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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리 판타지아 ㅣ 수상한 서재 2
이시우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0월
평점 :
브릿G 연재 내내 높은 인기를 얻으며 어반 판타지 장르에 새로운 획을 그은 작품을 선보이는 황금가지 '수상한 서재' 시리즈.
시골 마을 이계리에서 펼쳐지는 공포를 기반으로 한 판타지 소설 <이계리 판타지아>. 무작정 무섭고 소름 끼치는 전통 공포 판타지물이라기엔 시골 특유의 구수함과 유쾌한 캐릭터가 잘 버무려져 한 마디로 딱 정의 내리기 힘든 묘한 소설입니다.
이시우 작가의 소설은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에서 단편 《이화령》으로 접한 바 있습니다. 이화령 고갯길에서 펼쳐지는 사이코 살인 이야기를 이화령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살려 멋지게 끌어냈는데, <이계리 판타지아>도 우포늪을 배경으로 현대판 설화의 느낌을 보여줍니다.
시골 이계리의 집과 토지를 상속받아 퇴사 후 야심차게 전업 작가로 살기로 작정하고 귀촌한 미호. 전업 작가임을 합리화하며 무절제한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는데.
"여기선 개 안 키우면 안 돼!"라는 말과 함께 개를 강제 입양시키려는 동네 사람의 말을 무심히 흘려듣지만, 밤마다 이상한 소리 때문에 잠 못 이루게 됩니다. 잡아먹겠다며 서서히 숨줄을 죄어오는 그것의 정체는 바로 어둑이라고 불리는 괴이. 상상 속 괴물이 아닌 실체를 가진 괴물입니다.
평범한 시골 동네인 줄 알았는데 말하는 고양이가 돌아다니질 않나, 대장장이에 수의사까지 겸직하는 읍내 치과의사 등 요상한 인물들과 사람 얼굴 모습을 한 흉조와 거미 등 괴물들이 판치는 그곳은 이 세상이 아닌 곳만 같습니다.
평소 실내 양궁장에서 활 쏘기에 취미 슬쩍 붙이며 장비발만 세운 미호는 이곳에서 본의 아니게 궁수가 되어 괴이들을 처치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바닷바람이란 필명으로 유명 판타지 무협 소설 작가로 이름 떨치는 싸가지 없는 남자 조풍, 요란한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대검을 사용하는 기골 장대한 귀녀 할머니와 함께 괴이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이계리에 왜 괴이가 몰려드는 건지, 애초에 괴이의 존재 근거는 무엇인지 하나씩 밝혀집니다.
하지만 잔챙이 괴이 소탕은 말 그대로 소동 수준. 거대한 존재감을 떨치는 괴이들의 신이 이계리로 들어오면서 이계리 수호자들이 전멸될 상황에 처합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어반 판타지물은 내 주위에도 설마? 하는 호기심과 생생한 상상력을 절로 자아내게 하는 매력적인 장르인 것 같아요. 평온하고 구수한 냄새가 떠오르는듯한 평범한 시골 마을 분위기와 함께 스산한 숲과 눅눅한 기운의 늪지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계리 판타지아>. 옛이야기 어디에선가 들어봄직한 괴이들이 이 시대에 나타난 것만 같습니다.
상상하면 소름 끼칠만한 장면도 꽤 있는데, 제 만족도 수준에서는 공포감 묘사가 여기서 더 짜릿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어요. 때로는 피식~ 웃게 하는 유머 감각도 겸비한 스토리여서 중간 수준을 택한 듯합니다만. 생각도 못 한 서양 괴이까지 등장하는 장면에선 저는 공감이 좀 떨어졌지만, 고차원 판타스틱한 세계로 들어가지 않으면서 딱 적당한 공포감을 자아내는 판타지 소설이니 동양풍 판타지 입문자에게는 부담 없이 진입할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