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 하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삶 김우현의 팔복 시리즈 3
김우현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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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말이 어눌하고 몸마저 부실하다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실마저 가릴 순 없다.




나이 탓일까?
요즘 들어 특히 목구멍을 타고 뜨겁게 올라오는 격정을 삼키는 일이 잦다.
다큐멘터리와 수필에 촘촘히 박힌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고 또 읽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목젖이 뜨거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대목이 나올 쯤 되면 우선 준비부터 하고 본다.

글은 기승전결이 있기 마련이라 어느 부분에서 심금을 울릴지 예측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 직전에 마른 침 한번 크게 삼키고 눈을 보통 때보다 조금 더 부릅뜨면 된다.
희한하게도 그런 장면이나 대목이 나올 때면 곁에 누군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눈물을 보이거나 잠시 말을 잊지 못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면 낭패다.

하지만 준비한 대로 잘 넘어간 적은 없다.
헛기침으로 시선을 돌리긴 했어도 목젖까지 올라온 놈을 누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때론 헛기침이 괜한 주목을 끌어 붉게 충혈된 눈을 보였을 수도 있다.
감정이 복받쳐 울컥 하고 올라온 그걸 아예 없던 일로 잘 틀어막았단 소리를 들은 적 아직 없다.

통제되기 않는 감정기제 앞에 이성은 그저 무기력하기만 한 것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광화문에서 액자와 부채 등 잡동사니를 좌판에 널어 파는 정재완 씨와
그를 ‘늘 광화문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친구, 허허로운 시간을 때워줄 친구로 20년을 알고지낸 김우현 감독 때문이다.
정재완 씨는 어릴 적 병치레로 손이 곱았다. 걸음도 힘들고 표정도 남다르다.

그를 주인공 삼아 영화를 만들기로 한 날 정재완 씨가 김우현 감독에게 출연료로 얼마 줄 거냐고 물었다.
다음은 그 이야기의 전문이다.

“넌 ... 얼마 받고 싶은데?”
“한 백 억 정도는 받고야 말테다.”
"형, 장동건, 이병헌 보다 더 많이 받을 거야?”
도현이가 곁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 한마디 했다. 도현이도 영화를 만들면 음악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반드시 백억은 받아야 해!”
고맙다는 말은 안 하고 인상까지 쓰면서 난리다.
“우리의 영화는 영원히 만들어지지 않겠군.”
“이 영화의 출연료는 너 한테 안 받고 하나님께 받겠다는 말이야.”
우리는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감동했다.
“어이! 친구 ... 그런 거였어? 역시 우리 영화사 대표 배우답다.”
“우리 영화는 하나님이 제작자이시니까 하늘에서 상급을 받아야 해.”
재완이는 가끔 이런 예상치 못한 멘트로 나를 감동시킨다.

입이 걸걸하고 때론 고집불통인 재완씨가 출연료로 백억을 받겠다고 하는 말은 억지였다.
영화사라고 해봐야 김우현 감독이 제작자 겸 감독, 편집자로 1인 3역을 하는 말이 좋지 보잘 것 없는 1인 영화사다.
제작비가 넉넉할 리 없고 배우 출연료를 줄 입장도 아니다.
그걸 잘 아는 재완씨가 생각지도 않은 출연료를 부르니 하도 어이없었을 게다.
농담으로 그런 줄 알았다 고집스런 요구가 진짜임을 알아차렸을 때의 당혹감이라니!
뒷말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몹쓸 뻔했다.

말투가 어눌하고 표정이 남 답지 않고 몸가짐이 껄렁껄렁하다고 사람 속마저 그러리라고 예단해선 안 되는 일이다.
오히려 꼴값(얼굴값) 안 하니 제대로 안다. 깊다. 정확하다. 
                                    
 
김우현 감독은 〈부흥의 여정〉과 〈하늘의 언어〉, 〈하나님의 이끄심〉 등 성령체험과 성령의 역사를 담은 저작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유명세를 타게 된 데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영상물에서 비롯됐다.
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최춘선 옹이다.

김우현 감독은 그를 장장 7년을 좇아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고루 담았다.
그런 노력이 영상에 담겨 마침내 최춘선 옹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났다.
그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좇은 신앙인이자 예수님의 마음을 전하려 바삐 걸었던 복음 전도인이었다.

이력도 화려했다.
일본 유학을 하고 5개 국어를 너끈히 소화했으며 독립 운동가였다.
더욱이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자신에게 속한 부를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고 스스로 신발조차 신지 않을 만큼 가난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일반인들은 그를 맨발로 지하철 구석구석을 쏘다니는 광인(狂人)으로 이해했었다.
그만큼 김우현 감독의 안목은 여느 사람과 달랐다는 얘기다.
그러했기에 최춘선 옹을 7년을 따랐고 오늘 정재완 씨를 20년 동안 만나고 있을 터였다.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은 사람을 ‘본래’ 사랑하지 않고는 나오지 않는다.
예수님이 그랬듯 비천한 곳에서 비천한 몰골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발 다가서는 일이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상한 행동은 둘째 치고 색다른 냄새부터 처리하기가 난감하다. 
                                                                
 

20년 쯤 됐다.
학생회에서 몸이 불편한 아동을 보육하는 소망원 봉사를 나간 적이 있었다.
봉사한다는 마음에 발걸음이 상쾌했던 날.
걱정이라곤 잘 해낼 수 있을까가 전부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작 네다섯 시간 정도로 예정된 봉사였으니 그까짓 힘든 것쯤 참아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곳 상황은 전혀 몰랐으므로 그 외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몹시 괴로웠다.
뒤틀린 그들의 몸 때문이었거나 그런 그들의 상태가 나의 마음을 아리게 했기 때문 이 아니었다.
참기 힘든 냄새, 방 안 곳곳에서 풍겨 나오는 형용할 수 없이 고약한 냄새를 참아낼 도리가 없었다.
배정받은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밥을 먹이는 걸 가까스로 꼬박 의무감으로 버텼다.
비례해서 흘끗흘끗 시간 쳐다보는 일이 늘어갔다.

나오긴 했다.
그것도 중요한 약속을 깜빡했다는 거짓 핑계를 대고.
한동안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같은 부류와 섞이길 좋아하는 심성을 깨뜨리지 않는 한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과 ‘거리두기’와 ‘편가르기’는 일상적이 되기 쉽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이 책,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는 정재완 씨를 직접 발로 찾은 기록이다.
여느 기록과 다른 점은 한 사람을 더도 덜도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속사정을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표현해낸 데 있다.
그것이 예기치 않은 진한 감동과 자주 마주치는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 

‘몸으로 가르친 것만 남는다’고 일갈한 분이 있다.
말이 어눌하고 몸마저 부실하다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실마저 가릴 순 없다.
누구나 걸어가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한 분 그리스도를 만나 보다 아름다워지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일은 그래서 향긋하며 자주 도전적이다.
정재완 씨가 보여준 사랑의 시어와 행동이 더욱 그리스도로 풍부해지는 걸 보는 데서 우리 마음을 다잡지 않을 수 없다.
‘무엇하고 사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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