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옥스포드 대학의 벽에 이런 낙서가 발견 되었습니다. "펠 박사님,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왜 싫어하는지 그 이유는 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내가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펠 박사의 법칙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태어 났습니다.
비록 명문대학에서 태어났지만 낙서라는 출신성분 탓에 정식으로 학문적 권위가 붙은 이론은 못됩니다. 다만 세상에 퍼져있는 비이성적 편견과 혐오증을 설명할 때 서양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법칙 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유태인에 대한 근거 없는 증오, 유색인종에 대해 백인들이 갖는 설명할 수 없는 우월감,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복종을 강요하는 남성들의 지배심리, 가진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혐오감, 명문교 출신들이 비명문교에 느끼는 불편함 등은 모두 논리적 근거나 이성적 사유가 결여된 비문명적 심리 현상입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나름대로 그럴싸한 이유를 둘러 댈 것입니다.
가령 유태인을 싫어하는 이유는 유태백성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족속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벌써 이천년 전 조상의 일로 후손까지 미워한다는 것이 도통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펠 박사의 법칙처럼 까닭 없이 싫다고 털어놓으면 차라리 솔직한 고백이라도 될 것입니다.
왕건은 고려를 세우는 과정에서 후백제의 견훤 때문에 무척 고생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천하를 평정했으나 백제 사람에 대한 나쁜 감정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령 이남의 물은 모두 산세와 어울리지 않고 엇갈리게 흐르니, 이 지역 사람들은 등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남기게 되지요. 라이벌 집단에 대한 인사 보복이었던 셈입니다.
3년에 걸친 한국동란으로 생긴 상처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완전히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상처는 아물지라도 흉터는 아마 크게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하물며 50년 넘게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왕건과 백제인들 사이의 감정은 오죽했겠습니까.
조선시대 이중한이 쓴 택리지 인심(人心)편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팔도 중에 평안도는 인심이 순후하기가 첫째고, 다음은 경상도로 풍속이 진실하다. 함경도는 오랑캐 땅과 잇닿아 있어 백성의 성질이 모두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한 까닭에 백성이 사납고 모질다. 강원도는 산골 백성이라서 많이 어리석고, 전라도는 오로지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 데 쉽게 움직인다. 경기도는 도성 밖 백성들의 재물이 보잘 것 없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재리만 좇는다. 이것이 팔도 인심의 대략이다.'
그러나 이중한은 다음 장인 산수(山水)편에서 자신은 강원 황해 경기 충청 경상도는 많이 가 보았으나 전라도와 평안도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가장 추겨 세운 평안도와 가장 깎아 내린 전라도에는 가보지도 않고 이런 인심평을 썼던 것이지요.
펠 박사의 법칙은 어느 시대 어느 문명에서나 발견되는 이상심리로 인간의 불완전성을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펠박사의 법칙이 맥을 추지 못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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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우드는 "어떤시람의 일에 대한 태도가 그 사람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샌프란시스코 근방에 사는 소년이 거대한 쇠기둥을 용접하고 잇는 세사람에게 묻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첫번째 용접공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면 모르냐? 먹고 살기 위해서 이짓을 하고 있다."

두번째 용접공은 첫번째 사람보다 부드럽지만 여전히 퉁명스럽게...
"쇳조각을 용접하는 중이쟎니?"

소년은 세번째 용접공에게 다가 갔다. 세번째 용접공은 소년을 쪽으로 고개를 잠시돌려 웃으면서 말하길...
"세계에서 가장 멋진 다리를 만들고 있단다."

세명의 용접공은 같은 직업에 같은 임금을 받고 같은 조건에서 같은 일을하고 있지만
일을 바라보는 시각차는 너무 크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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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와 패자

