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운동이 화났다. 지난 11월 18일 '지방살리기 3대 입법 제정 촉구 국민대회'가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로 열렸지만 조·중·동 등 소위 3대 메이저 전국지에서는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다음날 지면에는 지방분권에 딴지를 거는 칼럼들이 줄줄이 실렸다.
이날 대회는 지방분권국민운동, 수도권살리기시민연대, 자치분권전국연대, 전국국공립대학교수협의회, 전국지역혁신기업연합회, 지방의제21전국협의회, 분권과참여를위한시민사회네트워크, 경기시민포럼이 주최했고 전국지방신문협의회, 한국지역신문협회, 지역신문·방송사 등이 후원사로 나섰다. 그야말로 서울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기관 단체들이 나섰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이제야 농민·노동자들이 과격 시위하는 이유를 알겠다"
그런데 이 대규모의 집회가 신문에 한 줄도 안 실렸다. 화가 날 법도 하다. 지역의 한 언론사 간부는 이런 사태를 보고 "나도 기자생활 30년 넘게 해봤지만 이제야 농민, 노동자들이 과격시위하는 이유를 알겠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반면 이에 앞서서 지난 15일 경기도 등 수도권 시장·군수들이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입법 추진에 대해 '수도권 역차별'이라며 대규모 항의집회를 평촌에서 가졌다. 4000여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이 집회에 대해서는 예고기사를 비롯해서 2∼3차례 보도했으니 가히 이들 신문의 입장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정신을 가다듬고 지방을 살리기 위한 지방분권특별법, 지역균형발전특별법,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등을 그들은 어떻게 다루었는지 사설이나 칼럼을 구체적으로 보자.
동아일보는 지방분권운동의 집회가 있은 다음날 <행정수도 반대 주장 검토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찬물을 끼얹었고, 그 다음날에는 최상철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신행정수도 재고를 촉구하는 국민포럼 공동대표)의 <수도이전 국민투표 거쳐야>라는 제목의 '시론'을 통해 쐐기를 박았다.
이에 앞서 11월 7일 사설 <행정수도 총선전략용은 안 된다>, 10월 20일 사설: <지방언론 정부 지원 의도 뭔가>, 10월 16일 사설 <지역 균형발전, 명분만으론 안 된다> 등을 통해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 신행정수도 건설에 대해서 반대입장을 명확하게 했다.
조선일보는 지방분권의 집회가 있던 당일 전상인 한림대 교수의 '시론' < 행정수도, 국민투표 고려를>라는 제목의 글에서 소모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이밖에도 독자들의 의견 <행정수도 통일 이후 생각해야>와 '조선일보를 읽고' <정치논리 앞선 신행정수도 건설>등 독자들의 입을 통해 반대의사를 밝혔다.
중앙일보는 11월 7일 사설 <행정수도, 국민합의가 먼저다>, 11월 19일 사설 <원로 학자들의 신행정수도 반대>를 게재해 공식적으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이들 기사와 사설, 칼럼 등을 읽으면서 해당 신문에 대한 분노보다는 여전히 이들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나 지역의 기관, 지역민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먼저 솟아올랐다. 아니, 처음 지방분권운동을 논의하면서 언론을 잘 이용하여 여론을 확산시키자는 얘기가 나올 때부터 진작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소위 '언론활용론'이었는데, 이 언론활용론은 지난 2000년 총선연대 때부터 이미 한 번 실패를 보았던 논의였다.
당시 조·중·동, 특히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취재거부를 하자는 제안을 언론운동단체들이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활용하자는 주장이 우세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일보는 처음에 총선연대의 낙천 낙선운동을 지지하는 척 하더니 "니들이 무슨 자격으로 낙천 낙선자를 선정하느냐? 시민단체는 법을 어겨도 되느냐?"는 식으로 매도하는 등 많은 활동가들의 가슴에 못질을 하고 국민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등에 비수가 꽂히는 아픈 경험을 하고도 또 이번에 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지방분권운동 첫걸음은 언론운동으로부터
지방분권? 서울에 근거지를 둔 그 메이저 언론들이 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큰 오산 아닌가? 이제서야 지방분권운동 일각에서 이들 메이저 신문의 구독거부운동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물론이고 지방대학, 지역에 소재한 각 기관에서 구독거부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뒤늦게라도 그걸 깨달았다면 정말 다행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지만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그들이 과연 지역의 발전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고민을 하고 노력해왔는지를 말이다. 오히려 자전거니, 비데니 하는 경품으로 지역의 신문시장을 초토화시키지 않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40면이 넘는 지면 중에 고작 중부권이니 하는 1개 면을 할애해 지역의 소식을 싣는다는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분권운동을 하는 전국의 자치단체, 대학, 기관들에게 정중하게 제안한다. 지금부터라도 조·중·동 구독거부운동을 즉각 펼치자. 지방살리기 3대특별법이 설령 국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메이저 전국지들이 지방을 초토화시키는 한 분권은 어림도 없다. 분권운동의 첫걸음은 언론운동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희창 / 대전충남 민언련 사무국장, 지역언론개혁연대 사무국장
우희창 사무국장은 90년 대전매일신문사에 입사해 10여년간 지역 일간지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2000년 시민운동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현재 대전충남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국장, 지역언론개혁연대 사무국장,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