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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도 웃던 날들 - 차가운 세상에서 뜨겁게 웃을 수 있었던
정창주 지음 / 부크럼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좌충우돌 고해성사 돌직구 에세이'라며 책 뒤표지에 박힌 문구는 한 점 거짓이 없었습니다. 이토록 똘기 가득한 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나만 보는 일기장 속 내용 같은 수준의 에피소드도 등장하는데, 설마 이런 것도 책에 실을 수 있는 거야?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욕먹거나 논란이 될만한 내용도 아슬아슬한 수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드러낸 에세이 <분노도 웃던 날들>.
서른한 살 직장인의 현재와 스무 살 대학시절의 추억을 그리며 현재와 과거를 오갑니다. 장면 전환이 빠른 편이지만 흐름이 툭 끊기기보다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될 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이어져 읽는 맛 좋았어요.
민증에 잉크 말랐다.
빠꾸 없이 달려야지!
- 과거
나 지금
똑바로 살고 있는 거 맞아?
- 현재
'그땐 참 좋았었는데'라고 떠올릴만한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정창주 저자의 '그때'는 대학시절입니다. 기억에서 점점 사라지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붙잡아올려 서른한 살에 되돌아보는 그 시절 이야기 <분노도 웃던 날들>.
아들을 안 키우고 있었으면 애어른 남자들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 웬만한 건 놀랍지도 않은 아들 키우는 맘이다 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은연중에 공감하며 읽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날 것 그대로의 언어를 고스란히 내보이는 게 처음엔 거북했지만, 그만큼 망나니 시절의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좌절하고 실망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간신히 어른이 되기까지의 여정이 남 일 같지 않아 공감하며 읽을 독자가 많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나만큼은, 무조건 잘 살 줄 알았다."라는 말에도 동의할 분들이 많지 않을까요. 요즘은 그런 근자감조차도 일찌감치 사라지는 사회에 산다는 게 씁쓸합니다. 시골 깡촌 출신이 in 서울을 했으니, 앞으로 쭉 잘 나갈 것만 같았던 기대감으로 충만했던 그 시절.
하지만 처참히 박살 나는 나날들의 연속. 특별한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데 포인트가 있어요. 뻘짓만 하던 시절과 생각이라는 게 좀 있는 시절이 자연스럽게 대비되니 욕하면서 읽다가도 폭풍공감하는 등 변화무쌍한 감정을 오갑니다. 현재의 삶에서 끄적이는 사회생활 에피소드만으로 끌어나갔다면 뻔한 에세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만화 그림체 삽화가 곳곳에 있어 상상 그 이상의 모습으로 시각화해 보여주니 그것도 볼매였어요.
자기 과시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재수 없는 발언을 숱하게 해댄 그 시절을 본인도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인 에피소드들이니 재미만큼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사람 심리가... 멘탈 제대로 털린 그 시절 이후 현재의 삶은 얼마나 잘 먹고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게 사실이잖아요? 어떤 면에선 기대한 것과 비슷하고, 또 다른 면에선 기대 이상인 것 같아요. 똘기 충만했던 그때 그 시절이 없었더라면? 물론 개과천선했다 식의 교훈용 에세이는 아니라는 걸 잊지 마시고요.
놀라움과 신선함을 마지막까지 선보입니다. 이번 책으로 과거 이야기를 다 풀어놓은 게 아닙니다. 이 부분은 알고 읽었는데도 소설 다음 편이 궁금한 것처럼 다음 이야기가 진심 궁금해서 책 덮으며 순간 허탈해지기도 했어요.
재수 없어 진저리 치다가도 묘하게 정감가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에세이입니다. 위로와 공감을 주는 위안용 멘트 대신 블랙코미디 같은 청춘 시절을 보여주는 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