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최혜란 그림 / 보물창고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핵은 폭발했고, 사람들은 고통을 겪는다. 이 책은 핵이 폭발한 이후 4년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한 아이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실 그렇게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게 청소년 도서용으로 나왔다는 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책은 청소년 권장 도서가 될 만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그들은 나름대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테니까.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이런 책이라면 술술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 정확히는 맞긴 맞았다. 이 책은 일단 잡으면 그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읽힌다. 요즘 확연히 짧아진 내 집중력으로도 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여운은 길어서 며칠이 지나도록 책 생각이 났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아, 이렇게 글로 그 감정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사실 이 이야기 자체는 특별할 게 없다. 묵시록적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는 작품은 영화고 만화고 소설이고 넘쳐난다. 이미 나도 몇 차례나 그런 이야기들을 봤고. 그런 이야기들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재미를 보장해 주기는 하지만, 대부분 뻔한 쪽으로 흘러간다. 극악해진 생존환경, 서바이벌 게임, 그리고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 대부분 이런 때 인간성은 바닥을 드러내고, 추악한 모습이 드러나는 식의 묘사가 이어진다. 뭐, 작가에 따라서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애라거나 사랑, 다시 움트는 생명 등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리 말하건데, 이 이야기 속에서 희망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일찌감치 이 책을 덮기를 바란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핵겨울만큼이나 차가운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는 화자가 어린 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이나 그 현실은 차갑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작가는 이런 희망이라거나 따스한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었음이 틀림없다.

 원인은 모르지만, 핵이 폭발했다. 아무래도 4년이나 원조도, 구호의 손길도 오지 않은 걸 보면 핵 전쟁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핵이 떨어진 이후 그 지역에서 생존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처음에는 생존 그 자체에 기뻐하던 사람들은 이내 생존의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 전쟁이나 쓰나미같은 극단적인 상화잉 발생했을 때 살아남는 것과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는 것, 어떤 것이 더 나은 것일까? 때로는 그 재해 앞에서 가장 먼저 희생된 사람들이 가장 나은 게 아닐까? 그러면 적어도 그 이후 끔찍한 광경을 보지 않아도 되고, 죽음보다 더할지도 모르는 생을 이어가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극한 상황이 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약한 자들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그 사실에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헌신적으로 남을 돕던 사람들도 이내 자신을 챙기게 되고, 시체며 달린 팔다리에 구역질을 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시체 치우는 사람이 올 때까지 시체와 함께 살아가는 것에 무덤덤해진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던 주인공의 어머니도 자신의 가족을 잃고, 점점 더 어려운 상황이 되자 아이들에게 눈을 돌려버린다. 식량을 훔치는 어린 아이를 때려죽였다고 자랑하며, 다른 아이도 죽이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이 나오는 사람이다. 인간성이라는 게 정말 존재한다면, 그 인간성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던 것은 도리어 어린 아이들이었다. 불구가 되고,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아이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더 어리고 더 힘든 아이들을 돌보고,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자신들을 지켜나갔다. 가장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돌본 것도 불과 12살이던 주인공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은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버린다.

  희망 없는 세상이다. 주인공과 그 가족만이라도 어떻게든 살아남기를 바라는 독자의 바람도 우습다는 듯, 불행은 주인공 가족에게도 공평하게 찾아온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누나가, 동생이, 엄마가 차례차례 죽어간다. 이런 세상에서 잉태된 아이는 얼굴이 없고, 아버지는 그 생명을 조용히 죽음 속에 묻는다. 그들은 눈 속에서 피어난 파란 싹을 보며 희망을 갖지만, 이내 그 싹이 누렇게 시들어 버린 것을 보게 된다. 4년이 흐른 뒤, 질서가 찾아오지만, 죽음이 떠나간 것은 아니다. 다만 속도를 늦춘 것 뿐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지만, 그보다 많은 수가 죽어나간다. 그나마 태어난 아이들도 정상인 아이들은 거의 없다. 살아서 태어난 아기들조차 기형아이거나 장님이거나 농아거나 저능아다.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나마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결국에는 죽고 말 것임을 모두가 안다. 이대로라면 모두가 죽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주인공은 담담하게 말한다. 마치 '오늘은 비가 오네요'라고 말하듯, 그렇게 담담하게. 마지막이 되면, 작가는 주인공의 목숨 역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점점 더 많은 수의 머리카락이 빗에 딸려나온다. 주인공의 누나가 죽기 전 그랬듯이 말이다.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에 익숙해진다.

