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레슨 - 우리 아이 악기 선택부터 신나는 연주까지
스테파니 슈타인 크리스 지음, 정유진 옮김 / 함께읽는책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번 해보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배워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사실 마음 같지 않은 게 있다. 개인적으로 그건 악기 연주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사촌형에게 속내를 털어놨더니 수주일이 지나 중고 기타 하나를 보내왔다. 쓰던 것이지만 알아주는 기타라는 말로 동생에게 새 것을 사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 어쨌든 기타를 받아들고 무척 고무된 난, 친구들에게 대단한 상표의 기타라는 점을 누누이 밝히고 다녔다.

 

과연 잘 쳤을까? 아니면 잘 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그때 무슨 기타 초급 연습용 책을 어렵게 구입해서 두 주간 열심히 기타 줄을 뜯었던 기억은 있다. 해변에서 멋진 기타 연주로 좌중의 흥을 돋우는 장면을 나름대로 연상하며 기대에 부풀기는 했다. 멋쩍게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기대감이 물거품으로 변해가는 걸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로 좀체 늘지 않는 실력의 벽에 갇혀 있기를 또 3주, 교본을 드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과 함께 기타의 관심 또한 서서히 줄어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아마도 악기를 연주할 최적의 기회였던 것 같기는 하다. 이후로 한 번도 악기와 친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악기를 한 번 연주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고 그 중 셋째가 여섯 살 때부터 악기에 관심을 보였다. 마침 또래 유치원생이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걸 자랑했나 보다. 아이 성화에 못 이겨 한 달 학원증을 끊었다. 아이는 틈만 나면 악기를 연주했다. 번듯한 피아노가 아니었으니 소리가 제대로 날 리 없었지만 장난감 피아노일망정 아이의 연주는 여느 연주가의 연주 못지않았다. 아이의 연주 실력은 나날이 늘었다. 아이의 성화에 앞서 아이에게 연주 가능한 악기 하나쯤 갖게 하겠다고 결심하고 시작한 악기 교습은 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모습이 즐거워 그새 1년이 다 돼가고 있다.

 

굳이 연주가가 되기를 바라진 않았지만 이 책, 〈뮤직레슨〉을 읽고 늦바람 같은 호기심이 생겼다. 아이에게 연주가의 자질이 있는지(음악에 강하게 관심을 보이는지) 알아보기로 한 것이 그것이다. 저자는 그 단초를 몇 가지로 정리했다.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거나, 어떤 곡이든 상관없이 따라 부르거나, 예전에 들었던 곡을 종종 다시 부르곤 한다. 비교적 정확하게 리듬을 따라서 한다. 집에 있는 어떤 악기든 싫증내지 않고 가지고 놀면서 때때로 어떤 음이나 곡조를 정확히 짚어낸다. 전체 곡 중 귀에 익숙한 어떤 특정 부분을 다시 듣게 해달라고 조른다.’

 

우리 아이의 경우 모두 맞아 떨어졌다. 사정이 그렇다고 당장 연주가의 길로 들어서도록 호들갑은 떨지 않았다. 다만 아이가 호기심을 가진 때 적절하게 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는 게 기뻤다. 대부분 부모의 심정이 그것과 같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었다는 뿌듯함 같은 그런 것 말이다. 아직 꿈 많은 여덟 살이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켜보겠지만 아이가 연주가와 화가 사이에서 어떤 꿈을 선택을 하든, 또는 전혀 다른 꿈을 찾아 떠나든 적극 응원할 마음 자세는 되어 있다. 이 책이 그런 마음을 다잡는 데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준 것에 감사한다.

 

저자는 전문가의 입장이 아닌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가 어떤 악기에 소질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음악이 악기 연주에 도움이 되는지 등등에 관해 소상히 전하고 있다. 부모의 입장이라면 부모의 무관심과 부주의로 아이가 경험할 세계가 제한받지 않을까 하는 부분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부모가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아이의 꿈을 꺾은 게 아니었을까 싶은 후회가 들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 의식은 대부분 자신이 과거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에 기인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육상선수의 꿈이 좌절되면서 그 돌파구로 축구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축구공이 너무 갖고 싶어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사달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한 가지만 약속하면 언제든 사주겠다고 하셨다.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그럴 자신이 없던 난 또렷이 말씀드리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2학년이 될 때까지 내겐 번듯한 축구공 하나 없었다. 상황을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또한 축구공 하나 사주면서 그런 엄청난 기대를 조건으로 거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도 이유였다.

 

그런 쓰라린 경험이 아이가 바라는 건 무엇이든 해주겠다는 고집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엄밀히 말해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어쨌든 그 경험이 되도록 현재 수준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면 그 범위 내에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려는 마음은 갖게 했을 것이다. 다소 비싼 레슨비에 당혹스럽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더군다나 아이가 포기하지 않으면 그만한 돈을 매달 지불해야하는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저런 부담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건 아이의 호기심이 줄곧 이어져가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 책은 아이의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정도와 강도를 확인하는 데 적절하다. 그리고 어느 시기에 어떤 악기를 권해 줄 수 있는지에 관한 실제적인 도움마저 주고 있다. 좋아하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연주가가 되는 건 분명 차이가 있다. 비록 아이가 연주가가 되지 않더라도 악기 하나쯤 제대로 다뤄줄 줄 알면 그것으로 족하다. 부모 앞에서도 좋고 나중에 아이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난 후 그 가족과 함께 음악을 즐겨도 좋겠다. 어떤 선택을 하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를 돌아보게 만든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 굳이 예로 든 음악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새삼 관찰 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오늘, 우리 아이는 어떤 악기에, 그리고 어떤 음악에 관심을 보이고 있을까, 더 넓게는 무엇을 하고 싶어 할까, 곰곰이 따져보는 건 어떨까? 짐작컨대 아이가 더욱 사랑스러워 보일 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