히고설킨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분명 매력적인 재능을 가졌습니다. 그 재능을 엉뚱한 곳에 쏟아부은 결과는 결국 그녀 자신의 몰락은 물론이고 세상의 희망을 짓밟은 셈이지만요. 

 

초대형 의료 사기극을 벌인 테라노스의 몰락 과정을 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 논픽션 <BAD BLOOD 배드 블러드>. 후회 없이 읽을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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