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몇 년간 혼자 일하다가 작년 봄부터 일터에 신입 활동가가 한 분 들어왔다. 여성이고, 나이는 나보다 살짝 어리며, 문화영역 활동 경험이 많은 분이다. 혼자 많은 일을 해오다가 한 사람이 늘어서 무척 든든했다. 무엇보다 이전까지 일을 하다가 뭔가 막히면 의논할 상대가 없었는데, 일터에서 누군가 대화 상대가 생겼다는 점이 좋았다. 외부 일정 때문에 밖에 있을때 급한 요청이 오면, 사무실에서 도와줄 사람이 생겨서 좋았다.
하지만 사람이 늘었어도 내 일은 거의 줄지 않았다. 그 분이 가져간 양보다 오히려 더 많은 일이 생겼다. 이건 뭐 일이 많은 건 평생 바뀌지 않는 팔자려니 하고 살아야 하나보다.
암튼 1년간 마음 든든하게 함께해 준 활동가가 당분간 병가로 자리를 비운다. 다시 혼자가 되고보니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다. 우선 대화 상대가 없어진 점이 제일 아쉽다.
혼자 살고, 혼자 일하니 업무 때문에 사람을 만나거나, 회의에 참석하는 일 외에 누군가와 맘 편히 이야기 나눌 기회가 적다.
물론 내가 일하는 곳은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협동조합들을 비롯한 사회적경제 단위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용 사무실이기 때문에 오가며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꽤 있다. 간혹 야근하는 날엔 옆 사무실 선배와 즉흥적인 술자리를 만들어 스트레스를 풀기고 한다. 가끔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나 후배들도 제법 있다.
그러니 이 아쉬움은 좀 더 친밀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갈증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하루종일 아무도 안 만났던 날보다, 애들이 왔다가 돌아간 날이나, 적당히 친한 선후배와 한 잔하고 헤어진 순간이 훨씬 더 외롭고 견디기 힘들다.
이 갈증은 쉽게 해결할 수 없으리라 본다. 현재 내 생활영역과 활동영역에서는 이 갈증을 풀어줄 가능성이 없다. 뭔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에 지금의 나는 너무 일이 많고, 여유가 없고, 지쳐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해갈의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책정리
급하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 집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시기부터 늘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는데, 갑자기 기회가 찾아왔다. 이사갈 집도 아주 맘에 드는 좋은 집은 아니지만, 적어도 반지하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정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으니 무조건 잡아야했다.
이 집에 와서 짐이 많이 늘었다. 친한 선배가 세탁기도 사줬고, 내 키만한 냉장고도 샀다. 이런저런 자잘한 짐들이 말할 수 없이 늘었다. 게다가 책도 제법 많이 늘었다.
오늘은 다시 읽을 일이 없을 듯한 책들을 삼십여권 챙겨서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 두꺼운 책들도 좀 있었고, 나름 흔치 않은 책들도 있었고, 몇 년간 한번도 손대지 않은 만화책도 한 질 넣어갔는데, 완전 실망하고 돌아왔다. 만화책은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그냥 가져갔더니, 습기로 인한 손상 등으로 3권을 매입불가 통보 받았고, 두꺼운 책도 상태가 최상임에도 가격이 예상보다 훨씬 낮게 나왔으며, 두껍지 않은 책들은 대부분 균일가로 표시되어 1천원씩 값이 매겨졌다. 재고수량 초과로 판매하지 못한 책들도 몇 권 있었다.
나름 고르고 골라서 가져갔는데, 결과가 이래서 좀 힘이 빠졌다. 게다가 그 와중에 큰 아이와 서로 좀 오해가 있어서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기에 더 기분이 엉망이다.
또 갈증
지금은 애들엄마 집에서 곧 돌아올 예정인 애들엄마를 기다리며 이 글을 쓴다.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쓰고픈 글도 많은데, 나는 늘 여유가 없다며, 시간이 없다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갈증이다. 책과 글에 대한 갈증 역시 점점 더 심해지는 듯하다.
이렇게 기분이 우울한 날엔 술을 홀짝거리며, 정말 재밌는 SF소설을 읽고 싶다. 마침 애들엄마의 책상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재미있을 것 같다. 당장은 한 권이라도 책을 늘리는게 부담스러우니, 이사가면 사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