이제 학교에는 40명의 아이들이 있다. 연말까지는 학생 수가 37명쯤으로 줄어들 것 같다. 세 명의 아이들에게서 다시 원자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중략)... 그리고 세 번째는 베르벨이다. 크라머 아줌마가 죽은 뒤 데려와 지금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집 꼬마 베르벨, 이제 그 아이가 우리와 함께 산 지도 2년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그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에 너무도 익숙하다. 아주 힘든 이별이 될 것 같다.

곧 한 학급이 문을 닫는다. - pp. 217-218.

   이 희망 없는 세계에 희망이 있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주인공의 마지막 말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희망을 버린 세상에서, 학교가 세워지고,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고마워하며 식량을 나눠준다. 처음에는 어른이 가르치던 학교는 아이들이 선생이 되어 더 어린 아이들을 가르친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결국 세상이 멸망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들은 아이들을 가르친다.

나는 가르치는 게 좋다. 선생님이 되기엔 아직 어린 나이이고, 가르치는 것도 배우지 못했지만 말이다. (중략) 나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읽고, 쓰고,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너희들은 빼앗거나, 도둑질하거나, 죽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들은 다시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도움을 줄 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 당장 치고 박고 싸우기보다는,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함께 어울려 찾아 내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너희들의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 세상이 오래 가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쉐렌보른에 남은 최후의 아이들이니까. -pp.218-219.

  이 말이 책을 덮고도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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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1-27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드룬 파우제방 님은, 아이들과 청소년을 사랑하면서 글을 쓰는 할머니예요.
이분은 늘 아이들과 청소년이 삶과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며
아낄 수 있기를 빈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청소년책으로 나왔지요.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지요. 슬프면서 아름다운.

이카 2013-01-28 01:02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고 여운이 길어 리뷰들을 찾아보는데, 이런 책이 청소년문고로 지정되어 있다니 놀랍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읽히고 싶지 않다는 말도 있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런 책이야말로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해 볼 수 있지않나 싶었어요. 제가 아직 아이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아이가 바라보는 시선에서, 아이다운 생각으로 써내려간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좋은 책이었어요.

숲노래 2013-01-29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꽤 예전부터 한국말로 옮겨졌고, 보물창고 판은 새로 나온 번역이에요.
구드룬 파우제방 님이 쓴 다른 청소년문학을 읽어 본 분은,
'독일어권' 청소년문학에서 이만 한 주제 다루는 일이란
아주 흔하고 마땅한 줄 헤아리리라 생각해요.
<첫사랑>이라는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쟁포로 이야기를 다룬답니다.
중남미 소작농 이야기도 쓰시고, 노인부양 문제 이야기도 쓰시고,
지구평화 이야기도 쓰시고... 이분 작품 세계는 참 넓어요.
 


요즘 도서정가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도 지적했듯이, 문제는 이것이 찻잔 속의 태풍과 같은 일이라는 점이다. 독서인구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도서정가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 당장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한명이 될까말까하다. 정작 사람들이 관심있는 것은 버스값이 100원 오르느냐마느냐 하는 일이고, 이번해 연말 소득공제 금액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책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현실에서의 책은 보는 사람들만 보는 물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읽을 시간에 영화를 보고 만다. 나조차 책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취미라고 생각한다. 같은 내용을 영화로 보는 것과 책으로 보는 것은 단순히 시간만 놓고 본다면, 영화가 훨씬 효율적이고, 쉽다. 책을 읽는 것이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여 자신만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라면, 영화는 이미 민들어진 요리를 사 먹는 것과 같달까. 요리로만 봐도 알겠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 먹기보다는 사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는 귀찮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나는 도서정가제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조금은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책을 보는 사람들은 어차피 자기가 좋아해서 책을 보기 때문에 책값이 오른다고 책을 사지 않는 게 아니다. 그리고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은 정말 필요에 의해 책을 산다. 문제집이라거나 실용서라거나, 학교/회사 등에서 필요한 책이라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필요에 의해 책을 사는 사람들은 어차피 책을 꾸준히 사지도 않고, 책이 비싸다고 투덜거리긴 하겠지만, 구매 행위 자체가 가격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도서정가제 여부와 상관없이 살 사람들은 계속 살 거고, 안 사는 사람들은 계속 안 살 거라는 생각을 한다. 따라서 정가제가 강화되면 구매율이 떨어질 거라는 반대측 의견에는 크게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반대로 찬성측에서 말하는 '정가제가 강화되면 책 가격이 떨어질 것이다'라는 말 역시 믿지 않는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말단 직원들은 책을 사랑해서 가격을 낮춰 자신이 만드는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할지 몰라도, 출판사 사장은 책 못지 않게 (그리고 대부분은 책보다도 더) 돈을 사랑할 것이다. 원가 900원인 물건을 1000원에 팔아 100원 이득을 남기고 있었는데, 원가가 400원으로 떨어졌다면 사람들은 600원의 이득을 챙기지 물건을 500원에 팔기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뭐, 나로서는 책을 싸게 볼 수 있다면 좋은 것이지만, 내 소비 패턴을 보건데 구간 10%에 신간 90%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어차피 지금보다 더 낼 것 같지는 않다.

