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살기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이전의 그의 글이 그렇듯, 역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통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낸다. 우리 사회의 소수의 기득권 계층이 가진 모순과 불합리가 어떠한 양상으로 포진되어 있으며 이들이 무슨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그리고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떠해야 하느냐고 묻고 같이 해결 방안을 모색하자고, 행동을 하자고 말한다.

역사의 굴곡을 거치면서 대중들을 속이며 이권을 창출한, 소위 말하는 '사회귀족들'은 자신의 삶에 이익이 되면 선이고 옳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이고 그른 것이란 지독한 자기 합리화에 빠져 자기반성과 책무의식을 망각하고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안간힘은 계속 되고 있다. ‘힘의 논리’를 내세우며 누구에게도 ‘검증 받거나 견제 당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프랑스 사회에서의 지도층이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감당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대비하면 부러울 따름이다.

결국 홍세화가 원하는 우리 사회는 사회정의와 연대 정신, 평등사상이 있는 공화국으로의 우리 사회를 추구한다. (비단 그만이 원하는 사회만이 아닐 테다.) 이는 사회의 ‘진보, 연대’와 직결된다. 대단히 이상적이다. 하지만 꿈꾸지 않고서 도대체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있을까. 또한 단정적으로 현실 불가능한 한낱 이상이라고만 생각하고 말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현실의 제반 문제들에 사회 구성원이 관심을 기울려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늘날은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단된 사회이며 신자유주의 시대가 아닌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들이 상품으로 내던져지는, 그래서 개성이나 인격이 결코 중시되지 못하는, 환경이 병드는 그런 사회가 우리 사회 아닌가. 이처럼 뚜렷이 보이는 모순이 당장 내게 해를 입하는 내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지켜보기만 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지 않나. 우리는 모두 이 땅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누구나 다 겪는, 결코 누구든 비껴갈 수 없는 절박함을 상기해야 하지 않나.

비록 자신의 힘이 실로 미약해 보일지라도 소소한 일들부터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순간이며, 이 때가 가장 좋은 시기인 듯싶다. 나와 의견이 다른 한 개인을 대화와 토론의 과정을 거쳐 설득시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 할 때, 사회는 그렇게 조금 조금씩 변화하리라 나는 확신한다. (이러한 확신이 없다면 삶에 무슨 가치를 찾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진보를 말하며 진보로 살아가기, 연대를 말하며 연대를 살아가기’는 나 혼자 잘나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먼저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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