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창작 수첩

   예를 들어서, 이런 방법이 있다. 어리석을 정도로 고집이 세고 자기 중심적이고 타협이나 화해를 싫어하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특히 냉정하고 자신은 아프거나 빚을 지거나 남의 도움을 빌려야 할 정도로 곤란에 처하는 일은 영영 이제 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종교나 도덕이나 사랑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에 관심이 희박하고 앞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욕망이 강한 사람. 생물학적으로 성별은 female이고 나이는 삼십삼 세. 독신. 건강상태 양호. 중산층 출신이나 노동 의지와 독립심이 특이할 정도로 상당히 강하다. 어떤 점에서는 과격하기조차 하다. 이런 인물을 설정한다. 이 설정은 임의이고 독립적인 것이므로 동시대의 한국 여성을 대표하는 성격이 있다거나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 옹호해야 할 입장에 있다거나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 하는 문제와는 물론 직접 관련이 없다. 그렇게 시작한다.

 

   작가의 생각

  비록 나 자신 결혼이나 가족제도나 남녀관계에 대해 어떤 특정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참견할 생각도 없다. 나는 구둘이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것을 갖고 그들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것을 갖는다.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그것은 사생활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저마다 이런 '다른 점'들을 가지고 사생활을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 '다른 점'을 가지고 있는 유경이 다수를 대변하는지 아니면 특이한 소수인지 나는아직 그것을 판단하지 못한다. 나는 사람들과 사생활에 대해서 개인적인 대화를 깊이 나누어본 적이 없고 또한 신문이나 집지나 방송 매체들에서 등장ㅇ하는 사람들의 삶이 어느 부분에서는 사실(혹 존재한다면)과 많이 다르며 가치관과 견해의 문제에서는 상당히 미묘하거나 모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에는 왜곡되고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는 것이 보통이다.

 

   BGM

   대개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을 한다. 오디오와 텔레비전을 동시에 틀어놓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텔레비전의 소리를 없앤다. 단, 공중파 방송은 보지 않는다. 화면을 보기 위해서나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아니다. 아무것도 없다면 어쩐지 불안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클래식 음악은 야외에 나갔을 때 차 안에서 들으면 좋으며 마리아 칼라스는 아침에 들었고 작업할 때는 힙합이 최고였고 보통 운전할 때는 헤비매탈의 풀 볼륨,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는 (대부분의 경우가 그랬지만) Estatic Fear같은 것을 들었고 생각이 앞으로 나가지 않을 때는 무한급수와 확률 분포 같은 문제를 풀었다. 수학 문제를 풀고 있으면 인생의 추상저인 문제들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생각이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비로소 알개 되는 것이다. 알파벳 a로 시작하는 백 개의 단어를 써본다든지 주기율표를 완벽하게 암기한다든지 하는 것보다 나에게 더 좋은 방법이었다. 비가 올 때는 동물원에 갔다. 밤에는 어쩔 수 없이 뉴에이지를 들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작업하는 경우도 많았다.

 

2000년 12월

배수아의 초기작부터 꾸준히 읽어오던 성실한 독자였던 친구는 이 책을 다 읽고 말했다. "배수아!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라고. 그 뒤에 뭐라 뭐라 한 말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이 말만은 또렷이 생각났다. 글쎄, 내가 읽은 배수아 작품은 이책이 첫 번째인데 그리 나쁜 인상을 받진 않았다. 다만, 여기 나오는 인물들이 간혹, 도무지 마음에 안 들었다는 것 뿐. 독신생활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서른 셋 먹은 독신 인물들의 행동, 생각 따위는 그다지 탐탁치 않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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