도서정가제게 얽힌 fact나 각계의 입장은 복잡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동네 서점이 살아나거나 온라인 서점의 위상이 지금보다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동네 서점은 불편하다. 동네 서점이 망한다면 그것은 가격 때문이 아니라 편리성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동네 서점에는 내가 찾는 책의 대부분이 없다. 그러다보니 가더라도 교보/영풍등의 대형 오프라인 서점을 찾게 된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바로 사오는 경우도 많고. 오프라인에서 책을 골라 온라인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알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들이 가는 서점은 어차피 교보/영풍/반디같은 대형서점이지 동네 서점은 아닐 거라는 데 100원을 걸겠다. 게다가 당일 배송에 마일리지에 도서 구매 이력을 쫙 볼 수 있는 온라인 서점의 편의성은 설령 할인/마일리지/쿠폰발행 금지가 되는 완전 정가제가 시행된다고 해도 여전히 유효할 것 같기에 크게 타격을 입을 것 같지도 않다. 때문에 알라딘이(그것도 온라인 업계 1위도 아닌 알라딘이) '도서 정가제 반대 서명'을 받을 때는 오히려 당혹감을 느꼈더랬다. 왜 굳이 이렇게 나서서 설레발이지?, 라고 했었지.

그런데 오늘 출판사들이 알라딘에 책 공급을 중단한다는 말이 들자 이게 이상한 쪽으로 감정적이 된다. 알라딘이 한 일은 분명 설레발 친 게 맞고,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출판사들이 하는 행동도 고와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알라딘을 보이콧해서 설령 내일 당장 알라딘이 망한다고 해서 현실이 크게 달라지나? 오랫동안 알라딘만을 주구장창 이용해왔고, 지금도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알라딘을 방문해서 어떤 책이 나왔고, 어떤 리뷰가 올라왔나 둘러보는 알라딘 죽순이인 내게, 이런 출판사들의 행동은 알라딘이 그들에게 부렸다는 '횡포' 못지않은 횡포로 보이고, 모 블로거분 말따마나 내 동생이 밖에서 맞고 돌아오는 것을 보는 기분이 든다. 속상하고, 그냥 막 알라딘을 응원해줘야 할 것 같고 그런 기분이 든다.

