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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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끝내준다. 재밌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생각도 못한 결말. 기가 막힐 정도의 재치. 번뜩이는 전개와 기발한 아이디어.

'도대체 내 두뇌는 뭐야? 기욤 뮈소에 비하면 내 머리와 생각은 너무 뻔하다. 대단한 반전에 속은 것 같기도 하고, 벙 찌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다. 허나 그만큼 신선하다.

톰은 빈민가에서 태어나 쓰레기 같은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친구 캐롤에게 힘을 줄 이야기를 만들면서 그 이야기로 한 순간에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다. 그러다 한 여자를 사랑하고 그녀를 잃으면서 한 순가에 폐인이 된다. 약물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하다 빌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다시 글도 쓰게 되고 명성을 되찾는다.

B급 모델에 불과했던 빌리도 밀러의 제안을 받아들여 톰을 만나고 그를 통해 새로운 자신의 능력을 발견해 대학에 진학하며 새로운 인생을 펼치게 된다.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 행복한 해피엔딩.

내 인생에도 이런 반전이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기회, 너무 행복해 잠도 못 들 정도의 인생역전!!! 예를 들면, 돈도 많고 잘 생기고 성격도 좋은 왕자님이 나타나 사랑에 빠진다든가, 갑자기 연예인이 돼 모두들 나에게 환호한다거나, 아니면 내가 구상한 사업이 대박이 나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게 된다거나, 로또에 당첨된다거나!!! 나에게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질까? 무료한 내 인생에도 드라마 같은 해피엔딩이 준비돼 있을까?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느끼는 것은 내 힘으로 안 되는 것들이 인생에는 너무 많다는 것. 그래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이 무능력하고 게을러 보이고 유치해 보이지만, 그 기도가 인생 굽이굽이마다 많은 힘이 된다는 것. 직업도 바꿔보고, 생각도 바꿔보고, 성격도 바꿔봤지만 드라마틱한 일들을 내 힘으로만 이뤄낼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기도한다. 신이여. 이런 기막힌 반전을. 영화 같이 짜릿한 해피엔딩을 나에게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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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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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자유'다. 그는 손 사이를 스치고 지나는 바람이었고, 무형의 힘찬 파도였다. 그에게 고정된 것, 정해져 있는 것은 없었다. 딱딱한 고체가 아닌 잡을 수 없는 공기요, 물이었다. 그런 그는 유연한 시각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았고, 일상적인 것도 특별한 것으로 여겼다. 호기심으로 작은 눈을 반짝였고, 본능에 충실했으며 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이 한 세상, 원 없이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러다, 죽었다.

나도 분명 '자유'를 꿈꾼다. 그러나, 조르바와 같은 자유는 아니다. 아무데서나 자고 얼굴을 시커멓게 그을리고 이빨도 빠지고 아파도 병원도 못가고 손은 거친. 이슬 맞아 떠도는 그런 자유는 내가 꿈꾸는 자유가 아니다. 말이 좋아 별 보며 숲 속에서 다람쥐들과 함께 잠드는 거지, 실제 해 봐라.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내가 꿈꾸는 자유는 누구에게도 굽실거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멸시받지 않고, 상한 감정을 숨기며 비굴하게 웃지 않아도 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고통 없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을 수 있는. 사치는 아니나 부족함 또한 없는. 그리고 어느 것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직업. 적고 보니, 집에서 큰 유산을 물려받지 않은 한, 전문직이어야 하는데. 전문직? 의사나 변호사 뭐, 이런 거? 그런 직종은 뭐 당당하고 누구에게나 당당할 수는 있지만 이를 지키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며, 잠 자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일에만 매진해야 하고, 그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가면들을 쓰고 살아야 하는지. 사진작가나 화가, 이런 직업이 좀 더 자유롭긴 하지만, 이들 직업은 다 인맥으로 성패가 나뉘기 때문에 인맥 관리에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럼 다시 자유와 멀어진다. 원점이다.

마냥 자유를 꿈꾸자니 불안하고 힘겨운 생활이 두렵고, 안정적인 자유를 꿈꾸자니 다시 답답한 현실로 뛰어들어야 하고. 이것 참 어렵다. 결국 내가 꿈꾼 건 허영심이나 허세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그러나 자유라면 모두 조르바처럼 불안정해야 하는 걸까. 조르바의 자유 vs 보장된 삶. 난 어느 쪽을 선택해야 이번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제 나는 조르바의 삶이 부럽지 않은,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된 그런 나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작은 안정을 쉽게 놓을 수 없는, 아니 이 안정을 잃을까 불안해하는, 그리고 그 사회의 틀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리고자 하는 그런 나이.

그러나 지금 조르바를 꿈꾸는 자가 몇이나 될까. 조르바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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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2011-01-23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본인이 결국 적어 놓긴 했지만,
이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파악하고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면
혁명가 되야하고(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문제로 해결하면 극단적으로 사회적 욕심을 버리는 선택을 해야겠지.
예를 들어 사회적 욕심을 많이 버린 종교인들 정도?

