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달리기


11월 24일 대회가 다가오니 한편으로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달려서 좋은 기록을 올려야 할텐데 라고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지난 주에는 아이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 후에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과 관절 통증 등이 겹쳐서 달리기를 거의 못했다. 그래서 주말에는 꼭 달리기를 해야지 생각했는데, 토요일에도 또 통증이 심했다. 어떻게든 나가서 조금이라도 달려보고 싶었지만, 결국 통증이 나아지지 않아서 포기했다.


일요일 아침에 오늘은 꼭, 반드시 달리기를 하리라 다짐을 했다. 역시나 통증이 있었지만, 진통제를 먹고라도 나갈 생각이었다. 더구나 일요일에는 JTBC 마라톤과 평화 마라톤이 있는 날이라, 점심 때가 지나서 기록증 사진들이 단톡방과 SNS 등에 엄청나게 올라왔다. 지인 중 한 명이 제이티비씨를 또 한 명이 평화 마라톤을 나갔고, 두 사람의 기록을 보면서 나도 오늘은 꼭 달려야지 하고 다시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통증이 적을 때 달리려고 기다리다 보니 오후가 다 갔고, 저녁 무렵에 더는 못 기다리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서 나갔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더웠는데, 일요일 저녁은 조금 쌀쌀했다. 물론 조금 달리다보면 금방 땀이 날테니 상관없다. 잠바를 보관함에 넣어두고 천변 산책로로 내려와 몸을 풀었다.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달리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금 달려보고 상태를 봐서 오늘의 목표를 정하리라. 일단은 15킬로미터까지는 무조건 가고, 가능하면 17킬로까지는 가보자 생각했다. 첫 1킬로까지는 가볍게 천천히 뛰었고, 2킬로 정도에서 어느정도 워밍업이 되어서 슬슬 속도를 올렸다. 생각보다 훨씬 몸이 가벼웠고, 기분이 좋았다. 3킬로를 지나면서 생각했다. 오늘 무조건 17킬로 이상 갈 수 있겠구나.


양화대교


지난 번 15킬로를 달렸을 때, 양화대교 바로 앞에서 돌아섰었다. 그때 다리를 쳐다보며 다음엔 양화대교를 뛰어서 건너봐야지 생각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양화대교를 건너보고 그 다음에 어디로 계속 갈지 즉흥적으로 고르자 생각했다. 다리는 가벼웠고, 숨도 그렇게 가쁘지 않았다. 속도를 높였다가 다시 줄이기를 반복하며 인터벌 훈련하듯이 뛰었다. 지난 번에 15킬로 때는 거의 일정하게 페이스 540으로 달렸었다. 물론 중간에 조금 속도를 냈다가 다시 평균 속도로 돌아오기도 하고, 막판에는 지쳐서 속도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나중에 구간별 기록을 자세히 보니 거의 일정하게 달렸었다. 이번엔 일부러 속도를 높였다가 다시 줄이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5분대 페이스는 유지하고 싶었는데, 중반 이후로 그러니까 양화대교를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페이스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양화대교의 인도는 무척 좁았다. 게다가 보행자가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선유도 공원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자전거를 끌거나 타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 번에 월드컵 대교를 건너갔다가 돌아올 때에는 아무도 없는 다리 위를 달리는 것이 너무 좋아서 전력질주로,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뛰었었다. 그런데 양화대교에서는 제대로 달리기가 어려웠다.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선유도 공원으로 들어갔다. 아주 오래 전에 아마 10년도 더 지난 옛날에 여기 놀러 왔었다는 사실만 기억나고 공원의 모습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두워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 달리다가 막다른 길에 접어들어서 다시 돌아나와야 했다. 바깥으로 크게 도는 길을 찾아서 달렸는데, 저녁 시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차라리 좀 더 있다가 아예 밤이 되어서 나올걸 하고 후회했다. 불광천 산책로는 늘 그렇듯 사람이 많았지만, 한강으로 나오면 좀 적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많았고, 여기 양화대교와 선유도 공원 역시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달리기가 어려웠다. 양화대교로 돌아가기 않고 선유도 대교인가? 남쪽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발견하고 거기를 건넜다. 그리고 한강의 남쪽을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양화대교를 만나 이번엔 건너왔던 길의 반대편 인도를 향해 계단을 올랐다. 양화대교를 건너서 돌아왔을 때 11킬로미터를 찍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이쯤에서 든 생각이 오늘 어쩌면 하프를 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였다. 그래. 22킬로를 한번 가보자. 아니 적어도 20까지는 가보자 생각하고 불광천 방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쪽으로 계속 뛰었다. 20킬로를 뛰려면 약 1킬로만 더 동쪽으로 갔다가 돌아가면 되리라 생각했다. 내가 산수를 잘 하지는 못 하지만 아마도 맞으리라 확신했다. 달리다보니 저 멀리 서강대교가 보였고, 여의도의 여러 건물들과 국회가 보였다. 국회가 가까이 보이는 지점에서 12킬로를 찍었다. 이제 방향을 바꿔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양화대교 아래를 지나고 무슨 군함있는 곳을 지나서 슬슬 힘들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어! 이러면 곤란한데. 아직 돌아가려면 멀었는데, 벌써 지치다니! 어떻게든 갈 수 있을거라고. 오늘 꼭 20킬로를 찍겠다고 마음 먹고 열심히 달렸지만, 페이스는 계속 떨어졌다. 달리다보니 자꾸 소변이 마려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신경이 쓰였다. 벌써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었는데 또? 마지막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화장실에 들렀다. 소변기 앞에 섰는데 역시 나오지 않았다. 아까 분명 소변을 보았는데 왜 자꾸 마려운 느낌이 들까? 다시 옷을 입고 세면대에서 얼굴의 땀을 씻었다. 이런 형태의 간이 화장실들은 좁고 세면대가 출입문 바로 앞에 있다.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고 있는데, 출입문이 일부 열리더니 밖에서 누군가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달렸다. 마지막으로 손으로 물을 떠서 목 뒤쪽에 붓고 허리를 펴고 화장실을 나가려고 하는데, 바로 앞에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남자 청소년 두 명이 당황한 표정을 하고 서있었다. 아! 얘네들이 화장실에 들어오려다가 내 긴 머리를 보고 여성이라 생각하고 멈칫 했구나. 그리고 다시 확인했겠지. 분명 남자 화장실인데 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둘이서 수군거리고 있었구나. 내가 그들을 스쳐 지나는데, 한 명이 말했다. 거봐! 남자였잖아 라고. 