어쨌거나 아무쪼록 무사히 넘어갔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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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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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친한 친구와 '설정놀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라는 것이었죠. 당시 우리는 관악구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일단 어떻게든 관악산을 넘어서 반대편으로 몸을 피한 뒤, 어떻게든 가족이 있는 부산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피난민으로 생활하면서 내 목숨을 부지할 확률은 거의 희박할 것 같으니 어떻게든 적십자나 군간호사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전장 한복판에 있으나 피난 행렬에 끼나 목숨이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라면, 적어도 내가 가진 재주를 쓰면서 사는 게 좋기도 하거니와, 적어도 그런 병원 시설에 있으면 조금은 화를 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말은 반쯤은 농으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지는 역사는 마치 살아있는 양, 크게 솟구치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분명 그런 역사를 만들어가는 건 그 시대,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일진대, 반대로 그 흐름은 너무 강해서 도리어 그 속의 사람들이 그 흐름에 휘말려버리곤 합니다. 마치 하나하나의 작은 물줄기들은 제각기 제 방향대로 흐르는 듯 하지만 결국 거대한 흐름에 떠밀려가듯 말입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그러한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졌던 조선 말기의 시대에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굳이 주인공을 꼽자면 이신통과 서일수겠다마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깊이 남는 사람은 연옥일 것입니다. 이신통의 소식을 수소문하며 짧은 인연을 잊지 못하고 평생 그의 뒤를 따르는 연옥의 이야기는 이 책의 프레임에 해당하며, 분량으로 치자면 작지만, 제게는 이 연옥의 이야기야말로 이 책을 계속해서 읽게 만든 동력이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연옥과 같은 여인네이기 때문에 더 이입해서 읽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찌 그와 함께 살았던 날을 하루씩 쪼개어 낱낱이 이야기할 수 있으랴. 나중에 그가 곁에 없게 되었을 때, 가뭄의 고로쇠나무가 제 몸에 담았던 물기를 한 방울씩 내어 저 먼 가지 끝의 작은 잎새까지 적시는 것처럼, 기억을 아끼면서 오래도록 돌이키게 될 줄을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p.88

 

 저는 이기적입니다. 제가 바라는 건 많지 않습니다. 그저 내 한 몸 평안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투닥거리기도 하고 속살거리기도 하며 살을 맞대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 정도입니다. 어떤 여자가 이런 삶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만약 전쟁이 일어나 나라가 화를 입게 된다 한들, 아마 저는 제 남자가 처자식 다 버리고 뛰쳐나가 정의를 부르짖기보다는 비겁하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제 옆에 머물러있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전 연옥의 일생이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연옥의 평생동안 이신통이 그녀의 곁에 머문 것은 손으로 헤아려 볼 정도로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그저 그리움으로 곱씹으며 평생 그의 뒤를 좇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의 나날로 느껴집니다. 당장 일주일만 그와 떨어져 있어도 그리움이 이렇게나 커지는데, 평생이라니요. 차라리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집에서 저와 같이 살면서는 안 되나요? 그 일이 천지도 일이라면 이제 조선 팔도에서 다 망해먹은 일을 당신이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요, 다너러도 입도하라면 같이 하십시다. 당신 말하던 스승이 누구이며,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모르오나 내가 그를 찾아갈 테요. 찾아가서 집사람을 내치고 도를 닦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따질테요.'라고 애원하는 마음이 더 와닿더군요. 그래서 아이를 사산하고나서까지도 그를 원망하기보다는 그리워하며 그를 따라다니는 연옥의 모습에 한탄을 하기도 하고 차라리 재취를 하여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며, 연옥이 만난 사람들의 입에서 줄줄 풀려나오는 이신통의 과거사나 동향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혀를 차며 '쯧쯧, 그래봐야 처자식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는 못난 것...'이라는 소리가 더 먼저 나왔습니다. 저는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할지라도 가족의 눈에서 피눈물 뽑아내는 인간은 곱게 보지 못하겠기에 이신통의 행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연옥에게도 그렇고, 아무리 부모가 정한 혼사라고 해도 조강지처에게서 딸까지 보았으면서도 소식 한 번 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는 영 돼먹지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책의 2/3가 다 되도록도 책을 몇 번이나 던져버리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밖에서 존경을 받고 의지가 되면 뭣하나요. 자기 가정 하나 돌보지 못하는 인간인데요.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 지금 고생을 옛말하듯 하면서 오순도순 사십시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묻고 있었다. 언제요, 그런 날이 언제 오는데요?
그러나 입 밖으로는 간신이 이렇게 말해버린다.

저에게는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 p.444

 


  하지만 연옥이 이신통의 자취를 더듬어가며 그를 점차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그를 만난 이후에 도리어 자신의 그리움이 커져 그를 잡게 될까봐 스스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탄을 하면서도 내심 그녀를 이해할 듯도 했고, 연옥의 마음을 통해 이신통을 이해할 듯도 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이신통인들 그렇게 사랑하던 이의 곁을 떠나고 싶었겠으며, 아무리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결의를 했다고 한들, 그 마음이 돌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까지 자신을 따라온 그 마음을 외면하기 쉬웠을까요. 또한 아무리 자신을 괴롭히기만 한 상대라고 한들 자신의 이복 형을 (사실상) 제 손으로 죽이는 마음이 아무렇지 않았을까요. 이 모든 일을 그저 '혼란의 시대였으니...'라는 말로 끝내버리자니, 차마 그럴 수도 없더군요. 임오군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어떻게든 처자식을 먹여보려고 하던 군졸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갑자기 부당해고를 당하고 농성을 하게 되는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이더군요.

