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 비틀 걸음을 옮긴다. 새벽까지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않았다. 열차의 흔들림에 따라 몸이 휘청인다. 통로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어깨를 부딪히고, 가방에 팔꿈치가 걸리며 앞으로 나간다. 다행이다. 열차의 흔들림 덕분에 내 취한 걸음이 들키지 않아서.

가야할 길이 멀다. 억지로 떠맡은 오늘 저녁 행사 사회 볼 준비를 해야한다. 사회자 큐시트를 만들지는 않더라도 대략 순서와 해야할 멘트를 적어놓아야 한다. 적절한 소개와 표현을 위해 자료도 찾아야한다. 억지로 맡았으나 하겠다고 승락한만큼 잘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리고 지금 내 머리속엔 아직도 그의 숨결과 목소리만으로 가득차있다. 저녁 행사따위 1%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미친척하고 펑크를 내버릴까? 그랬다간 이 바닥에서 매장당하겠지? 문득 머리가 아프다. 숙취 때문일까? 저녁 행사에 대한 부담 때문일까? 아니 뭐 그깟 사회 한번 보는걸로 무슨 부담따위! 큐시트 따위 없이도, 별다른 준비 없이도 잘 해낼 자신있다. 그저 가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냥 지금은 그를 떠올리며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만약 내가 [어바웃타임]의 주인공이었다면 그와의 시간을 무한반복 돌리고 싶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톡방에선 행사준비에 대한 소식이 계속 올라온다. 앰프와 무대장비를 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둥, 차랑 운전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둥, 행사장 배치는 이렇고 저렇고, 몇 시까지 몇 명이 필요하다는 둥. 나는 그 모든 소식을 보고도 못 본척 무시한다. 난 아직 취했고 깨고 싶지 않다.

집에 가서 인도 영화나 한 편 보고 싶다.

아참, 북플에서 제목다는 법을 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