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라 물려줘서 정말 미안해 - 2013 생활민주주의 시대를 여는 F세대 자성론
함영훈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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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세대의 패자부활전

 

대학을 다닐 때였다. 한창 ‘오렌지 족’이나 ‘X세대’, ‘신세대’라는 말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배꼽티’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걸 입은 여학생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느 교수님이 재밌는 과제를 냈다. 요즘 젊은 세대를 흔히 X세대라고 표현하는데, X세대의 정의를 내려 보라. 그리고 자신이 X세대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답하고 그 이유를 증명하라는 과제였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무슨 세대라고 말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세대를 분류하는 기준은 주로 나이였다.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주로 언급하는 그 세대의 주요 특징이 있고, 그 특징에 얼마만큼 해당하느냐에 따라 그 세대로 분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당시 나는 과제를 하기 위해 X세대의 주요 특징을 기술하면서, 나는 그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X세대가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던 것 같다.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주요 특징으로 기술했던 것들을 몇 가지 떠올려본다면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었다. 서태지, 배꼽티, 락카페, 찢어진 청바지, 삐삐(pager) 등등.

 

지방대학이었기 때문에 그랬는지 몰라도, 당시 주위에는 그렇게 젊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문화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느 동기는 영어가 크게 적힌 티셔츠를 입고 강의실에 들어왔다가 혼이 나서 쫓겨났고, 어느 여자선배는 배꼽티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왔다가 주변의 시선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학과방에 갇혀있었다. 락카페를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 거의 없었고, 찢어진 청바지는 아예 보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는 80년대 말 학번들과 어울려 소주방에서 밤새 정치얘기와 NL이니 PD니 하는 정파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낮에는 또 학교 뒷산에 올라 막걸리를 마시며 또다시 정치와 학생운동에 대한 논쟁을 이어갔다. 이렇게 밤낮없이 술만 마시는 우리에게 어느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너희가 이렇게 술만 마시고 공부를 멀리하는 것은 너희가 술을 좋아하기 때문은 아니다. 이 사회가 너희에게 아무런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조금 충격을 받았다. 맨날 술만 마신다고 꾸중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하시니 말이다. 그때부터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회현상과 개인의 역할 및 책임 등에 대해 질문을 품고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이런 나라 물려줘서 정말 미안해』 이 책의 부제는 ‘2013 생활민주주의 시대를 여는 F세대 자성론’이다. F세대라는 말은 현재 40세 전후의 연령층을 지칭하는 말로 Forgotten 세대라고 한다. 50세를 전후한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비교로서 ‘잊혀진 세대’ 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해석된다. 베이비붐 세대에 비해 IMF와 개인주의 등으로 젊은 시절에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잊혀진 세대. 하지만 그들이 지금 인생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40대를 맞아, 인구대비로도 베이비붐세대를 추월하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다시 링 위에 올랐다. 이른바 패자부활전이라고 부를만하다. 책을 읽다보니 저절로 X세대에 대한 과제와 술만 마시던 우리에게 던진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F세대 안에 포함된 X세대를 바라본 당시의 느낌이 궁금해졌기 때문이고, 총선과 대선이 있는 정권말기의 사회현상과 맞물려서 지금 이 사회의 중심에 있는 40대 전후의 사람들의 특징을 갖고 사회적 맥락에서 세대론 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그때 교수님 말씀과 닮았기 때문이다.

 

서태지에 열광했던 X세대, IMF로 인한 청년실업의 원조, 8비트 컴퓨터에서 PC통신, 인터넷 카페와 미니홈피,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거치면서 네트워크 파워를 익혀온 세대, 나이 마흔에도 게임이나 SNS 등에 빠져있는 철들지 않는 중년. 이 책을 통해 살펴본 F세대의 주요 특징이다. 이들이 살아온 궤적과 현재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통계자료와 분석, 개인의 증언 등이 흥미롭다. 특히 <헤럴드 경제>와 케이엠조사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세대별 의식 여론조사를 통해 여러 가지 사회현상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쓴 여러 필자들의 의도처럼 의미 있는 시기에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잊혀진 세대가 많은 역할을 함으로써 진정한 생활민주주의를 열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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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3-22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혀진 세대에게
생활 민주주의가 피어오르는 시대가 오기를...

사회가 향하고 있는 곳이 어느 곳이냐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사고 자체가 사회이고 사회가 곧 사고이니
좋은 나라, 좋은 사회를 물려주는 것이
당대의 사회가 노력해야 할
방향이고 과제인 것을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좋은 책,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 2012-03-28 18:08   좋아요 0 | URL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된다면 참 좋겠지요?
저 역시 그런 사회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좋은 글이라고 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2-03-22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정말 이런 세상을 물려주게 돼서 정말 미안하지요.ㅜㅜ
하지만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가려 노력하는 이들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고 봅니다.
일단 가까운 날에 있을 선거부터 확실하게!!^^

순오기 2012-03-22 15:43   좋아요 0 | URL
아이들 키울때는 정말 극장가기 어려워요.
저도 10년 세월을 극장과 단절하고 살아서, 이제 그 세월을 보상받는 거랍니다.^^
감은빛님도 아이들이 더 자라면 같이 영화관 나들이도 할 수 있어요, 아자아자!!

감은빛 2012-03-28 18:09   좋아요 0 | URL
그럼요! 선거부터 확실하게! ^^

요즘은 극장가고 싶단 욕심도 아예 사라졌습니다.
영화는 저에게 사치라는 생각이 드네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2-03-2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바로 F세대군요, 그리고 확실하게 X세대입니다... 조건을 보니.. ^^

그리고 현 40대가 10-20대에게 미안해하고, 사회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것은 젊은이들이 견디어야 할 몫이야 하기에는, 너무 미안한 일들이 많은거죠. 그런데 삶이 점점 팍팍해지니, 큰일입니다.... 좋은 페이퍼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2-03-28 18:11   좋아요 0 | URL
확실하게 X세대일 것 같아요! ^^

이 사회가 더 망가지기 전에 정치부터 바로 잡고 싶단 심정으로,
녹색당에서 뛰고 있지만,
그 덕분에 제 삶은 더 빨리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