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원성 글.그림 / 이레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풍경 소리에 귀기우려 본 적 있는가. 풍경 소리를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스르륵 잠든 적 있는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은 적이 있는가. 어떤 방법을 통해서건 마음이 가벼워지면 마음의 불평, 염려, 걱정들을 저 산 너머로 던져 놓게 된다. 저열하고 추악한 속된 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천근처럼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은 것보다 편안하고 가벼워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은 원성 스님의 <풍경>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면 정말 좋은 책 아닌가. '풍경'에 실린 시와 그림은 눈으로 읽고 보지 않고 마음으로 읽고 본다면, 너무나 편안해질 테다. 마음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풍경'에 실린 시와 그림들로 가능하게 한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 원성 스님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풍경>에 있는 시 중 처음으로 나오는 시는 '출가'인데, 사실 이 시를 읽으면서 눈물이 흘렀다. 아들을 출가 시키려는 어미의 마음과 스님이 되려는 아들의 마음을 어렴풋 느꼈기 때문이라고 하면 거짓말이 될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마음을 어슴푸레하게 느꼈다. 아무리 욕심에 찌들어 있는 속세라 할지라도 그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행복이든 절망이든 느끼면서 사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그의 어머니와 아들이 대수롭지 않고 예사롭게 보였다.

출가를 시키려하고 출가를 하려하는 그 마음들이 도대체 무엇이든 간에-진리를 찾으려 한다는 그런 거룩한 이상을 내보이든 혹은 속세를 떠나고 싶다는 도피고 회피인 결정이든-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욱 그럴 테다. 아들을 절에 보낸 어머니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 갔다지만 원성 스님의 다른 책을 통해 어머니 역시 스님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서야 아들을 출가 시킨 어머니의 마음이 확실히 잡히는 듯 했다. 어머니는 아신 것일 테다.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자신을 인내해가며 깨달음을 갈망하 수행자의 삶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얻음으로 마음은 풍요롭고 평온의 상태로 들어 간다는 것을 말이다.

절에 들어가 첫 삭발을 하는 마음, 어린 동자승이 엄마가 보고 싶어 하는 마음, 울음은 참을 수 있지만 그리움은 참기 힘들다는 마음도 가슴으로 느껴졌다. 꼭 겪어 보아야만 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렇듯 '풍경'은 우리네의 정서를 슬프도록 아름답게 건드려 준다. 그래서 혼탁하게 물들어 있어 흐리멍덩한 마음을 깨긋히 씻겨 주는 것이다. 잊고 있었던 순수하고 맑았던 상태를 돌이켜 보는 일, 바로 <풍경>을 통해 가능해진다.

내가 잘나서 이만큼이라도 하고 산다고 착각하기 쉬운 이때, 조용히 그렇지만 분명하게 내 가슴을 치는 시 '나를 바라보기'를 인용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일테니.

나를 바라보기//알 수 없는 두려움에/나는 언제나 겁이 많다./싸움을 하면 옹졸했고/시샘이 많아 욕심도 많았다./잠이 많아 부지런하지도 않고/기억력이 없어서 공부도 못했다./잘 참지도 못했을뿐더러 마음이 약해 눈물이 많다./누가 내 약점을 알까 봐 위선을 떨었고/잘난 체하려고 가식적이었다./남의 말을 듣기 전에 내 말이 앞섰고/내 생각대로 해 버리는 고집쟁이였다./욕망은 생각에서 지울 수 있지만 외로움은 견딜 수 없었다.//인간이 가질 수 있는 나쁜 것만 모조리 안고 있는/나를 보고, 나를 알고/나를 탄식한다./나를 내보임으로써 집착을 버리고/나를 스스로 변화시키려는 방법을 나는 선택했다.//나약한 인간이라 인정하며/스스로를 기만하며 살고 싶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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