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모임 안동 [64호]           안동의 터줏대감- 안동초등학교 골목 옹기전

 
 


                                                                                                                                              글/이향미(객원기자)


숨쉬는 그릇 옹기를 찾아서

김치, 고추장, 된장, 젓갈,… 대표적인 우리의 먹거리다. 이런 음식은 여러날 동안 저장하면서 맛을 숙성시켜야 하는 발효식품이다. 발효식품은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서 무엇보다 담는 그릇이 좋아야 한다.

발효식품을 제맛 그대로 보관하기에는 공기가 적절히 통하는 옹기보다 좋은 것이 없다. 그야말로 숨쉬는 그릇이 바로 옹기다. 안동 사람들은 김치를 일러 짠지라 불렀다. 안동 사람들의 겨울철 부식이었던 짠지를 보관했던 옹기, 안동 짠지의 맛을 내는 데 일조를 했다고 할 수 있는 옹기는 도대체 뉘 손을 거쳐 우리들 마당까지 들어왔을까?  이번 사랑방 터줏대감은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옹기전과 옹기장수이다.

안동초등학교와 대안당 약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오다 보면 장식용인지 판매용인지 모를만큼 옹기 몇 개가 슈퍼앞에 놓여있다. 간판도 달지 않은 그 가게는 슈퍼마켓이라고 해야할 만큼 옹기전으로는 궁색하기만 하다.

나중에야 안동 장날 만난 어느 아주머니에게서 안동에서 옹기전하면 지금 이곳을꼽았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코카콜라가 청량음료의 대표적인 이름이 됐듯이 이곳은 달리 간판이 없이 '안동국민학교 골목 옹기전'으로 안동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곳이다.

예순일곱의 옹기장수 42년 세월

주인 아저씨와 채 인사도 나누기 전에 이웃에서 가게를 하는 아저씨 한 분이 찾아왔다. 그는 옹기전의 주인 우병두(67)씨를 이렇게 소개했다. '옹기를 인 듯 한번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살아온 옹기장수'라고.

"언제부터 옹기장수를 하셨어요?"라고 질문을 던지자, 그는 회상의 열차를 타기 위해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그가 담배를 피는 동안 가게 앞으로 놓인 몇 안되는 옹기로 눈을 돌렸다.

초가을 볕이 가게 앞으로 늘어선 옹기들의 어깨죽지를 비춰 마치 검게 그을린 아낙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낙네는 가득 채운 물동이가 새지 않도록 곧장 앞만 보고 걷는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고 보니, 그 이웃 아저씨가 우병두씨를 소개했던 말에 뼈가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스물 여섯 살 나이로 옹기를 팔기 시작했다는 그는 어느새 예순 일곱의 노장이다. 횟수로 42년째 옹기를 팔았고, 그 돈으로 5남매를 키웠다고 한다.우병두씨는 미군강점기때인 1948년부터 옹기를 팔기 시작해 안동이 읍으로 승격되고부터는 제법 옹기전을 크게 벌일 수 있었다.

스물여섯의 나이로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신시장 대신새마을 금고 자리다. 그리고 지금의 신시장 어물도가니에서 개인장사를 처음 시작해 서부동 서울막창 자리, 당북동 교육청 자리를 전전하다 지금 안동초등학교 앞에서는 20년째 옹기전을 해오고 있다.

우병두씨는 이제 슈퍼마켓 주인으로 전업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옹기장사가 하도 안돼 한 6년 전부터 슈퍼를 같이 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옹기전에 거는 기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주객이 바뀐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규모가 꽤 컸다고 한다. 가게 주위가 모두 빈 공터였는데 옹기전을 마주보고 있는 삼영장 여관이 들어서기 전, 그 땅도 크고 작은 옹기들이 가정집으로 팔려가기를 기다렸던 곳이란다.

그것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 궁색하고 초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리를 건물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옥상에는 그야말로 예전의 옹기전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옹기들이 옥상의 낮은 담장 주위로 몰려 있었다.

"요거는 버지기고, 요거는 장담는 단지시더. 보통 장단지는 식구수대로 들루치."

장독을 식구 수에 맞춰 적당한 것을 고르듯이 독은 크기에 따라 나뉜다. 반자리 독, 다섯 개 한자리 독, 여섯 개 한자리 독…설명을 들으며 어릴 적 우리집 장독을 연상해본다.대문짝처럼 뚱뚱했고, 뒤꿈치를 들어 장독 입구에 겨우 머리를 대고 깜깜한 곳으로 더듬더듬 손을 넣어 된장을 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외의 부엌살림들, 예전엔 대부분의 부엌살림이 옹기였다. 뚝배기, 간장병, 시루, 화로,주전자, 젓갈 동이, 소래기, 물동이, 물장군, 약탕기...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이 곳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인분을 지고 나르던 거름장군도 옹기였다고 한다.


