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들어가라."

 "(푸핫) 여직 너네 동네에서는 '사랑해'랑 같은 말이 '들어가라'냐?"

 "......"

 "(제법 근엄하게)사랑해."

"어, 나는 미안해."

"......"

나의 살던 고향에서는 전화를 끊으면서 하는 인사말는 "들어가라(혹은 "그럼 들어가세요)"다. 이걸 예전에 I, 이 녀석한테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지로 그렇게 수 년을 별 의식없이 써온 말인데 왜 그러는 거냐고 빤히 쳐다보면서 묻는 아이에게 나의 대답은 궁색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처음엔 예의상 건네는 이 인사말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밥 먹었냐?"와 "어디 가니?"와 같은 거라고 했다. 그래도 멀뚱히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어 보이길래, 얼굴 안 보고 전화로 대화하면서도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상대에 대한 무한한 배려와 사랑과 관심이 깃든 말이라고,(물론 어조에 따라 느낌이 상당히 달라지겠지만 이건 자연 무시!) 상대가 전화를 끊고 보호와 안식의 어떤 공간 안에서 편히 머물라는 뜻이라고 뻥의 세계를 펼쳐댔다. 물론 효과는 전혀 없었다. 대놓고 나를 한심한 듯 아래 위로 훑어봤으므로. 그런데 정말로 "들어가라."는 말의 뜻은 정말 어조나 상황에 따라 이런 의미도 들어가나 보다. '그대의 말씀을 그만 듣겠사오니 우리 전화통화를 종료하십시다'는. 이처럼 정중한 뜻이 담겨있는 것같다. 사랑 받는 게 왜 이렇게 부담스러운지 모르겠다. 사랑 주고 사랑 받는 게(안 주면서도 받는 것까지 포함하야)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어색하고 버겁게 다가온다. 이제 나도 지칠 줄 모르던 그 뻔뻔함에서 벗어나는 건가. 그랬으면 좋겠다. 어떻든 내가 원치 않는 사랑을, 내가 취하는 거부의 포즈를 무시당하면서도 더 이상 강력히 말하진 못하고, 상대가 보여주는 마음을 보기만 하는 건 분명 상대한테 미안한 일이다. 스스로도 괴로운 일이고. 그것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아,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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