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전 한국남북문학100선 56
염상섭 지음 / 일신서적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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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선구자로 불리우는 염상섭의 작품을 손대기엔 참 힘이 든다. 작품 내용을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에 앞서 그의 만연체 문장이 쉽게 손이 가지 않을 뿐더러 지루하게, 재미없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작품의 가치를 재미있나, 없나로 판단해서는 않될 테다. 오래 두고 곰곰히 생각하면서 읽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말할 수 있으므로. 염상섭의 '삼대'나 '만세전' 또한 곱씹어 읽어 볼수록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여러번 읽을 수록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만세전'은 일본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인화'가 아내의 후더침으로 귀국을 하면서 이러저러한 상황을 겪으면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는 귀로형으로 구성된다. 그는 일본에 의해 불완전한 근대교육일지라도 근대교육을 받은 근대인으로서 조혼으로 인해 애정도 없는 아내의 병으로 자신이 귀국하는 상황을 마음 내켜하지 않는다. 또한 오로지 자기 자신의 개성과 진정성 실현에 관심을 둔 인화는 조국에 대해서도 별 인식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자신을 끊임없이 미행하는 감시자와 함께 동경에서 하관, 부산, 김천으로 가는 길에 업신 여기면 업신 여기는 대로 굴종을 감내하는 갓장수,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를 둔 혼혈인 여종업인이 오직 아버지를 찾아 가겠다는 말, 나어린 여자를 자신이 구제해 주겠다는 명분아래 첩으로 삼는, 일본 집이 들어서는 것에는 무관심한 채 집값이 올랐다고 마냥 좋아하는 김천 형 등의 목도를 통해 조선인들의 자아 상실감, 현실 순응적 태도에 분노한다. 그러면서도 고작 묘지 문제에 분개하는 조선인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조선의 현실을 구더기가 들끓는 묘지로 파악한 순간 이 죽음의, 퇴폐의 장소인 조선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이면의 이면까지 파악하려는 작중 인물, 이인화는 조선의 실상을 핍진성있게 그려내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조선의 현실에 환멸과 무기력을 느끼고 있다. 아주 멋진 인물이 아닌가. 자아와 세계의 기막힌 이 부조화가 이인화를 아주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염상섭의 '삼대'가 우리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일컬어 진다. '삼대'에서 보여준 삶의 총체성은 어디에 내놔도 뒤쳐짐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어렵게 손댔던 '만세전'은 그 의미있는 '삼대'로 향하는 길목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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