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고 일은 줄어들지 않아
한동안 야근을 안했다. 일은 많이 밀려 있었지만, 일부러 야근만은 피했다. 쭈욱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 다가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건물에서 늘 야근하는, 자주 밤샘하는 이웃 일터 몇몇 분들이 저녁 8시나 9시쯤 퇴근하는 나를 보며 "왜 요즘은 야근 안 해요? 맨날 야근하던 사람이."라고 묻기도 했다. 그렇다고 저녁 시간을 푹 쉬거나 한 것도 아니다. 저녁에 외부에서 회의가 있었던 날도 있었고, 집에서 일터 일이 아닌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들이 있기도 했다. 한 편으로는 피로에 찌든 몸과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관절 통증까지 매일 야근을 할 몸 상태가 아니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야근을 자주 해야 할 시기가 왔다. 일단 일이 엄청나게 몰리는 시기이기도 하고, 낮엔 회의와 찾아오는 사람들과 강의 등으로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이 없었고, 저녁에도 이것저것 급하게 치고 들어오는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늘 새벽이 되곤 했다. 정작 밀린 일은 계속 손을 대지 못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 급격하게 느껴진다. 지난 번에는 딱 하루 밤새 일하고, 오전에 현장 답사를 갔는데, 거기서 만난 친분이 있는 업체 담당 부장님께서 나를 딱 보더니 곧바로 "밤새 일하고 오신 거예요?" 물었다. 얼마나 상태가 안 좋아보였으면 첫 마디가 저 질문이었을까? 그리고 또 다른 날엔 밤새고 오후 늦게까지 일한 후에, 집에서 조금만 쉬다가 다시 밤에 일해야지 했는데, 다음날 늦은 아침까지 깨지 못하기도 했다. 불과 3년 전에만해도 3일 연속 밤새 작업하며, 잠깐씩만 졸아도 잘 버텼다. 3일 연속 밤샘 작업하고 하루 쉬고, 또 3일 연속 이런 식으로 일을 이어가기도 했다. 최고 기록은 87시간 동안 연속 일하면서 집에는 잠깐씩 들어가서 씻고, 옷만 갈아입고 나왔던 것. 물론 그 시간에 잠깐씩 졸았던 시간은 포함되어 있다.
지난 주 금요일 저녁 예정보다 훨씬 늦게 퇴근하면서도 애초에 생각했던 일의 10분의 1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계속 밖에 있었고, 오후에 사무실 돌아와서도 두 건의 미팅이 기다리고 있었다. 각 건마다 그 정도로 시간이 걸릴줄 몰라서 둘 다 시간이 더 걸리는 바람에 나는 컴퓨터 앞에 전혀 앉아보지도 못했고, 앞 타임의 방문자는 논의를 다 마치지 못하고 다시 날짜를 잡았고, 뒷 타임의 방문자는 제 시간에 도착하고도 나를 기다리느라 한참을 시간을 허비했고, 결국 서로 다음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겨 대화를 나눠야했다. 결국 또 해야할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다.
금요일은 아이들을 만나는 날인데, 기다리는 아이들이 혹시 배고파할까봐 걱정이 되어 마음이 급했다. 전화를 걸어보니 다행히 애들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있다고 했다. 그제서야 안심하고 토요일인 내일 발전소 청소를 가기 위한 준비물들을 챙기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 한 두건을 마친 후에 퇴근했다. 가면서 생각했다.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으니, 밤엔 애들하고 장난치고 놀다가 자야겠다. 내일도 발전소 청소를 마치고, 하루종일 고생한 나를 위해 술 한잔 해야하니 또 일은 못 하겠구나. 일요일 저녁에 애들을 보내놓고, 지역 녹색당 운영위원회 회의 자료를 만들어서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나서 사무실로 가서 밤새 일을 해야겠다. 일요일 밤을 사무실에서 보내면 월요일부터 또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내겠지. 분명 밀린 일을 다 처리하려면 며칠을 밤을 새도 모자랄거야.
그리고 그 생각 그대로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밤까지 보내고, 지금 월요일 아침을 맞는다. 사실 어제 오후에 아이들을 보내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전날 발전소 청소 하느라 무리해서 등과 어깨쪽에 근육통이 있었고, 시원찮은 무릎과 발목으로 수백번 사다리를 오르내리느라 관절 통증도 있었다. 너무너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맡아 놓은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어쩔수 없이 급하게 안건지를 만들어놓고 회의 장소로 갔다. 일요일 저녁 늦은 시간, 춥고 비까지 내려 기분은 급격하게 다운되었지만,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는 길어졌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사무실로 출발했고, 12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분명 가볍게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섰었고, 회의하면서도 간단한 간식을 먹었는데, 사무실 오자마자 급격하게 배가 고팠다. 졸릴 것을 대비해 편의점에서 에너지 음료를 사면서 삼각김밥과 샌드위치 등을 잔뜩 사서 먹었다. 집에 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과식을 하고도 자꾸 뭔가가 먹고 싶었다.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밤새 일을 했음에도 별로 피곤하지는 않다. 공동사무실에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능률이 좋을때 일을 더 해야지 생각했는데, 아까 마을에서 활동하는 선배 한 분이 불이 켜진 우리 사무실 문을 열고 밤새 일한 거냐고 물어서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니 흐름이 깨져 버렸다. 잠시 쉬며 담배를 피우고 이왕 흐름이 끊어진 것, 알라딘에 짧은 글이나 하나 남겨야지 생각했다.
사실 쓰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었는데, 그걸 다 쓰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여, 그냥 금요일부터 바쁘게 지낸 주말 이야기를 짧게 전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월요일인 오늘도 저녁 늦게까지 회의가 있다. 그리고 아마 오늘도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일을 해야할 것 같다. 과연 언제 집에서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을까? 일단 빨리 일이나 계속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