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는 강의가 없다. 전공만 줄기차게 듣는 지라 그렇다. 금요일부터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까지 황금 연휴인 거다. 그런데 오늘 보강이 있어서 어색하게 학교에 나갔다. 1,2교시라 졸면서 수업을 겨우 들었다. 수업 마치고 과사무실에 조교 선생님께 갔다. 실은 복사할 게 있어서 간만에 조교선생님도 보고 여하튼 겸사겸사 간 거였다. 친구가 복사를 대신 해준다길래, 그 녀석에게 맡기고서, 난 선생님과 한참 이번 선거 얘기만 했다. 복사할 분량이 꽤 있어서 한참 걸렸다.  

곧 학과 친구 녀석이 들어왔다. 1학년 때는 인사만 하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부쩍 친해진 느낌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거는 아니었다. 그 녀석이 판소리 문학론, 그 강의 자료를 애들에게 첨부파일로 보내주면서, 간단하게 애들에게 메일을 썼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앞으로 먹고 살거 걱정한다는 얘기였다. 가족들의 냉대를 넘어선 무관심에도 꿋꿋하리라는 서글픈 다짐을 하기도 했었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두리뭉실하게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에게 보낸 거지만, 내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었다. 그런 고민을 지나온, 어쩌면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여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기에. 이런 얘기만 나오면 늘 변함없이 하는 말이 있다. 빛나는 시기가 지금이라는 것, 힘들게 생활한 만큼 분명 얻는 게 있을 거라는 것 등 등. 뻔한 얘기지만 이런 말들을 들었을 때 날 가슴 뛰게 만들 만한 감격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얘기를 쉴새 없이 메일에 적었던 거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그 녀석이 답신을 보내왔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의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메일질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우스운 건, 글로는 별 얘기를 다 하는데, 따로 만나서 밥도 먹고 얘기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거다. 예전처럼 얼굴을 봐도 식상한 인사말과 함께 몇마디 붙일 뿐이다.

어떻든 그 녀석이 체했단다. 어제 저녁에 먹은 만두가 소화가 안 된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기꺼이 손가락을 따주겠다고 했다. 본 건 있어서 쉬울 것 같았다. 실은 한번도 남의 손에 바늘을 댄 적이 없다. 하다못해 내가 내 손가락을 찔러 본 적도 없었다. 그래도 여러번 해봤다고 말하면서 녀석의 손을 움켜 쥐었다. 조교 선생님과 옆에 있던 근로학생의 말을 들어가면서 바늘로 콕, 찔렀다. 맞다. 나 긴장 많이 했었다. 녀석은 겁이 많은지, 아니면 나를 못 미더워한 건지 벌벌 떨고 있었더랬다. 힘껏 찔렀는데 피가 안 나왔다. 녀석은 놀랐는지 얼굴이 시뻘개졌다. 다시 한번 시도하려는데, 기겁을 한 녀석이 됐다고 단호히 말했다. 슬슬 오기가 작동한 나는 손을 잡아 빼듯이 해서 다른 손 엄지 손가락을 또 찔렀다. 그 순간에는 일말의 미안함같은 건 없었다. 검은 피가 나와야하는데 안 나와서 살짝 흥분했었나보다. 당연한 것, 상식적인 경우를 벗어나는 데 사람들은 공포에 가까운 불안함을 느낀다고 한 말이 딱 나에게 적용되는 일이었다. 

그렇게해서 피를 봤다. 녀석의 손가락을 꾹꾹 눌러서 짜내니까 몽글 한 방울 맺혔다. 검붉은 피는 아니었다. 그냥 붉기만 한 피였다. 어떻든 그때의 쾌감이란. 녀석의 피를 보기 전에는 단순히 호기심으로 해보면서 남의 살을 찌르는 데 대한 무서움과 녀석이 몸이 안 좋다는 말에 걱정하던 마음이 말끔히 사라졌었다. 피를 본 나는 기세당당하게 친구가 해준 복사물을 들고 나왔다. 그때의 성취감(?)이란 이루말할 수 없다. 밥을 먹고 오후에 도서관을 얼쩡 거리는데 녀석을 봤다. "이제 속이 괜찮지?"하고 물었는데 녀석은 여전히 속이 안 좋다고 했다. 분명히 피를 봤는데 왜 그러지? 나는 차라리 소화제를 얻어다 주는 게 더 현명했던 건가? 지금 녀석한테 문자질로 이제 좀 어떤지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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