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 예술가의 초상
에밀 졸라 지음, 권유현 옮김 / 일빛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에밀 졸라의 <작품>을 읽기 전, 그리고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감정의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문학을 학부생 때뿐만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여일하게 하고 싶은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 하는 고민 탓이었다. 휴학을 하겠다는 친구들, 그리고 전과를 한다는 친구들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든 생각이었다. 어떻든 쉽게 결론나지 않을 답을 내리는 과정인 이즈음, 나는 사소한 일에 의기소침해지거나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절망감과 우울함을, 혹은 역시나 사소한 일에 우쭐하며 자만심을 갖게 되는 그런 우스운 극과 극의 감정들을 경험하고 있었던 거다.

그야말로 예술가와 시대와의 불화가 내용인 이 <작품>의 끝장을 덮고서 나는 어떤 새로운 힘을 느낀 것도 같다. 작중인물 클로드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보고나서 나는 찹찹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의 예술에의 몰입과 몰두, 즉 그 열정을 보면서 돌연 심기일전하고자 하는 다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습관처럼 마음을 다잡을 때마다, 벌이는 책장 정리를 감행했다. 정리하고 해봤자 책들을 다시 새롭게 나열하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책꽂이 정리 중 책 사이에 끼여 있던, 언젠가 내가 썼던 A4 두 장 분량의 '자기소개서'를 발견했다. 거기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내가 공부하는 문학이, 도대체 사회의 주변부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에 대해 참으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작품을 쓰는 이들이나 문학을 연구, 비평하는 이들이 지구상에 굶주려 있는 아이에게 당장 빵 한 조각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문학은 지금 우리 주위에 굶주려 있는 것을 알려 줄 수 있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문학이 광속도의 이 시대에 소외되어있는 계층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온통 방황하며 혼란스러워할 때, 가슴에 울림을 주며 방향을 일깨워준 것도 바로 문학 작품임을 기억해 냈습니다. 문학은 인간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인간학'이므로 말입니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말마따나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가 끝난 다음 시민사회의 구현과 함께 생겨난 것이 소설이므로, 소설이 바로 곧 인류사가 아니겠느냐는 말을 납득하고 난 후부터는 더욱이 소설이란 장르를 마음에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문학을 공부하겠다는 제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기특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소 장황했다. 그렇지만 이게 국문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나의 꾸밈없는 진솔한 심정이 아니었나 싶다. 마냥 설쳐대는 건방이 될지언정, 혹은 멋모르고 나대는 치기가 될지언정 적어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내게는 중요했다. 이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내게 어떤 확신과 열정을 안겨다 줄 것이기에 말이다.

<작품> 속 클로드가 살롱전에 출품한 작품이 비평가들과 대중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거나 혹은 그들을 비난해도, 괴팍한 성미를 드러내고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회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음에도 나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그를 알아주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그의 예술가 친구들처럼 울컥하며 분노했고, 한 아내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버지로 충실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를 감히 이해하고 용서했다. 나는 어쩌면 대세에 비껴나길 바라는 내가, 세상에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을 나의 모습을 시리게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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