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금 죽으러 갑니다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4월
평점 :
한국 추리 스릴러의 유망주 정해연 작가의 신간도서 <지금 죽으러 갑니다>.
정해연 작가의 <악의-죽은 자의 일기>를 흥미진진하게 읽었었는데 이번 책은 더 마음에 듭니다. 중국과 태국에서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는 웹툰으로 제작 예정이라는 <더블>도 읽어봐야겠어요. 유쾌한 감각이 돋보인 코지 미스터리 소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의 작가이기도 하죠.
<지금 죽으러 갑니다>는 집단 자살을 소재로 한 스릴러 소설입니다. 자살을 꿈꿀 만큼 현실이 괴로운 이들의 모이는 인터넷 카페 '더 헤븐'. 이곳에서 만난 다섯 명이 동반 자살을 위해 산속으로 향하는데, 이들 중 한 명은 살인마?!
자신을 존재하게 한 부모가 밀어 넣은 번개탄 가스에 살아남은 태성. 스물다섯 살에 기억을 몽땅 잃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트라우마로 살아갈 의지가 없는 그는 자살 시도를 하지만 매번 실패합니다. 그러다 알게 된 '더 헤븐'.
카페 운영자 한동준의 제안으로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그들. 제각각의 이유로 삶을 버리려고 합니다. 왕따, 성폭행, 인생의 낙오자로서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들입니다.
반면 죽음을 앞둔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뭔가 가벼워 보이는 이도 있습니다. 부잣집 아들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고통이 있겠거니 싶은 운영자 한동준의 제안으로 며칠간 행복하게 보상받으며 별장에서 지낸 후 죽음을 맞이하기로 합의합니다. 각자 어떤 죽음을 원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유서를 작성하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지내며 태성은 잃어버린 기억을 하나씩 되살리는데 그 기억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식이었던 태성. 집안이 기울어지자 죽음의 길로 아들을 데리고 갈 계획을 우연히 엿듣게 된 태성은 이번만큼이라도 부모의 결정에 수긍하며 죽어주려고 했지만, 결국 살고 싶은 인간의 본능 때문인지 정신을 잃기 직전 탈출해 살아남은 거였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온전히 찾게 되면서 이상한 의문이 생기는데, 바로 형의 존재입니다. 형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한편 별장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물량 공세를 펴는 한동준에게는 엄청난 비밀이 있었습니다. 바로 쾌락 살인마라는 거였죠. 집단 자살 사건을 몇 차례 통솔하며 유일하게 살아남아온 한동준. 이번 동반 자살 역시 그의 계획대로 움직여야 했건만 이탈자가 생겨버림으로써 그의 숨겨진 모습이 일찌감치 드러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먼저 자살해버린 사람이 있지 않나, 자살을 한다고 동참했지만 실은 자료 조사 차원에서 동참한 작가가 있기도, 며칠 지내다 보니 갑자기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그렇게 드러낸 한동준의 본모습은 괴물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기는 자 앞에서는 살고 싶다는 본능이 더 짙어지기 마련인가 봅니다. 죽음을 꿈꿨고 어차피 죽으려고 했던 그들이지만 그런 식으로 잔혹하게 죽기는 싫었습니다.
이 사건을 감지하고 수사하는 형사가 있지만 과연 태성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 이미 소설 중반도 되기 전에 한동준의 괴물 같은 모습이 빠르게 드러나면서, 남은 분량에서는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죽고 싶은 자, 살고 싶은 자, 죽이려는 자의 게임이 되어버린 상황. 권선징악 따위는 없을뿐더러 숨겨진 악의에 관한 만큼은 정해연 작가가 정말 잘 다룬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독성 뛰어난 흡인력을 자랑하며 이번에는 잔혹한 묘사로 찾아온 스릴러 소설 <지금 죽으러 갑니다>. 자살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당사자와 관찰자 입장 모두를 다루는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도 눈치 못 챈 악의를 끄집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