승자는 실수 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패자는 실수했을 때 '너 때문에....'라고 말합니다.
승자의 입에는 정직이 가득하고, 패자의 입에는 핑계가 가득합니다.
승자는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말하고, 패자는'예와 '아니오'를 대충 말합니다.
승자는 어린아이에게도 사과할 줄 알고, 패자는 노인에게도 고개를 못 숙입니다.
승자는 넘어지면 일어나 앞을 보고, 패자는 넘어지면 뒤를 봅니다.
승자는  패자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여유가 있고, 패자는 승자보다 게으르지만 늘 바쁘다고 말합니다.
승자의 하루는 25시간이고, 패자의 하루는 23시간밖에 안됩니다.
승자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쉽니다. 패자는 허겁지겁 일하고 빈둥빈둥 놀고, 흐지부지 쉽니다.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에 끌려 삽니다.
승자는 시간을 붙잡고 달리며, 패자는 시간에 쫓겨서 달립니다.
승자는 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패자는 이기는 것도 은근히 염려합니다.
승자는 과정을 소중히 생각하지만, 패자는 결과에만 매달려 삽니다.
승자는 순간마다 성취의 만족을 경험하고, 패자는 영원히 성취감을 맛보지 못합니다.
승자는 구름위에 뜬 태양을 보고, 패자는 구름 속의 비를 봅니다.
승자는 넘어지면 일어서는 기쁨을 알고, 패자는 넘어지면 재수를 탓합니다.
승자는 문제 속에 뛰어듭니다. 패가는 문제의 주위에서만 맴돕니다.
승자는 눈을 밟아 길을 만듭니다. 패자는 눈이 녹기를 기다립니다.
승자는 무대 위로 올라가지만, 패자는 관객석으로 내려갑니다.
승자는 실패를 거울 삼지만, 패자는 성공을 후지로 삼습니다.
승자는 바람을 돛을 위한 에너지로 삼고, 패자는 바람을 만나면 돛을 거둡니다.
승자는 파도를 타고 나갑니다. 패자는 파도에 삼켜집니다.
승자는 돈을 다스립니다. 패자는 돈에 끌려다닙니다.
승자의 주머니 속엔 꿈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엔 욕심이 있습니다
승자가 즐겨 쓰는 말은 '다시 한번 해보자'이고, 패자가 자주 쓰는 말은 '해봐야 벌볼일 없다'입니다.
승자는 차라리 용감한 죄인이 되고, 패자는 차라리 비겁한 요행을 믿습니다.
승자는 새벽을 깨우며 달리고, 패자는 새벽을 기다리며 앉아 있습니다.
승자는 일곱 번 쓰러져도 여덟 번 일어서지만, 패자는 쓰러진 일곱 번을 번번히 후회합니다.
승자는 달려가며 계산합니다. 패자는 출발도 하기 전에 계산부터 합니다.
승자의 다른 길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패자는 길이 오직 하나뿐이라고 고집합니다.
승자는 더 좋은 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패자는 갈수록 태산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승자의 방에는 여유가 있어 자신의 모습을 여러 지로 변화 시켜 보지만, 패자는 자기 하나가 꼭 들어갈 만한 상자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삽니다.
승자는 순위나 포상과 관계없이 열심히 달릴 수 있습니다. 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포상만을 생각합니다.
승자는 모든 코스, 즉 순탄한 길이나 험준한 고갯길이나 전체에 의미를 둡니다. 패자는 오직 결승점에만 의미를 둡니다.
따라서 승자는 골찌를 해도 거기서 의미를 찾지만, 패자는 오직 일등을 차지했을 때만 의미를 갖습니다.
승자는 달리는 중에도 이미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패자의 행복은 경주가 끝나봐야 결정됩니다.
승자는 자기보다 우월한 자를 보면 존경심을 갖고 그로부터배울점을 찾습니다. 패자는 자기보다 우월한 자를 만나면 질투심을 갖고 그의 갑옷에 구멍 난 곳이 없는지 찾으려 합니다.
승자는 자기보다 못한 자를 만나도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패자를 자기보다 못한 자를 만나면 즉시 지배자가 되려고 합니다.
승자는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합니다. 패자는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합니다.
승자는 몸을 바치고 패자는 혀를 바칩니다.
승자는 행동으로 말을 증명합니다. 패자는 말로 행위를 변명합니다.
승자는 책임지는 태도로 삶을 삽니다.
패자는 약속을 남발하며 삶을 허비합니다. 승자는 벌 받을 각오로 결단하며 살다가 영광을 받습니다. 패자는 영광을 위하여 꾀를 부리다가 벌을 받습니다.
승자는 인간을 섬기다가 감투를 쓰며 패자는 감투를 섬기다가 허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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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동화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 정채봉의《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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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대로의 사랑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이른 아침 감은 눈을 억지스레 떠야하는 피곤한 마음속에도
나른함 속에 파묻힌 채 허덕이는 오후의 앳된 심정 속에도
당신의 그 사랑스러운 모습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층층계단을 오르내리며 느껴지는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의 물결속에도
십년이 휠씬 넘은 그래서 이제는 삐걱대기까지 하는 낡은 피아노
그 앞에서 지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내 눈속에도
당신의 사랑스러운 마음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느낄 수 있겠죠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도 느낄 수 있겠죠
비록 그날이 우리가 이마를 맞댄채 입맞춤을 나누는
아름다운 날이 아닌 서로의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잊혀져 가게 될 각자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그런 슬픈 날이라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당신께 사랑을 받기 위함이 아닌
사랑을 느끼는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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