화장실에서 시간을 제법 뺏겼고, 양화대교를 오르내리는 네 번의 계단에서도 제법 시간을 지체했다. 게다가 아직 돌아갈 길의 반도 못 왔는데 지쳐버렸다. 이때 오늘 5분대 페이스는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14킬로미터 지점에서 확인해보니 지금까지 페이스는 640 정도였다. 속도를 다시 높여서 620까지는 만들자고 생각했으나 이미 지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쯤부터 갑자기 발등에서 조금씩 통증을 느꼈다. 발의 피로도가 한도를 넘어서 발에 있는 작은 인대와 근육들이 놀란 모양이었다. 15를 넘어 16, 17 킬로를 지나면서는 약간 발에 쥐가 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조금 회복된 느낌이 들면 다시 뛰고, 또 쥐가 날 듯한 느낌이 들면 걸었다. 이렇게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해서 18킬로를 지났고, 마지막 2킬로는 속도를 좀 내보자 하고 뛰었는데, 역시 원하는 만큼은 되지 않았다. 


역시 무리였구나. 오늘은 그냥 17이나 18에 만족하고 20까지 욕심을 내지 말았어야 했다 하고 생각했지만, 11킬로 지점으로 다시 돌아간다해도 아마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마지막에는 발에 쥐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무시하고 그냥 뛰었다. 이게 정말 쥐가 나면 큰일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그냥 밀어붙였다. 숨이 너무 찼고 다리는 무거웠다. 너무 힘들었다.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고개가 자꾸만 숙여졌다. 


흰머리 휘날리며


19킬로 지점을 지나면서 이제 1킬로 남았다.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하며 또 속도를 높였다. 정말 이제는 남은 힘을 쥐어 짜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속도를 잠깐 높였다가 금방 지쳐서 느려졌다. 너무나도 걷고 싶었지만, 참고 계속 뛰었다. 그렇게 한참 죽을 것 같은 몸과 마음으로, 억지로 뛰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왼팔을 붙잡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멈춰섰고, 돌아보니 최근 몇 년간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발을 멈추고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순간 갈등했다. 남은 1킬로를 마저 뛰어갈테니, 저 끝에서 만나자 라고 얘기하고 다시 몸을 돌려서 뛸 것인가? 아니면 이미 너무 지쳤으니 그냥 여기서 멈추고 이 녀석과 함께 걸어갈 것인가? 머리는 1번을 원했으나, 몸은 2번을 원했다. 나는 짧은 고민 끝에 2번을 택하고 달리기 기록 앱을 멈췄다. 19.45킬로미터였다. 출발점까지 남은 거리는 아마도 1.3 에서 1.5정도 될 것 같았다. 20을 찍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처음 목표였던 17은 훨씬 넘었으니 여기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녀석과 함께 걸으며 여기 왠일이냐고 물었더니 서울시가 만든 9988이란 앱에 8천보를 찍기 위해 산책을 나왔다고 했다. 걷고 있는데, 갑자기 흰머리를 그것도 긴머리를 휘날리며 뛰어 지나가는 사람이 보여서, 한 눈에 나라고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는데, 내가 못 듣고 뛰어서 지나가버려서 뒤따라 뛰어와서 잡은 거라고. 흰머리를 휘날리며 라는 표현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 아까 간이 화장실 앞에서 당황했던 아이들도 생각났다. 약 1킬로를 걸으며 호흡을 회복하고 다리 근육을 풀어주려 애썼다. 숨이 정상으로 돌아오니 갑자기 엄청나게 배가 고팠다. 나는 얼른 뭐든 먹으러 가자고 재촉했다.


이제 대회까지 채 3주도 남지 않았다. 아니 아직 3주가 남았으니 조금 더 훈련할 수 있다. 지금 목표를 정하기 보다는 1주일 남은 시점까지 열심히 달려보고 그때 기록을 보고 대회 목표를 정해야겠다. 19킬로미터를 뛰었다고 지인들에게 열심히 자랑을 했다. 나를 장거리 달리기로 이끌었던 형이 이제 너는 하프를 뛰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형, 저 아직 20까지는 못 갔어요. 라고 답했다. 물론 이렇게 꾸준히 달리면 내년 초에는 하프 정도는 뛸 수 있겠지 싶다. 그럼 풀코스는? 나중에 풀코스를 달릴 정도의 실력이 되면 그때 고민해봐야겠지. 불과 3달 전만 해도 내가 풀코스를 뛴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이젠 상상 정도는 해볼 상황이 되었다니! 어쨋든 이렇게 점점 달리기를 잘 할 수 있는 몸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정말 좋다. 앞으로도 즐겁게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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