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문학전집 12:춘향전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한국고전문학전집 12
설성경 /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 1993년 10월
평점 :
품절


일찍이 벤야민은 비평이란 말과 해설이란 말을 구분했다. ‘비평은 어떤 예술작품의 진리내용을 찾는 것이고, 해설은 그것의 사실내용을 찾는 것이다.’라고. 대상 작품의 표면에 드러난 어구 등을 풀이해서 사실적인 정황을 말하는 것이 해설이다. 비평이라 함은 그 속에 은연중에 숨겨져 있는 것을 밝혀 진리를 구현해내는 작업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면, 한 작품 에는 표면적인 사실과, 그 안에 은폐되어 있는 진리가 있게 마련이다.

「춘향전」은 조선후기의 지배계층의 억압과 수탈에 대해 말한다. 당시의 법제적으로 보면 변사또가 기생 월매의 딸인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법을 떠나, 도덕적으로 인간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은 추악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법적으로는 기생이지만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어느 여염집 아씨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광한루에서 춘향에게 반한 이몽룡에게 통인은 춘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 어미는 기생이오나 춘향이는 도도하며 기생구실 마다하고 백화초엽에 글자도 생각하고, 여공 재질이며 문장을 겸하여 여염집 처자와 다름이 없나이다.”라고. 실지로 변사또만 인정하려하지 않지, 남원 고을의 민중들은 춘향이를 이몽룡의 아내로서 이미 인정하고 있다. 아래 인용문은 변사또가 기생점고를 할 때, 춘향이의 이름은 왜 없냐는 말에 수노가 대답하는 내용이다.

근본 기생의 딸이옵고 덕성과 미색이 장한 고로 권문 세족 양반네의 일등 재주꾼 한량들과 내려오신 수령마다 구경코자 간청하되, 춘향모녀 불청키로 양반상하물론하고 한 가족같은 소인들도 십년 한 번 대면하되 언어수작 없삽더니, 하늘이 정하신 연분인지 구관사또 자제 이도련님과 백년기약 맺사옵고, 도련님 가실 때에 장가든 후에 데려가며 당부하고 춘향이도 그리 알고 수절하고 있사옵니다. (「열녀춘향수절가」, 『춘향전』, 129쪽)

모두들 인정하는 춘향과 이몽룡의 관계에 변사또는 우월한 신분적 지위를 내세우며 춘향을 탐하는 것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때문에 춘향이는 이몽룡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춘향이가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내 정절을 지켜내는 것이다. 조선사회에서의 유교적인 덕목 ‘열녀불경이부절’을 받드는 것으로 읽힌다. 그래서 춘향이의 모습을 통해 정절의식을 본받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용을 찬찬히 살펴들어 가보면, 단순히 정절의식을 강조하는 데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봉건 지배층인 변사또의 수청에 저항하는 것은, 이몽룡의 구제로 인한 신분 상승 의지를 은연중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토대로, 신분을 뛰어넘으려는 강렬한 욕구를 엿볼 수 있다. 봉건지배계층의 강압적인 횡포에는 맞서면서 정절을 근거로, 신분 해방을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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