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길. 쩌렁쩌렁 소리도 우렁차게 서럽게 우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깜짝 놀라 가보니 그 아이,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고 소리로만 울고 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응? 괜찮아. 괜찮아."하고 다독여준다. 아이는 더 크게 울어댄다. 그리고 곧 뚝 울음을 멈추고 찔끔찔끔 달아난다. 멀뚱히 지켜보다 핏, 하고 웃고 만다. 소리내어 서럽게 울어대는 아이를 부러워하는 나를 봐서.

처음, 갓난아기 때를 기억한다고 말하면 다들 내가 평소 잘하는 거, 즉 '뻥의 세계'를 기어이 펼쳐댄다고 웃고만다. 그렇다. 나는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일이 자연스럽다. 꽁하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은 마음이 불편하니까. 그렇다고 이 한 몸 희생하여 기분을 풀어 주리라는 자각은 없다. 하는 짓이 덜 떨어지고 엉뚱하여 옆에 있는 사람을 재밌게 해줄 뿐이다. 이런 평을 직접 들을 때, 나는 참으로 기막히게도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어떻든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얘길 하면서 말한다. "그래 믿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하고. 그리고 자주, 시간 날 때마다(실은 시간을 일부러 내서) 반복해서 말한다. 이건 정말 비밀인데 내가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신뢰를 얻는 계략이다. 같은 말을 눈치 못 채게 질리도록 여러 번 들려주는 것이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방법인 것이다. 우습게도 통한다. 지금은 하도 말을 해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아주 어릴 적을 기억하는 유별나고 신기한 아이로 알고 있다. 이렇게 쓰니 무슨 사이비 교주와 순진한 성도들의 관계 같기도 하다.

무턱대고, 순도 100퍼센트 진심을 터무니없는 장난처럼 흘려버릴 때가 있다. 보통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본다. 자기만의 세계가 유달리 공고하여서 쉽게 자신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사람이라고. 누구에게나 다 친절하나 아무에게나 쉽사리 자신의 얘기를 떠벌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그들은 알까. 장난처럼 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 가슴이 얼얼해지는, 속 깊은 진실이 끈덕지게 들어가 있다는 것을. 그 말을 얼떨결에 뱉고나서 내가 한 짓을 떠올리며 짧지만 진한 쓴웃음을 짓는다는 것을.

모든 기억은 기억하는 사람들의 상황과 편의에 따라 왜곡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내가 기억하는 사실을 고집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기억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해서 나는 내가 기억하는 바를 떨치지도 못한다. 내가 기억하는 순간은 가을이고 어스름 저녁 즈음이다. 방문 앞의 찬 마루에서 포대기에 싸여 있어서 볼이 시렸다는 느꼈다. 그런데도 내가 소리를 내서 울면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나를 위협하는 뭔가가 있었던가. 아닌가. 나는 그때 본 방안의 형광등 불빛도 그리고 마루의 불빛도 앞 화단의 모습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의 서늘함을 떠올리면 으스스하고 소름이 돋고 쭈뼛거리는 일도 여전하다.

눈물만을 뚝뚝 흘려대는 일을 누가 가르쳐주거나 시킨 것도 아니다. 내가 소리내 울면 누군가가 윽박질러댔던 적도 없다. 그럼에도 아무 소리도 없이 눈물만을 떨궈내는 궁상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혼자 있을 때만 조용히 우는 버릇이 어릴 적 그 기억에 연유한다고 한다면 다들 의아해할 것이다. 나 자신도 우습기 짝이 없는, 허술한 인과관계이어서 더 그렇다. 하지만 어쩌랴. 진짜로 그렇다고 느끼는 내가 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I와 같이 자취를 했다. 나는 오빠와 같은 도시에 있는 여고를 다녔으므로 1학년때 부터 오빠와 자취를 했었다. 말이 자취지 거의 날마다 부모님이 오셔서 밥을 챙겨주시고 청소를 해주시고 가셨다.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데는 버스 기다리고 어쩌고 하는 시간까지 해서 두어 시간 걸리나, 자가용으로는 거의 사십분 밖에 안 걸렸다. 그래서 일 마치시고 부모님은 저녁 늦게라도 자취 집에 들르곤 했던 것이다.

그랬는데 오빠가 대학을 가고 옆방이 비자 나는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던 친구를 꼬셨다. 같은 중학교를 나온 그 친구와 친한 정도를 봤을 때 그 아이가 전혀 마다할 이유도 없어 보였다. 다만 그 아이가 주저한 것은 자기 언니가 해준 말 때문이었다. 친한 친구랑 같이 자취를 하면 열이면 열, 모두 의가 깨진다고 했던 말. 이 때문에 머뭇대고 있었다. 그때는 친구더러 너무 소심하다고 툴툴거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기우만도 아니었던 것 같다.

비록 방은 따로 쓰지만 생활 방식이 전혀 다른 두 아이가 같이 밥 먹고 학교 오고 가고 하면서, 부딪칠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옆방에 자취를 했고 우리 부모님은 고 3 자식을 둔 사람들답게 자주 집에 오셨다. 그리고 아침밥을 해주고 가셨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한 일인데 그 친구와 종종 다퉜다. 실은 다퉜다기보다는 나 혼자 화내고 화 식히고 하는 편이었다.  같은 반이기도 했던 그 아이와 학교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투덜대는 일이 잦았던 것 같다. 하지만 I는 대부분을 이해해주었고 감싸주었다.

