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위정훈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어려서부터 전쟁놀이를 많이 했다. 우리 동네엔 낮은 동산이 하나 있었다.(지금은 그 자리에 지방법원과 경찰청이 들어섰다.) 그 동산에서 뛰어 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편을 갈라서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전쟁놀이를 하기도 했고, 돌을 던지며 싸움을 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피가 나기 마련이었다. 특히 돌싸움을 하다가 두 번은 머리통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돌아갔고, 한번은 눈두덩에 돌을 맞아서 얼굴 반쪽이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가기도 했다. 전쟁놀이에는 딱히 목적이나 이유는 없었다. 그냥 심심하기 때문에 우리는 피를 흘리며 싸웠다. 멋지게 나뭇가지를 휘두르고, 발로 차서 상대방을 쓰러뜨리거나, 내가 던진 돌에 상대편 누군가가 맞아서 비명을 지르면 그저 좋아할 뿐이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열심히 전쟁놀이를 했던 걸까?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떠오른 질문이다.

 

요즘도 아이들은 전쟁놀이를 한다. 다만 이제는 직접 몸으로 싸워서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나 게임기 앞에 앉아서 손가락만 움직여서 전쟁놀이를 한다. 직접 피를 흘리지도 않는다. 화면 속의 캐릭터들이 피를 흘리거나 죽어갈 뿐이다.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 입는 가장 큰 부상은 아마도(장시간 손가락을 놀리느라)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정도이거나, 손목이 아픈 정도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몸을 다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도 분명히 있다. 내 경우에는 해가 지고나면 함께 놀던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버리기 때문에 더 놀고 싶어도 돌아올 수 밖에 없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혹은 게임기)만 있으면 게임이 가능하므로 오랫동안 이 놀이에 매달리게 된다. 부모의 눈만 피할 수 있다면, 늦은 시간까지 게임을 붙들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버렸다.

 

이 아이들은 왜 전쟁 게임을 하는 걸까? 몇 해전 학원에 몸담고 있던 때에, 우리 반이었던 아이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게임을 하냐고? 아이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냥. 재미있으니까! 라고 답했다. 뭐가 재밌냐고 물었더니. 선생님도 해보면 안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나도 해봤다. 정말 재밌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달렸으니까.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 걸까? 이 책이 근본적인 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 유형의 인간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클라우제비츠처럼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의 ‘의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이들이 전쟁 게임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또 파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열심히 전쟁놀이를 했던 이유는 어른들의 전쟁을 따라하는 놀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전쟁 놀이를 가르쳐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티비이거나 만화책이거나 오락실이거나 어른들 중 누군가였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간접경험일지라도 전쟁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회. 이것은 무서운 사회일 것이다. 티비나 만화책이나 컴퓨터 게임을 통해 일상적으로 전쟁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쟁(혹은 폭력)이란 매우 친밀한 어떤 개념이자, 수단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당연히 분쟁지도가 될 것이다. 1945년부터 1991년까지(그리고 뒤쪽에 1995년까지 4장의 지도가 더 있다.)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분쟁지도를 들여다보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전쟁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던가!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인 히로세 다카시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 ‘일인 대안언론’이라고 불린다는 저자의 다른 저작에도 관심이 생겼다. <원전을 멈춰라>는 읽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어서 읽어야 할 것 같고, <체르노빌의 아이들>에도 관심이 생긴다. 훌륭한 저자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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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5-3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젠장. 왜 전쟁을 하는겁니까!
그런 말 있잖아요.. 남자들이 넘쳐나면 전쟁이 난다는...
그런데 정말 여자들만 사는 세상이라면 전쟁이 나지 않을려나요? 음.

잘 모르겠네요. 왜 전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여 하는건지.

감은빛 2011-06-02 11:29   좋아요 0 | URL
저도 궁금해지네요.
여자들만 사는 세상에서는 전쟁이 없으려나요.
여자들 중에서 좀 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나,
전쟁(혹은 폭력)을 통해 뭔가를 이루려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역사적으로 보면 언제나 위정자들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겪을 민중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으니까요.

루쉰P 2011-06-05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만 있는 세상은 전쟁이 나지 않은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하네요. 여자들의 본성은 아이들을 키우는 마음이 있기에 소프트 파워가 강하다고 하더라구요. 예를 들어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어머니가 강하게 혼내도 아이들은 자신을 품어서 낳아준 어머니와의 생명적 끈 때문에 그 마음을 이해하는데 아버지가 어머니처럼 혼내면 아이들에게는 상처로 남는다고 하더라구요. 전 항상 여자가 위대하고 어머니가 위대하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전쟁 반대에 열성적인 것도 어머니들이 많아요. ^^

감은빛 2011-06-07 13:1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대개 군대 문제로 고민할 때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태도는 달라지죠.
아버지는 군대는 꼭 갔다 와야 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이왕 갈거라면 해병대를 갔다 와라~ 이런 식이더라구요.
어머니는 물론 아들이 행여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