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화를 낼 걸. 그러면 마음이라도 더 편했을 수도 있는데. 화가 났으면서 왜 그렇게 삭혔는지 모르겠다.

개강하면 같이 살기로 한 친구, 그 친구가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한다. 여섯달 동안이나. 그리고 돌아오면 사회복지학과로 전과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집도 다 구했고 어찌 어찌 살아가자고 계획도 다 세우고 있던 터였다. 새롭게 살아가겠다는 내 다짐과 함께 마음은 들떴고 여기저기 이 즐거운 마음을 내보이고 다녔다. 마음 맞는 친구랑 재밌게 살 수 있으리란 생각, 문득문득 갖는 외로움, 그리고 예전에 이 외로움을 표내지 못한 것과는 다르게, 그런 외로움을 떨쳐낼 수도 있을 거란 생각. 그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평택에 있다는 친구에게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장난인가 싶어 당장 확인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장난질을 잘 하지 않는 진지한 내 친구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만약 진짜라면 정말 내 앞날이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미안하다는 친구의 말에,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래야 그 녀석이 편할 거라는 생각 따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머릿속은 멍한데, 돌들만 데굴데굴 굴러가는데, 입은 제 혼자 주절주절 신나게 말 참 잘하더라.

차라리 화를 낼 걸, 그랬으면 마음이라도 더 편했으려나. 아무렴 어떠냐고 하기에는 그 녀석에게 마음을 참 많이 의지하고 있었나보다. 잠이나 실컷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지려나. 기운이 하나도 없다. 의욕상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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