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위기
앨 고어 지음, 안종설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성을 무력화시키는 공포를 통찰력 넘치는 언술로 표현한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이성의 위기〉가 그 주인공입니다. 저자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입니다. '정보 초고속도로'로 유명한 앨 고어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지성을 갖춘 부통령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클린턴 재임 기간 동안 대통령을 완벽하게 보좌한 바 있습니다.

 

특히 클린턴이 1997년 '르윈스키 스캔들'로 논란에 휩싸이며 행정 공백이 빠르게 퍼져가는 상황에서 그의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그는 능수 능란하게 행정부처의 각종 업무를 누수 없이 처리했습니다. 아쉽게 부시에게 패배했지만 그는 준비된 차기 대통령 후보로서 명성을 확고히 한 보기 드문 인물이었습니다. 탐구 정신과 분석적인 시각, 상황적응적 리더십 스타일은 그를 여타 정치인과 다른 포스를 갖도록 추동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그는 민주당 내에서 힐러리에게 중량감과 입지 양면에서 밀린 듯 하지만 집필 활동을 통해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는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그는 부시 행정부가 공포를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9.11 사태를 왜곡하고 기세를 몰아 이라크를 침공한 데까지 나아간 것을 반이성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토론과 타협'의 미국적 모델을 파괴한 부시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성의 복원을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포에 눈을 감는 것이야 개개인의 자유일지 모르지만 그런 행위가 국민적 차원으로 확대되면 결과는 제2의 베트남전으로 명명될 것이 농후한 이라크전 같은 참혹한 전쟁으로 귀결되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그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대중 독재'의 한 유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독재자의 총칼 앞에 무릎을 꿇은 대중은 독재자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결탁함으로써 대중 독재라는 악마를 생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대중 독재라는 용어가 독재자를 옹호하는 형태로 오역되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선량한 대중일지라도 언제든 독재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구성인자로 변모할 수 있다는 함의에 시선을 예리하게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최근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정치·경제의 세계적 정글 속에서 자주 잊혀지는 '이성의 복원'에 눈을 돌리게 한 점에 있습니다. 비록 일각에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예로 든 9. 11 사태를 위시해 미국과 미국 국민이 보인 비이성적 태도를 과감하게 지적한 데서 미국의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의식 있는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하는 우리 현실에 비춰 상당 부분 질투 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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