  그래요. 우리가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우리에게 분명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가족들이 늘어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식을 버리고 도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짓말로 사람들을 꼬드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때에 따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그 때나 지금이나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저는 어쩐지 한없이 안타까워지기도 하고 가슴이 메이기도 해서 하릴없이 책장을 쓸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써보기도 하며 아린 마음을 풀어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와서 지금의 고생을 옛 말하듯 오순도순 살 날이 올까요. 그게 언제 쯤일까요. 언제나 그런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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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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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알라딘 신간평가단 12기로 선정된 이후 처음으로 작성하는 도서 리뷰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도입부가 지루하거나 취향이 아닌 것 같으면 과감하게 책을 덮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직장인이 된 이후 생긴 버릇입니다. 늘 시간은 없고, 읽고 싶은 책은 많으니 무슨 계기가 있다거나 선물을 받았다거나 추천을 받은 책이 아니라면, 읽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는데도 계속해서 책을 붙들고 있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놓치게 된 좋은 책이 분명 여럿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미를 느끼지도 못할 것 같은데 계속해서 책을 붙잡고 있기에 제 시간은 너무나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직장인에게 놀 시간은 부족하고 그나마 그 안에서 '독서'라는, 정신력과 시간이 많이 드는 활동에 소비할 시간은 더더욱이나 부족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제가 알라딘 신간평가단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읽어야만'했던 책이라는 점이 중요해집니다. 총 3부로 된 책의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된 이후에도 전 이 책이 별로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12월 초, 이 책을 추천한 사람 중 하나였고, 그래서 먼저 도착한 '여울물소리'보다도 이 책을 먼저 손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당시 제가 쓴 추천문구는 이렇습니다. '가상과 현실의 조화를 그려냈다고 하는 이 소설은 무엇보다 소설을 읽는 재마 하나만큼은 절대 보장해 줄 것 같습니다. (중략) 줄거리 만으로는 자칫 평범한 사건 해결물 같지만, 설정을 보면 이런 설정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해집니다. 경험 상으로, 이런 이야기는 대박이거나 혹은 평균 이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던데, 이 책은 어느 쪽일까요?' 전 도대체 어떤 줄거리를 읽고 이런 추천평(?)을 썼는지 미스테리입니다. 각종 온라인 서점에 소개된 줄거리는 황당하기 그지 없거든요. 대구의 한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보이는 이 사건 뒤에는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존재인 '강화인간'과 그들의 초국가걱 조직인 '공생당'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혀 다른 양상을 띄게 된다는 것입니다. 버젓이 나와 있는 이 줄거리를 제가 미처 보지 못하고 그저 '가상세계'와 '현실'의 접목 정도로만 파악했던건지, 아니면 보고도 까먹었던건지, 저는 이 소설이 일종의 현대적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생판 다른 소설이었고, 그래서 제가 느낀 것은 당혹감이었습니다. 갑자기 강화인간이니 공생당이니 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펼쳐졌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2부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저는 정신없이 속도를 올려 책을 읽기 시작했고, 결국 이렇게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곧바로 리뷰를 쓰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기 시작한 지금은 새벽 4시 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환점이야말로 작가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책이든 그 책에 대한 정보가 많을 수록 더 많이 보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하게 됩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도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기 위해 줄거리조차도 모르고 가는 것을 가장 선호하는 전, 책에 대해서는 그게 더 심해서 느낌이 오는 책을 골라 작가에 대해서도 줄거리에 대해서도 모르고 접하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만, 그래도 역시 그 책이 나온 맥락이나 상황 등을 제대로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겠죠.

