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양장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품절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면서 삶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된다. 삶이 오직 즐겁거나 만족스럽지만은 않을 테다. 늘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하지도 않다. 때로는 힘겹고 아프고 서럽기도 하고 짜증나고 허무해지고 방황할 때도 있을 테다. 이런 때에 차분히 날 돌아보게 만든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며 삶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는 것은 신영복이 감옥 안에서조차도 사유하고 활동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을까.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의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는 점이다. 감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연 폐쇄적이고 고립되어 있어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과연 교화가 가능하기나 한 곳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그런 곳. 또한 사회로부터 철저히 유리된 그런 공간으로 받아들여진다. 일상의 생활을 빼앗아버리며 사회와 격리시켜 버리는 것. 결코 정상적 생활의 근거지라 할 수 없는 곳에서의 생활에서,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 곳에서 희망이든 절망이든 용납되지 않을 것 같은 막힌 공간. 그렇지만 감시와 통제가 엄격한 감옥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고 생활이 있다.

신영복에게 감옥은 어떤 곳인가. 먼저 커다란 벽을 가진 곳이라 한다. 오랜 수감 생활을 한 자들은 꿈에서조차 벽을 경험하는 그런. '마음을 열지 않고, 과거를 말하지 않고, 그리고 입마저 열지 않는, 침묵과 외부와의 거대한 벽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쓸쓸히 차단‘한 곳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욕설이 난무하고 ‘여름과 겨울’ 두 계절밖에 없는 곳, ‘특유의 음침한 응달’이 있어 결코 ‘살만한 곳’이 아닌, ‘느슨해져버린 의식과 비어버린 가슴을 느끼게 하는 곳’, 다툼이 많은 곳이다. 교도소의 땅을 마치 영원불임의 황폐한 장소처럼, 정말 생명의 활기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좌절과 고뇌로 얼룩져서 화분에 담긴 흙처럼 흙내가 없’는 장소로 인식하기 쉽다. 그 안에서 딱히 즐거울 일이라고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흙내를 맡으려는 마음이 닫쳐있고, 맡을 수 없다는 관념이 대단히 크게 박혀서 그렇지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 상황의 각박함으로 말미암아 흙내가 애초에 없을 것이라 그렇게 부정하려고 했지만 풍겨져 나오고 있지 않았나. 어느 순간 맡게 되는 것이다. 그는 너무 고통스럽고 외로웠을 테지만 이 시간을, 그 외로움과 고통을 호젓한 자기 성장의 시기로 받아 들였다. 어떤 극단적인 슬픔이나 아픔, 고독, 비감 따위만 있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이를 ‘자기와의 대면의 시간’으로, ‘자기 해방의 시간’으로 갖는다는 것은 얼마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숱한 이웃과 역사의 애환’을 생각한다. 신영복은 벽에 갇혀있으면서도 참새 소리, 흙내에 감사한다. 사소하지만 대단한 의미가 있는 그런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오직 사람에 대한 믿음 하나로 가능했으리라.

신영복은 사람간의 신뢰와 애정을 회복해 연대감을 갖는 일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그리고 단순히 앎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하지 않겠느냐고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힘주어 말한다. 그가 극단적인 고통 속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더욱 간절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자신의 신념에 따른 삶을 살았고 그렇게 살리라 다짐하는 말이기에 대충 흘려들어서는 안 될 말이다. 누가 그랬던가. ‘모든 변혁운동의 뿌리는 그 사회의 모순구조 속에 있다’고.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면서도 그냥 돌아가려는 심보는 결코 옳지 않다. 사상만 있고 실천이 결여됐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실천은 과연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바로 지금의 장소에서 절실하고 필요한 문제라는 생각을 해본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며 그가 벽 속에 갇혀있으면서도 엄정한 자기성찰과 인간에 대한 따스한 눈길을 보냈던 것을 오랫동안 기억하리라. 그리도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좀더 치열하고 적극적으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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