때는 수능을 한달 하고도 보름정도 남았을 때. I의 어머니가 당뇨 합병증으로 생명이 위태롭다는 말을 I에게서 들었다. 나름대로 I의 예민한 신경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썼지만 못된 습성은 어디 가랴. 지금은 기억도 못하는 사건 때문에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던 I. 그녀는 이런 나를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가 대문의 자물쇠를 걸어놓았다. 시기가 시기였던지라 아주 많이 서럽고 아팠으리라.

하지만 자취 집의 바깥방에 살았던 나는 화가 덜 풀려서 문 열어달라고 큰소리 내다가 아무 기척이 없자 내 방으로 들어가 잤다. 한참 자고 나서도 씩씩댈 만큼 화가 덜 풀렸다. 나는 굳게 닫친 대문은 애초에 열려는 시도도 않았다. 그리고 내 키를 훌쩍 넘는 담을 넘해서 안집으로 들어갔다.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고 치기만 펄펄하던 그 십대에 못할 일이, 무서울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I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나는 그제까지 울고 있던 I를 향해 대화 좀 하자고 그랬다. 화날 수록 침착해지는 나는 우리가 하는 건 대화이고 나는 네게 아무런 나쁜 감정 없다고, 다만 맺힌 게 많아서 그러니 얘기로 좀 풀자고 헛소릴 했다. 어디 제 정신이었을까 만은 나의 침착함은 그래도 나의 행동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했다.

I는 눈물만 흘렸고 나는 나대로 아랑곳않고 조목조목 따져가기 시작했다. I가 너무 서럽게 울었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참을 울고 조금 잠잠할 때 그리고 "SY! 니가 밉다. 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무슨 커다란 잘못을 했길래 이런 말을 들어야 했는지 그때는 정말 알지 못했으므로.

그러면서도 불안했다. '정말 이러다 애가 날 다시는 안 본다고 하면 안 되는데---.' 불안하고 초조했다. 나는 그때부터 눈물을 짜냈다. 엉엉 소리내 울었다. 눈물이 눈물을 부르고 우리는 얼마나 그렇게 물기를 짜냈을까? 사람 몸에 물 성분이 많다는 말을 그때 절실히 몸소 느꼈다.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조금이라도 슬펐던 일을 생각하면서 의식적으로 울었다. I는 나의 모습에 당황해했고 그때다 싶어 나는 아직도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I의 단호한 대답. 여전히 그렇단다. 상심한 나는 네가 얼마나 저질인지 사람을 얼마나 질리게 하는지 잔인하게 읊어댄다. I는 그 새벽에 집을 나갔고 나는 차마 따라잡지 못했고 어둠을 서성이다 내 방으로 들어왔다. 

다음날 여전히 내 부모님이 오셨고, 아침밥을 해주시면서 둘이 싸웠냐고 물으셨다. I는 일찍 학교에 가더라며. I한테 잘 해달라고 당부하는 어머니의 말에 뭐라 대꾸하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I가 새벽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일에 안도했고 절망스러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안하단 말을 하려고 했다. 인사치레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잘못했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했는데 편지로 그런 말을 썼다. 그리고 전해주지 못했다. 그날 학교에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있는 I를 자극할 순 없어서였다. 우리가 싸운 지 하루만에 I가 말을 걸었고 나는 불안하기만 했다. 좋지 않은 징조. 내색하지 않는 고통이 더 무서워서.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났을까. I의 어머니가 급기야 병상에 누우셨다고 했고 I는 고향집에서 통학했다. 자연스럽게 나와 같이 살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수능 바로 얼마 전에 돌아가셨고 선생님과 친구 몇은 I의 집에 갔다. 상복을 입은 그 아이를 나는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독한 향냄새가 매웠고 견딜 수 없어 연신 훌쩍이다 밖으로 나와 울었다. 다시 돌아와 아무 일없는 척 있는데 I가 다가와 연신 고맙단다. 나는 뭐가 고마운지도 몰랐다. 지금도 역시 모르겠다. 

내가 소리내 울어본 게-내가 기억하는 것이- I와의 일에서였다. 슬픔을 가장하면서 울었고, 울면서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 기가 막힌 일을 저질렀던지, 진심을 보이는 일이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지---. I는 이때 있었던 일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고 나는 정말 말하고 싶다. 너무 두려웠다고, 너를 잃게 되는 일이. 비록 짜내고 짜낸 그 눈물이 다 가짜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언젠가는 필히 말하고 싶다.

울 일이 있으면 나는 혼자서, 조용히 눈물만을 떨군다. 내가 그때는 몰랐지만 I를 부러워도 했을 듯 싶다. 내가 아까 소리내 오는 아이를 부러워했듯이. 엉엉 울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시끄럽게 떠들썩하게 노닐지만 어찌 울 때는 그리도 고요할까. 나에게 결핍된, 내가 상실한 그 소리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참 이상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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