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문학동네 시집 58
강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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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의미를 만든다. 시를 포함한 모든 글쓰기는 차이의 기록이다. 하지만 차이란 말 그대로 차이일 뿐 정본이 아니다. 탁자 위의 물방울이 마른 흔적을 통해, 여기 물방울이 있었다고 기록할 수는 있겠지만, 물방울을 돌이키지는 못한다. 글쓰기는 말하자면 돌이킬 수 없는 물방울 같은, 좌절된 열망의 흔적이다. 나는 그 흔적의 글쓰기를 통해, 지금은 없는, 그대를 기록한다. 아니 그대의 흔적을 기록한다. 그 차이가 의미를 만든다.'로 시작하는 서문을 읽고서 깜짝 놀랐다.

얼마 전에 나는 늘, 한 작품을 볼 때 남들과 같이밖에 볼줄 모르겠다고 선생님께 칭얼댔는데, 그 선생님께선 이와 비슷한 말을 해주셨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글의 생명이라고. 그리고 덧붙이셨다. '하지만 차이란 기상천외의 어떤 것도, 그렇다고 신기한 어떤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남은 스치고 지난 것을 집요하게 파고가는 것, 그것이 결국은 사소하지만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뭔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말기엔 좀더 중요한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혹은 회의, 혹은 관심이 인식의 출발점이다.'라고. 얼마만큼은 자신감이 생겼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거, 의구심 갖는 거, 회의해 보는 거, 관심 갖는 거, 이런 것은 자신있기에.

그리고 시인 강연호는 그 차이를 만들줄 알더라. 그리고 그가 쓴 시를 보니 그 차이를 만드는 그간의 과정이 선명하게 눈에 보였다. 삶과 사람과 사물을 응시하는 눈의 치열함과 간절함과 애절함 따위들이. 결코 쉽게 쓰여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시들이 빨리 읽지 못하게 한다. 한 구절 한 구절 되내이며 읽어본다. 그가 바라보는 대상은 명징하기보다 차고, 그래서 시리다. 딱히 어느 한구절 인용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잘못 짚어낼까, 그래서 시인에게 누가될까 저어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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