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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장강명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9월
평점 :
한국형 히어로 소설 <이웃집 슈퍼 히어로>에 이어 최신작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까지, 그야말로 팔색조 매력을 만날 수 있는 히어로 중단편집입니다.
연작이 등장한다 하여 먼저 나온 <이웃집 슈퍼 히어로>와 최신작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를 동시에 읽어나갔습니다. 두 책 모두에 있는 작가인 김보영, dcdc, 듀나, 이수현 작가들의 소설부터 챙겨봤어요.
김보영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은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책에서는 《로고스 갤러리, 종료》로 이어집니다. 이 소설에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엑스맨 스타일의 히어로들이 등장하네요.
붕괴된 마트에서 사람을 구조하는 전광석화 같은 '번개'를 중심으로 소시민 히어로들이 떠맡은 실상의 이면을 보여줍니다. 능력을 가진 초인들이라는 것 때문에 오히려 일상은 변변찮은 히어로들. 재난이 일어나면 영웅들에게 책임 전가하기 바쁘고, 진짜 힘 가진 이들은 사건을 덮기 바쁩니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소시민 히어로의 선택은 과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에서 '번개'라는 인물에 집중했다면, 《로고스 갤러리, 종료》에서는 그 이후의 세상을 보여줍니다. '번개'와 맞짱 뜨기 위해 나선 초인 소녀와의 대결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도 기대하세요.
한국 SF 환상 문학계에서는 하이텔 시절부터 독보적인 몇몇 작가들이 있지요. 그중 듀나 작가를 손꼽아봅니다. 조금은 음울한 느낌의 단편이 이번 히어로 책에 실렸습니다. 전작 《아퀼라의 그림자》는 신간에서 《캘리번》 작품으로 이어집니다. 《캘리번》이 오히려 전편의 과거로 돌아간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어 프리퀄이자 속편인 셈입니다. 염력을 사용하는 히어로와 범죄자 초능력자의 대결이라는 특별하지 않은 소재임에도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에 첫 작품으로 실린 장강명 작가의 《알골》은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더군요. 우주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우주 초인을 만나러 간 초자연 현상 전문 르포 작가의 이야기는 뒤통수 때리는 반전까지 짧은 분량에 담겨 있습니다. 히어로를 다시 보게 만든 나쁜 소설이기도 ㅋㅋ
책 제목으로 쓰인 임태운 작가의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는 제목으로 쓰일만한 대표 작품으로 손꼽을만했어요. 배경 자체가 너무 웃겨서 빵빵 터지기도 했습니다.
배달콜도 아닌 히어로콜이라니. 영등포구 히어로 레인보우걸, 마포구 히어로 리얼맨, 중랑구 히어로 잔망풍뎅이 등등 히어로가 가득한 데다가 히어로콜 호출 알림에 수락 버튼을 누르면 출동~! 히어로톡 친추도 하며 히어로들끼리도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둘씩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히어로들. 히어로의 능력을 삭제시켜버리는 악당이 존재한다는 도시괴담이 만연한 상태에서 히어로 별점 하락을 신경 쓰며 닥치는 대로 혼자 출동하는 마포구 히어로 리얼맨의 운명은?!
웃고 즐기는 히어로물만 있는 게 아닙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읽은 구병모 작가의 《웨이큰》은 정말 엄지 척이에요. 구병모 작가의 소설 중에서 <한 스푼의 시간>도 제 취향에 딱 맞았었는데,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에 실린 《웨이큰》 역시 구병모 작가여서 기대한 만큼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요.
한국어가 서툰 필리핀 출신 여자의 고백으로 이뤄진 이 소설은 처음엔 낯선 문법에 어색해하다가도 읽다 보면 어느새 스토리에 흠뻑 빠져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겁니다. 가상현실 체험학습을 하러 간 아이들이 데이터 세계 안에 갇혀버리는 사고가 생깁니다. 결국 전문가들이 그 세계 안으로 직접 들어가 아이들을 구해내지만...
그 외 많은 작품들이 유쾌, 씁쓸, 감동~ 다양한 매력을 뽐냅니다. 한국형 히어로 소설의 공통점이라 하면 마블 히어로처럼 삐까번쩍하게 근사해지는 그런 류는 없는 것 같아요. 소시민이기도 하고, 시간제 영웅들도 많습니다.
사회파 소설로 묶을만한 내용도 꽤 됩니다. 초인의 능력이 오히려 역차별 받는 사회, 용감한 시민영웅이면서 범죄자로 취급받는 현실, 지극히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활동을 하는 영웅들의 모습은 이 사회가 요구하고 수용하는 수준을 지그시 드러냅니다.
히어로물의 단골 소재이기도 한, 영웅과 악당의 한 끗 차이. 과시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진 히어로도 있고, 근근이 살아가며 정의를 불태우는 히어로도 있습니다. 그 정체성이 자아를 흔드는 사건과 만나 변할 때도 있고요.
한국형 히어로는 너무 배고파 보이는 애들만 모인 것 같다는 아쉬움도 들 수 있겠습니다만, <이웃집 슈퍼 히어로>와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에서 이런 히어로, 저런 히어로를 만나보세요. 뒷얘기가 궁금해지는 스토리가 많았으니 성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