* 이 부분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 운이 좋게 이 책을 이해하는데 유리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제가 좀 쓸데없이 문어발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온라인 게임을 전혀 즐기지 않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때에는 게임을 꽤 즐겼고, 어쩌다보니 프로게이머 1세대의 이야기를 대충 알고 있고,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기간동안만 한 것이었지만) 재미로 리니지를 잠깐 해 본 적이 있으며, 우연한 기회로 바츠 해방전쟁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으며, 또한 놀라워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의 세 경험은 차치하고서라도 바츠 해방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다름아닌 바츠 해방전쟁에 대한 오마쥬이고, 헌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크게 두 개의 사건이 나옵니다. 먼저 '현실세계'라고 불리는 공간에서 일어난 대구에서의 살인사건과 그 사건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각성자'라고 불리는 준경이 가상의 세계인 '인페르노 나인(이하 '인페르노')'으로 내려가 경험하는 사건이 그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세계는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닮은 게 당연합니다. 바츠 해방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2부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인페르노가 일종의 게임 속 공간을 의미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암시는 노골적으로 소설 속에 흩어져 있습니다. 주요 인물인 이유진과 준경이 원래 PC방 죽돌이었고, 자연스레 이 둘이 처음으로 만난 곳이 '길드워'라는 온라인 게임 속 공간이었으며, 이들이 강화인간이 된 이후로도 길드워를 일종의 카톡이나 메신저처럼 사용했다는 점부터 시작해서, 인페르노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이야기에서는 노골적으로 '프로게이머'에 대한 이야기며 임요환에서 따온 게 분명한 '요한 명인'부터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젤다의 전설',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2'까지 수많은 온라인 게임들이 등장합니다. 상상의 산물인 게임 속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의 창조자가 몸담고 있는 세계를 반영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일테니, 이유진이 만든 일종의 게임 속 사회라 할 수 있는 인페르노가 현실세계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인페르노 안에서는 늘 전쟁이 있는 것도, 현실을 닮아 있습니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며, 전쟁이 사라진 듯 보이는 현재에도 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이를 위한 장치인 듯 보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말하자면, 현실의 세계는 게임 속의 세계를 반영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게임 속 '가상 세계'가 다른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소설 속에서 인페르노를 포함한 최면 세계는 그 최면의 창조자가 만든 설계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세계로 설정됩니다. 이 소설에서의 '최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이야기가 제공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그 기원과 끝만이 정해진 하나의 '틀'을 제공하는 것 뿐이라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건 최면에 걸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자신입니다. 하지만 그 시작과 끝은 정해져있고, 아무리 그 안의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고 한들, 전체적인 이야기를 바꿀 수는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이라고 다를까요. 아무리 우리가 발버둥쳐도 한 번 구축되어있는 시스템을 바꾸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상세계를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게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지점에서 바츠 해방전쟁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의 서버 중 하나인 바츠에서 벌어진 전쟁을 말합니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전쟁이야 지금도 수없이 반복되었고, 지금도 반복되고, 앞으로도 계속될 일인만큼 특별할 게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바츠 해방전쟁이 특별한 것은 서로 일면식도, 관계도 없던, 힘 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절대 우위를 가지고 있던 세력에 대항하여 일어난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상 세계에서 일어난 일종의 민중 혁명이자, 그 게임의 시스템 상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사건이었고, 동시에 온라인 게임의 사회가 일종의 사회성을 가진 하나의 사회라는 것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지요. 이 소설은 이 바츠 해방전쟁에 참가했던 작가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구축한 바츠 해방전쟁의 연대기입니다. 그래서 인페르노 역사에 길이 남게 되는 '라우엔 대회전'의 불씨가 잠잠히 타오르고 그 절정을 맞게 되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 소설의 호흡은 가빠지고 정신없이 독자를 끌어당기게 됩니다. 이 '라우엔 대회전'의 결말은 다분히 우연적이고, 그래서 어이없기도 하지만, 사뭇 감동적입니다. 실제로 바츠 해방전쟁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이후 인페르노의 세계 속의 준경(던컨)가 말년에 읊조리는 말은 이후 바츠 해방전쟁의 변질과 결말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 같은 사건, 다른 시선

 

"바츠 해방전의 의의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현실로 돌아가버리면 그만인 그 세상에서 자신들을 폭압적으로 억누르는 '누군가'를 쓰러트리고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일으킨 최초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가상 공간에 구현해낸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스스로의 분열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지만 내복단으로, 혹은 바츠 해방군의 일원이나 DK혈맹원 중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실패로 끝난 그 날의 혁명은 이후에 일어날 혁명이 비춰봐야 할 거울이며 같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본보기로써 영원히 의미있는 투쟁의 역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할 겁니다." - 슈리아 님의 '바츠 해방전- 온라인 게임에서 울려퍼지는 자유의 외침'

