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 그 많던 역사 속 여성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케르스틴 뤼커.우테 댄셸 지음, 장혜경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남자들만 살아 숨 쉬는 역사. 문자의 발명 후 경험한 것을 후세를 위해 의도적으로 기록하는 행위. 그것이 모여 역사가 되었습니다. 살아남은 강자의 기록인 만큼 숱한 나라와 문화가 흔적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습니다. 인간 세계의 약자인 여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 많던 역사 속 여성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를 다룬 책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자신을 가둔 울타리를 부수고 밖으로 나온 여성들은 생각 외로 많았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세계를 있게 한 사건을 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전쟁, 정치, 우주로 날아가는 일... 세상을 바꾼 남자들의 기록이 압도적입니다. 하지만 여성들 역시 그곳에 있었습니다. 기록에서 누락되었을 뿐 여성은 언제 어디서든 함께 활동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수메르 왕국의 엔헤두안나의 글이라고 합니다. 왕의 딸이자 대제사장이었던 엔헤두안나, 중국 최초의 여성 역사가 반소, 무희 출신으로 황후가 된 비잔틴 제국의 테오도라, 백년전쟁 속 잔다르크, 카스티야 왕의 이사벨 여왕 등 전쟁과 정치 등 분야를 막론하고 여성들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여성을 예외적인 존재로 치부해왔었다면,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는 역사에서 빠져 있던 여성이라는 퍼즐을 찾아 끼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들을 걷어내지 않습니다. 여성들의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여성들도 엄연히 역사의 한 부분임을 보여줍니다.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여성들을 보고 놀랐다는 글에서 이미 그 당시에도 만연했던 여성차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여성의 존재감이 낮아진 걸까요.

 

 

 

여자는 보아야 하는 것, 그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 -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

고귀한 제우스가 여자를 창조한 것은 남자를 괴롭히기 위해서였다. - 역사학자 헤시오도스

여자는 경솔하기 때문에 성년이 되어도 보호를 받아야 한다. - 로마 12표법

무지한 여성만이 덕이 있다 - 공자

미성년자, 결혼한 여성, 범죄자, 정신박약자는 법적 권리가 없다. - 나폴레옹 민법전

 

태초에 이미 차별이 존재합니다. 인간을 낙원에서 추방하게 만든 원죄에 대한 이야기인 아담과 이브. 인류를 불행으로 이끈 장본인 이브는 여성, 원죄를 연상 작용하게 합니다.

 

유대인들의 기도문에는 "제가 이교도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며… 바보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며…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어… 감사하나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기존의 역사서를 읽다 보면 멸망의 진짜 이유와 남자들의 실책을 은폐하는데 나쁜 여인이 탁월한 효과를 내는 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왕을 비도덕적으로 이끈 건 대부분 여인 탓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남녀평등사상을 실천했다는 증거가 훗날 밝혀지기도 했지만,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는 사도 파울로스의 말은 너무나도 강력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중세 시대 여성 수난사는 마녀사냥, 화형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반복적인 이야기 패턴은 여성 혐오가 자리 잡게 했습니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조차 여자를 제외하면서 여성 혐오는 그리스의 발명품이라는 말이 나올 지경입니다.

 

과도한 여성의 독립심은 화와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생각은 역사 속에서 한결같이 나타납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희생하는 것으로 존재합니다. 

 

 

 

중세가 막을 내리고 르네상스 세 시대가 열려도, 계몽주의 사상이 활기 띠고 산업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어도 그들이 말하는 '인간'은 남자였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하던 짓이 과학의 이름으로도 저질러졌고,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인종차별, 여성차별은 더 심해졌습니다. 예전엔 여성 논쟁이 남녀 우월성을 따졌다면, 새 국면을 맞이하면서 자연이 여성을 어머니이자 집 안의 하녀로 정했다는 새로운 논리가 등장했을 뿐 여성의 가치는 여전히 변한 게 없습니다. 마르크스조차도 가사를 노동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죽은 뒤 이름이 삭제된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남자로 둔갑된 기독교 여사도 니노와 유니아, 역시 기록에서 사라진 몽골제국을 다스린 칭기즈칸의 딸들... 달 착륙 코드를 프로그래밍한 마거릿 해밀턴은 34년이 지난 후에야 합당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영어의 man은 남자이자 인간을 의미합니다. 여성은 제2의 성으로 취급받습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결정한 역사 속 여성차별을 보여준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유럽 중심 세계사라는 점은 아쉽지만 전쟁, 정치, 과학,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누락된 여성들 이야기, 명망 높고 존경받던 이들이 생각한 여성 혐오의 진실을 보여줬다는 데 의의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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