옹기광택제 '광명단'

"그럼 좋은 옹기는 어떤 거예요?"옹기 장수에게 옹기 고르는 법한번 배워보자. 옹기는 문을 두드리듯, 독을 손으로 퉁기면 '뚜앙 뚜앙'하고 맑은 소리가 나는 것이 튼튼하다. 그리고 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새지 않는다. 표면이 매끄럽다고 해서, 표면이 반짝이는 것은 좋지 않다.

옹기 표면이 반짝거리는 것은 '광명단'이라고 하는 광택제를 사용한 것이다. 광명단은 옹기에 광택을 내기 위해 굽고 나서 옹기 표면에 덧칠하는 화학약품으로, 납성분이 들어 있어서 사람 몸에는 해롭다고 한다.

"버섯도 화려한 것이 독버섯이듯이 옹기도 마찬가지시더. 사람도 겉만 번듯하면 안되는 것맨치로."

광명단은 조선시대 말경부터 일제시대까지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쓰여졌다. 페인트의 원료로 광명단을 섞으면 윤기가 좋아지고 낮은 온도에서 녹기 때문에 땔감이 덜 들어가 이윤을 높일 수 있다.

그렇지만 광명단의 납성분으로 음식물에 독이 녹아들기도 하고 옹기의 숨구멍이 막혀버려 음식이 자연스럽게 발효되는 것을 막는다. 이 광명단 때문에 전통옹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대부분 몰락해 버리고 몇몇만이 남아 전통옹기의 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옹기굴 사라지고, 일년에 서너개 파는게 고작


"옹기장사는 70년대까지는 잘 됐지요. 80년대 들어서는 플라스틱이 나오이께네 사양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지요. 안동인근으로 옹기굴이 완전히 없어진 거도 한 10년이 넘어요"

안동인근의 옹기굴은 임하, 신석, 예곡, 명동, 풍산 등지에 있었다. 그러나 우병두씨 말대로 안동인근의 옹기굴은 모두 사라진지 오래다. 안동 외곽으로 나가면 진보에 옹기굴이 특히 많았다고 한다. 현재도 진보에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옹기장이 이무남씨가 진보옹기를 면면히 잇고 있다.옹기는 운반하는 과정에서 깨지기 일쑤다. 그래서 웬만큼 튼튼한 놈이 아니면 안된다. 그래서 우병두씨는 기술이 좋은 옹기장이 있는 옹기굴을 찾아 거래를 했다. 주로 영덕, 진보, 울산의 옹기굴에서 물건을 실어왔다고 한다.

"요새는 일년에 서너 개 팔면 많이 파는 거씨더."

한 달에 서너 대의 차로 들여오던 것이 일년에 겨우 서너 개가 팔린다고 한다.
어느덧 이런 사람들의 무심함과 세월의 변화를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병두씨다.

"사람들 생활 방식이 바뀌었는데 어예니껴."


예전엔 여느집 부엌살림을 살펴보더라도 어머님이 아끼는 옹기 하나쯤은 있었지만 지금은 부엌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반듯하게 빚어져 나오는 신식 사기 그릇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또한 김치를 담아 옹기를 이용하던 시절은 지나고 김치전용냉장고가 등장했다.

길을 가다 얼핏 옹기가 눈에 띄어 반가워서 봤더니, 담뱃불을 끌 수 있도록 모래를 반쯤 채워넣어 재떨이 대용으로 쓰고 있다.

"이제 나도 칠십줄에 들어서고 이 장사도 이제는 더 못하지요."


하며 씁쓸하니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예전에 거래하던 사람들과 가끔씩 연락하며 지내고, 무공해 옹기라고 해서 요즘도 간혹 찾는 사람이 있다는데, 위안을 삼는다고 한다.

안동지 편집기자와 취재를 마치고 점심은 옹기그릇에 먹어보고 싶었다. 마침 새로 연 음식점의 옹기 수제비가 입맛을 돋우었다. 수제비보다는 옹기그릇에 군침이 돈 것일까? 그 동안 우리는 문화부문 전체에 걸쳐 서양자본주의 문화를 도입하고 그것을 생활화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 반세기가 지나고 식민주의적 독소가 가시면서 젊은이들은 아직은 소수지만 스스로 우리 것을 배우고 그것을 현대사회에 맞게 개량해 세계무대에 내놓을 줄을 안다.

사물놀이나 개량한복이 그러하듯이 말이다.우병두씨 말처럼 숨쉬는 첨단 재질의 옹기를 여전히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고 옛 우리 전통적인 것들속의 우수함을 알아 현대생활로 끌어들여 응용하고 반영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가운데 우리의 전통옹기의 희망도 있는 것이다. (끝)

이 기사를 쓴건 한 3년전 일 겁니다. 제가 사는 안동에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이라는 문화저널이 있습니다.  안동의 터줏대감을 시작으로 정기적으로 취재해서 기사를 썼는데, 그때 썼던 글과 그 이후에 썼던 글들을  올려 둘까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