 

 저는 이 문장이 '바츠 해방전쟁'에 대한 가장 정확한 요약이며, 동시에 이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바츠 해방전쟁은 '내복단'으로 지칭되는 민중들이 'DK 혈맹'으로 상징되는 기득권에 맞선, 게임 시스템 상 있을 수 없었던 전쟁 이야기입니다.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으나, 이후 실패로 끝났다는 것까지도 현실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결말까지도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이야기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떠한 역사적 사건은 그 시대, 그 사건이 벌어진 공간의 사람들에게 크든 작든 영향을 주게 됩니다. 어떤 이에게는 어렴풋한 기억 정도로 남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일생을 뒤흔드는 사건이 되기도 합니다. 게임 속에서 벌어진 가상의 전쟁이, 그 전쟁에 참가한 한 사람의 작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이후 디지털미디어학부를 창설하고 이런 소설을 쓰게 할 정도로 말입니다.

  누군가는 하나의 사건에서 그 실패만을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한 때의 승리에 큰 의의를 두겠지요. 같은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는 절망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다음 번 승리를 위한 가능성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이인화 작가는 대부분의 혁명이 어떤 결말로 끝나는지도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절망과 체념 속에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닌, 희망을 가져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패로 끝난 전쟁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전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절망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지만, 희망은 적어도 하나의 가능성을 열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야말로 시스템이라는 지옥설계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되기 떄문입니다.


+) 덧 : 이야기의 결말부에 이르고, 책을 다 읽고 나면, 개인적으로는 초반에 그냥 넘겼던 공생당의 은유에 묘한 반감을 가지게 되더군요. 그 부분만큼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도 우리의 역사의 분명한 일부니까요. 다만, 그 은유 때문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전부 왜곡될 수 있을 것 같아 살짝 안타까움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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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주얼 베이컨시 

조앤 K. 롤링 

 : 이 소설을 기다린 사람들이 저 뿐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분들 페이퍼에 의외로 1월 주목 신간에 이 책이 안 보이더군요. 이미 주문한 분들이 많은 걸까요?(아무래도 저 역시 제가 주문한 책들은 빼고 신간페이퍼를 쓰게 되더라고요) 해리포터로 유명한 조앤 K 롤링이 썼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주목을 받고 있는 책이죠. 첫 작품으로 크게 성공한 작가가 두 번째도 성공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고, 작가 개인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일 겁니다. 그녀의 도전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궁금하네요.


 1월의 추천 신간으로 가장 먼저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열쇠 없는 꿈을 꾸다

츠지무라 미즈키 

 : 연애·결혼·출산·육아 등에 대한 내용을 매우 리얼하게 그려낸 소설이라는 말에 진작부터 주목하고 있던 소설입니다. 이 세 가지 일은 문화권을 아울러 여자라면 공통적으로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연애든 결혼이든 출산이든 종종 아름다운 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것들은 사뭇 다를 수 있습니다. 그나마 연애는 모르겠지만 결혼과 출산은 일평생 그 영향이 지속되는 것이죠. '열쇠 없는 꿈'이라는 말에 어쩐지 깊은 인상을 받게 되네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 아래에서의 혁명, 약자들의 반란. 이 말은 달콤할지언정, 그건 너무 쉽게 터져버리는 비눗방울과 같은 환상에 가까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유명한 프랑스 혁명마저 브루주아의 혁명이었다는 말도 있잖아요. 실제로 아래에서의 혁명은 그만큼 어렵고, 쉬이 실패합니다. 특히 이미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약자들이 반기를 든다는 것은, 그래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기대되고,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겁나기도 합니다. 혹여 처절하게 짓밟히고 꺾이는 내용이라면, 책에서마저 그러면 그건 너무 아플 것 같아서요.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 체홉의 단편들은 어떤 장편보다도 하나하나의 여운이 깁니다. 읽을 때보다도 이후 곱씹어보며 더 좋아진 이야기들도 많지요. 체홉의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이 가는데, 이번의 단편 선택이 참 좋네요. 꼭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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