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비비어의 동행
존 비비어 지음, 우수명 외 옮김 / 엔씨디(NCD)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마다 성품은 제각각입니다. 일 개인이라 하더라도 그 개인 안에는 다양한 성품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다만 어떤 특정 성품이 도드라 보일 뿐 그 특정 성품이 그 개인을 전부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제대로 알려면 그가 지닌 성품들을  다양하게 겪어봐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사귐의 깊이가 남다르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다양한 성품을 갖고 계십니다. 성경은 그분의 성품을  여러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냈고, 그가 죽어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린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가운데서 그 고통을 감내하며 영원히 살 비참한 존재에 다름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면 그분의 사랑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참으로 좋습니다. 문제는 그 사랑을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응당 내게 주어져야 할 것'으로 곡해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곡해는 필시 하나님에 대해 무한히 요구하고 그분을 인간의 수준으로 떨어뜨려 그 수준에서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강화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을 쓴 배경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엔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렇게나 대해도 상관없는 분이라는 오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응당 주인되심이 마땅한 예배시간에 조차 여느 장소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의 자세를 고치지 않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대통령이 와 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태도를 명확히 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이시지만 또한 경외의 대상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통령을 대할 때 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할 분이 아니시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린 자주 아무렇지도 않게 예배에 참석하고 별 감흥없이 주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사들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종일토록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외치는데 하나님이 그 천사보다 낫게 여기는 우리가 하나님을 전혀 다르게 대하고 있으니 저자가 거룩한 분노를 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저자는 크리스천 작가로, 설교가로 두루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책에서도 인용된 바와 같이 저자는 각종 집회에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 집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집회일수록 지식과 이성만 또렷합니다. 집회를 연 목적이 하나님을 만나는 데 있음을 망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오는 영적인 유익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마치 그를 몹시 두려워하고 스스로 위축되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처분만 바라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 시대의 그릇된 관념에 쐐기를 박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은 임재하십니다. 그것을 저자는 1. 거룩한 질서, 2. 하나님의 영광, 3. 심판의 패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질서가 잡히지 않은 곳에 하나님은 영광으로 임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개인과 공동체는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질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사랑스러운 존재여도 우린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시계의 존재 목적이 시계를 찬 사람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데 있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 목적은 익히 알려진 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겁게 하는 것이다. 경외심을 잃은 시대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보십시오. "한때 하나님을 향해 뜨겁게 타올랐던 사랑과 경외심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기적 욕망이 들어섰다. 결국 사람들은 종교적 활동과 교리에만 치중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려는 목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p118,119)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사라진 곳에 종교적 활동과 교리가 남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모세가 산에 오른 지 수일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속속들이 목도한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자신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림으로써 필요한 때 언제라도 부르기 쉽게 가까운 데 가둬두려는 욕망이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 대부분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우린 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 돈의 일부를 감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경계로 삼아야 합니다. 이로써 우린 앞서 저자가 말한 1. 거룩한 질서, 2. 하나님의 영광, 3. 심판의 성경적 패턴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순종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행함으로 믿음을 입증해 보였던 야고보와 같이 믿음은 그것에 따르는 행동을 통해 확연히 그 입장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믿음 있다고 말해도 그 믿음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을 때 과연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서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순종의 삶을 동반한다."(p115) 경외심과 순종과 믿음은 삼두마차와 같습니다. 경외심이 있다고 하면서 순종하지 않는다든지, 믿는다고 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경외심은 하나님의 임재가 가능한 토대이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무거운 주제를 성경의 예와 개인적 체험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저자의 이 책이 하나님과의 동행을 꿈꾸는 이 땅의 크리스천들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줄 것입니다. 더불어 그동안 사랑의 하나님이 자주 강조되어 반대급부적으로 공의의 하나님이 적게 언급된 우리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경외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경외함이 또한 마땅합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ouring 2011-10-21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존 비비어'를 검색하다가
리뷰 쓰신 걸 보고 댓글 남깁니다.

내년 1월에 존 비비어 목사님과 리사 비비어 사모님께서
한국에 오시거든요~
책을 통해 이미 경험하셨겠지만
정말 강력한 시간이 될거라 믿어 소식 알려드리려구요^^

www.어웨이크2012.com
으로 가시면 더 자세한 정보 얻으실 수 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