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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매일 나에게 최면을 건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불행히도 이 최면이 잘 먹히지 않나보다. 요즘의 내 인생을 평가하면 행복하기 보다는 괴롭고, 재미없고,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내 직장과 건강, 멀쩡한 두 팔과 다리 등 감사한 일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난 대체적으로 밝은 편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인생이 힘들고 고달프다. 더 솔직해지자면, 이제 그만 멈출 수 있다면 멈추고 싶다.
30대에 들어서니 인생은 이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버티는 거다. 어느 정도 진로도 직장도 정해졌고, 그에 따라 내 연봉도 정해졌고, 그러므로 내 삶의 수준도 정해졌다. 큰 지각 변동이 없는 한, 난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 내가 사회에서 대접받는 일보다는 누군가의 밑바닥에서 설설 기어야 하는 일이 훨씬 더 많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보다는 부모의 재력에 의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좌지우지 되는 일을 수없이 보고 있다. 그래서 나도 안다. 나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보다는, 부모의 재력에 의해 할 수 있는 일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진다. 가능성과 희망이 점점 작아지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이제 로또를 맞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지금의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게다. 오히려 중간 중간 큰 사고나 터지지 않으면 다행일 게다.
주위를 둘러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주변 내 또래들 중 인생을 신나게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모두들 억지로 아침에 일어나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회사에 출근한다. 그냥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거다. 아예 공식이다. 회사는 재미없는 곳, 그저 돈을 위해 다니는 곳. 오히려 회사가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무슨 당연한 말에 괜히 토를 다냐는 면박이나 받을 뿐이다. 그리고 다들 한숨을 내쉰다. 회사 다니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당장 때려 치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나 정작 때려 치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백수로 무엇인가에 도전했을 때, 새로운 곳에서 30대를 신입 사원으로 받아줄 리가 만무하고, 그래서 실패한 다음에 재취업을 하는 것은 신입사원이 취업하는 것보다 몇 백배 더 힘들다. 경직된 취업 시장에서 30대는 무언가에 크게 도전하기 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30대들은 때려치지도 못하는 직장을, 매일 겔겔거리며 다닌다. 집은 언제 장만하나, 아이들 교육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아기를 낳고 맞벌이를 하면 아이 봐 주는 사람 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1억 모으기도 힘든 판에 몇 억, 몇 십억 씩 하는 집을 장만하기란 쉽지 않다. 에잇, 그래서 유학이나 가자, 그래서 몸 값을 좀 높여보자, 마음먹어 봐도 또 유학 자금이 만만치 않다. 등록금은 물론이고 생활비까지. 발버둥쳐도 발버둥쳐도 이제는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서민의 굴레'. 평생 대출금 걱정에 아이들 교육비에 노후 자금 걱정에 허리 필 날이 없는 쳇바퀴 같은 신세들.
그래서 우리들은 우.울.하.다.
그런데도 장영희는 희망을 노래하란다. 물론, 우리보다 형편이 더 안 좋은 사람들도 많다.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고 지긋지긋한 직장마저도 없어 노숙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보다 못한 이들을 보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것도 어찌 보면 비인간적이다. 그래서,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보면서 힘들 내는 일은 어쩌면 너무 잔인한 거 아닐까. 본인에게도 상대방에게도.
그래, 잠시 힘을 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잠깐의 최면일 뿐이다. 이 정도면 감사하지,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나도 내일은 더 행복하겠지, 주문을 외워 봐도 잠시 잠깐일 뿐이다. 조금만 차분하게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과 직면하면 오히려 이러한 최면은 현실도피를 위한 자기합리화다. 내가 지독하게 부정적인 사람이라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실제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 행복한 사람이 없다. 모두들 멀쩡하게 사는 것 같아도 조금만 이야기 해보면 '나는 우울해.'라는 말이 금방 튀어 나온다. 맛있는 음식을 먹건,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건, 친구와 수다를 떨건, 그들의 우울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데도 계속 희망을 노래하라고? 마치 정신병자 같다. 힘들어 죽겠는데 죽지는 못하니까 계속 괜찮다, 괜찮다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정신병자. 그러나 차마 미치지도 못하고 힘겨운 삶을 잊어버리지도, 벗어버리지도 못하는, 그래서 결국에는 삶의 의미도, 가치도, 소명도 잊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할 만큼 미쳐버리는 정신병자. 환각제를 마신 듯, 우리는 어쩌면 하루치 환각제를 마신 채 그 날 그 날을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 희망만을 노래하는 이 책이, 이 사회가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환각제를 마시고 그 힘으로 순간순간을 버텨가라는 우리 사회가 매우 불편하다. 더욱이 긍정적인 태도로 삶을 대하지 못하는 자들을 비난하며, 개인의 우울함을 순전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이 사회에 정말 욕지거리가 나온다. 꾸역꾸역 희망을 피토하며 외치면서 몸이 바스러지도록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것. 그러지 못하는 자들을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것. 희망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고달픈 서민들을 내리치는 채찍질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 모두에게 힘과 용기와 따뜻함을 주신 고 장영희 교수님의 책에 이렇게 막돼먹은 서평을 써서 죄송하다. 요즘 내 마음은 이렇게 까지나 팍팍한가 보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단어에 항상 긍정적인 의미만을 부여해야 하는 잔인함이 때론 힘겨울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내 팍팍한 마음이 조금 물렁해지면, 나도 희망을 붙들고 씩씩하게 전진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