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서정가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도 지적했듯이, 문제는 이것이 찻잔 속의 태풍과 같은 일이라는 점이다. 독서인구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도서정가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 당장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한명이 될까말까하다. 정작 사람들이 관심있는 것은 버스값이 100원 오르느냐마느냐 하는 일이고, 이번해 연말 소득공제 금액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책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현실에서의 책은 보는 사람들만 보는 물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읽을 시간에 영화를 보고 만다. 나조차 책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취미라고 생각한다. 같은 내용을 영화로 보는 것과 책으로 보는 것은 단순히 시간만 놓고 본다면, 영화가 훨씬 효율적이고, 쉽다. 책을 읽는 것이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여 자신만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라면, 영화는 이미 민들어진 요리를 사 먹는 것과 같달까. 요리로만 봐도 알겠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 먹기보다는 사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는 귀찮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나는 도서정가제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조금은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책을 보는 사람들은 어차피 자기가 좋아해서 책을 보기 때문에 책값이 오른다고 책을 사지 않는 게 아니다. 그리고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은 정말 필요에 의해 책을 산다. 문제집이라거나 실용서라거나, 학교/회사 등에서 필요한 책이라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필요에 의해 책을 사는 사람들은 어차피 책을 꾸준히 사지도 않고, 책이 비싸다고 투덜거리긴 하겠지만, 구매 행위 자체가 가격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도서정가제 여부와 상관없이 살 사람들은 계속 살 거고, 안 사는 사람들은 계속 안 살 거라는 생각을 한다. 따라서 정가제가 강화되면 구매율이 떨어질 거라는 반대측 의견에는 크게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반대로 찬성측에서 말하는 '정가제가 강화되면 책 가격이 떨어질 것이다'라는 말 역시 믿지 않는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말단 직원들은 책을 사랑해서 가격을 낮춰 자신이 만드는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할지 몰라도, 출판사 사장은 책 못지 않게 (그리고 대부분은 책보다도 더) 돈을 사랑할 것이다. 원가 900원인 물건을 1000원에 팔아 100원 이득을 남기고 있었는데, 원가가 400원으로 떨어졌다면 사람들은 600원의 이득을 챙기지 물건을 500원에 팔기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뭐, 나로서는 책을 싸게 볼 수 있다면 좋은 것이지만, 내 소비 패턴을 보건데 구간 10%에 신간 90%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어차피 지금보다 더 낼 것 같지는 않다.

도서정가제게 얽힌 fact나 각계의 입장은 복잡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동네 서점이 살아나거나 온라인 서점의 위상이 지금보다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동네 서점은 불편하다. 동네 서점이 망한다면 그것은 가격 때문이 아니라 편리성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동네 서점에는 내가 찾는 책의 대부분이 없다. 그러다보니 가더라도 교보/영풍등의 대형 오프라인 서점을 찾게 된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바로 사오는 경우도 많고. 오프라인에서 책을 골라 온라인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알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들이 가는 서점은 어차피 교보/영풍/반디같은 대형서점이지 동네 서점은 아닐 거라는 데 100원을 걸겠다. 게다가 당일 배송에 마일리지에 도서 구매 이력을 쫙 볼 수 있는 온라인 서점의 편의성은 설령 할인/마일리지/쿠폰발행 금지가 되는 완전 정가제가 시행된다고 해도 여전히 유효할 것 같기에 크게 타격을 입을 것 같지도 않다. 때문에 알라딘이(그것도 온라인 업계 1위도 아닌 알라딘이) '도서 정가제 반대 서명'을 받을 때는 오히려 당혹감을 느꼈더랬다. 왜 굳이 이렇게 나서서 설레발이지?, 라고 했었지.

그런데 오늘 출판사들이 알라딘에 책 공급을 중단한다는 말이 들자 이게 이상한 쪽으로 감정적이 된다. 알라딘이 한 일은 분명 설레발 친 게 맞고,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출판사들이 하는 행동도 고와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알라딘을 보이콧해서 설령 내일 당장 알라딘이 망한다고 해서 현실이 크게 달라지나? 오랫동안 알라딘만을 주구장창 이용해왔고, 지금도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알라딘을 방문해서 어떤 책이 나왔고, 어떤 리뷰가 올라왔나 둘러보는 알라딘 죽순이인 내게, 이런 출판사들의 행동은 알라딘이 그들에게 부렸다는 '횡포' 못지않은 횡포로 보이고, 모 블로거분 말따마나 내 동생이 밖에서 맞고 돌아오는 것을 보는 기분이 든다. 속상하고, 그냥 막 알라딘을 응원해줘야 할 것 같고 그런 기분이 든다.

어쨌거나 아무쪼록 무사히 넘어갔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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