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창비아동문고 175
박기범 지음, 박경진 그림 / 창비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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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범이 글을 쓰고 박경진이 그림을 그린, 박기범의 첫 동화집이다.

아내가 이오덕 선생의 <어린이 책 이야기>에 소개된 글을 읽고나서 일부러 찾아 읽었는데, 나는 이오덕 선생의 책을 읽기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한마디씩 평을 던졌는데, 아내가 이오덕 선생도 그런 평을 했다고 말하면서 어쩜 그리 비슷한 성향을 가졌냐고 말하며 머리를 휘휘 가로저었다. 책은 무척 재미있었다. 글 한편 한편이 모두 다 살아있는 글이어서 좋았다. 이런 대단한 작가를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박기범이란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박기범씨는 2000년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꾸준히 반전 평화 활동을 해왔으며, 아프가니스탄 어린이 돕기 운동과 이라크 반전평화 지킴이 활동도 해왔다. 이라크 전에서는 인간방패를 자처하며 이라크에 가서 활동했으며 이후 박기범의 이라크통신(바끼통)을 통해서 반전평화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과연 이 책에 실린 10편의 동화들이 그냥 쓰여진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이 좋은 평가를 많이 받으면서 자연히 판매량도 많았다고 하는데, 박기범씨는 이후 오히려 반전 평화 활동가로서 더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운동판에 있으면서 (관심은 많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반전 평화 운동쪽에는 활발하게 참여하지 못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운동을 제외하면 그리 열심히 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분야가 달랐던 탓도 있고, 여러모로 개인적인 상황들 때문에 이쪽으로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기범 작가의 활동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무척 부끄러웠다.

이오덕 선생은 '내가 보기로 이 작가가 50년대 이후로 우리 남녘에서 활동한 이원수, 권정생 다음으로 우리 겨레 어린이문학을 꽃피울 수 있는 몇 안되는 동화작가로 그 앞날이 크게 기대된다.' 라고 평했다. 그리고 이 책을 소개한 꼭지의 제목을 '흐린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문학정신'이라고 붙였으며 <어린이 책 이야기>에서 첫번재로 소개했다. 선생이 얼마나 박기범 작가를 높이 평가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책에는 <손가락 무덤>, <아빠와 큰아빠>, <독후감 숙제>, <전학>, <문제아>, <김미선 선생님>, <끝방 아저씨>, <송아지의 꿈>, <겨울꽃 삼촌>, <어진이> 이렇게 10개의 글이 실려있다. 이 중에서 노동자에 대한 글이 두 편, 교육에 대한 글이 네 편, 철거민에 대한 글이 한 편, 농민 문제에 대한 글이 한 편, 민주 열사에 대한 글이 한 편, 애완 동물에 대한 내용이 한 편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작가가 얼마나 고심하여 작품의 주제들을 정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독후감 숙제>였는데, 나도 어린 시절 비슷한 경험이 있어 특히 더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이 이야기에는 '작은책'이라는 제목의 책에 실린 만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런 연출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만화가 실제로 존재하는 작품인지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작은책'이라는 월간지가 실제로 있고, 거기에 이런 성격의 만화가 주로 실리기 때문이다. 한번 찾아봐야지 생각했었는데,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문제아> 역시 무척 공감이 가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김형창의 시에 백창우가 곡을 붙인 '문제아'라는 동요가 무한반복을 눌러놓은 것처럼 머리곳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문제아가 되는 건 쉽지만 보통 아이가 되는 건 어려워'라는 노래 가사 한마디가 이 이야기를 모두 설명해 주고 있었다. <겨울꽃 삼촌>은 박래전 열사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박래전 열사는 알지 못하지만 운동판에서 간혹 얼굴을 마주쳤던 박래군씨의 동생이라서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가 박래전 열사가 분신한 숭실대학교에서 공부했기에 이 작품을 쓴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박래군씨의 딸인 '성하'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는데 실제 박래군씨의 딸인 '성아'와 이름을 바꿔놓았다. 또 실제 '성아'의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이 작품에서는 열살로 되어있다. 아마 그래서 일부러 이름을 바꿔놓은 것 같다. 이 이야기에서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열살 밖에 안된 아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놓았다.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이 10편의 이야기들이 전반적으로 다 훌륭하지만 간혹 좀 어색하거나 현실성이 조금 떨어지거나 하는 부분들도 있다. <김미선 선생님>이 그 예다. 돈봉투를 받은 선생님에 대한 내용인데 뒷부분이 좀 어색해서 의외였다. 이오덕 선생도 이 이야기를 지적하면서 무척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아마 당신께서 학교 선생님이셨기에 더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그리고 <송아지의 꿈>에선 왜 일부러 송아지의 시선을 빌어 표현한 건인지 좀 의아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더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어진이> 역시 조금 불편했다. 여기에 실린 다른 글들과 달리 애완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과연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좀 모호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오덕 선생의 평을 읽고 나니, 내가 어색하다고 느끼거나 불편한 기분이 든 부분들은 선생도 역시 짚고 있었다. 박기범 작가가 이오덕 선생의 이 평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르지만(아마 읽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읽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했다.

여기 실린 열 개의 이야기들은 아이들이 주로 보는 만화나 드라마에 잘 나오지 않는 그리고 어른들이 잘 보여주거나 들려주지 않는, 우리 사회를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아이들의 눈으로 들려주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진짜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한 동화이다. 현실에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 괜히 이것저것 가르치려 드는 동화들에 비하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에 대한 반응이 좋다는 얘기들을 들었다. 다행이라 생각된다. 이런 책은 어린이들도 많이 읽어야 하지만 그 전에 어른들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열 살이 넘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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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18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창비의 '좋은 어린이 책'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지요.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일기는 '엄마와 나'라는 제목으로 보리에서 나왔죠. 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어머니와 작가가 같이 일기를 썼는데 그 양이 엄청납니다. 박기범 작가의 가족사와 인생사가 담겨 눈물과 감동이 출렁이지요.

감은빛 2008-08-18 13:24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이 무슨 상인가를 받았다는 건 어디선가 본 듯한데, 창비에서 받았군요. 그리고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일기가 보리에서 나왔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네요.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꼭 사서 봐야겠네요. 값진 정보 감사드립니다!

순오기 2008-08-18 14:08   좋아요 0 | URL
한글을 소리나는 대로 틀려가며 쓴 어머니의 일기와 같이 수록됐는데, 나도 우리 엄마 고생하신 생각 나서 여러번 뭉클했어요. 초등어머니독서회 토론도서였는데 고생을 안해본 젊은 엄마들은 별로 공감하지 않더군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