그런데 양쪽다 어렵다면 사회에 수긍해가면서 살아야지..
 
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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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책은 잘 읽지 않는다.  

이런 류의 책이라 함은... 굳이 읽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들, 우리가 알고 있어야만 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는 책을 말한다. 항상 꿈을 꾸어야 하고,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고, 빨리 성공하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야 하고, 좌절하기 보다는 희망을 가져야 하고, 우리는 너무 젊고 기회가 많으므로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고, 우리 자신은 각각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고... 하는 이런 내용들. 굳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고, 알고 있어야만 하는, 그래서 가끔씩 힘이 빠지고 잘못된 길로 가고 싶을 때 스스로를 다독이고 채찍질 할 수 있는 그런 말들. 이 정도는 혼자서도 생각해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이미 나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해 평소에 이런 책은 잘 읽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 충동적으로 이 책을 구입했다. 회사에서의 이런 저런 골치 아픈 일들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극복이 안 돼 뻔한 책에라도 의지해 보자, 뭐 이런 심정이었다. 뭐, 결과는 대만족이다. 다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고 2011년을 새롭게 구상할 수 있었다.  

 조금은 민망하고 부끄럽다. 뻔한 말들에 의지해야 하는 나의 여린 마음이, 뻔한 말들을 읽고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나는 나의 단순함이, 쉽게 무너지고 쉽게 극복되는 나의 가벼운 의지가, 참으로 민망하면서도 조금은 가엽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다 생각되고, 이렇게 단순하고 가벼운 내가 사랑스럽다.  

 청춘.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 내가 잊고 있던 단어다. 나는 지금 청춘을 살고 있는 걸까? 내 청춘은 어디까지일까? 나는 내 청춘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  

 한동안 내 열정과 내 꿈을 잊은 채 하루하루를 허비했다. 아니, 원없이 내 시간들을 낭비했다. 마음껏 잠을 잤고 마음껏 TV를 시청했고, 마음껏 늘어진 상태로, 내 시간을 탕진해 봤다. 그것도 뭐 꽤 괜찮았다. 방바닥을 뒹굴거리면서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안락함과 편암함을 느꼈고, 모든 긴장감으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잊어 버렸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망각했다. 그러다보니 하루하루가 그저 지겨웠고 권태로웠다. 이대로 내 삶이 고정된다는 생각이 나를 덮쳤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계획하고 도전하고 시도해야 삶이 변화되는데 멍하니 방바닥에 누운 채로 시간을 보내니, 내 삶이 변화될 리 없었다. 청춘이라는 말은 기억해 내지도 못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조금 창피하지만, 이 책의 뻔한 말들을 듣고 잃어버렸던 내 청춘을 찾았다.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겼고, 해야 할 일이 넘쳐나는 다이어리를 보며 다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자도 자도 지나지 않을 만큼 넘쳐났던 시간들이 이젠 부족하게 느껴지고, 잠을 쪼개서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다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늘어졌던 세포들이 다시 생기를 찾는 느낌이다. 이 조바심, 살짝 설렌다.  

 언제나 꿈을 꾸는 청춘이어야겠다. 늘 그 싱그러움을 잃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올해는 나의 청춘을 다해 노력한 것들이 많은 결실이 되어 돌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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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2011-01-20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떤 문제에 대한 정답이 있다면 그건 어쩌면 '뻔하고' '당연한 것'들이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뻔하고 당연한 것들이 통하지 않는 것이 세상이고..
모든 사람이 초등학교 도덕교과서 처럼 살면 정말 좋은 세상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과 같지..
그런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평생 살아가며 각자 풀어야 할 숙제들이고..

그리고 싱그러움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했지만.. 별로 싱그러웠던 적은 없던듯..;;
한 12년 전 정도에는 약간 싱그러운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 너에게 청춘이 갖고 있는'재기 발랄함'은 찾아보기 힘들어..ㄷㄷㄷ

옥이 2011-01-23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나 잘하시지!!! 뿡뿡!!!
 
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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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제목에 이미 암시돼 있다. 삶은 고독한 것이라는 걸.


먼저 삶. 삶은, 견디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들 그렇게 자신의 삶을 견뎌냈다.


누군가는 나무에 묶인 채 하루 종일 움직이지도 못하고 몇 년을 살았고,

누군가는 한 평생을 이루지 못하는 짝사랑에 매여 한숨으로 나날을 보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방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은 채 자신만의 세상에만 몰두했고

또다른 누군가는 동료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은 이 모든 사건들을 지켜보는 고통을 한 평생 감내해야 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다음은 고독. 고독이라는 단어가 꽤나 어렵고 엄숙하긴 하지만, 결국은 '혼자'라는 말이다.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아도 '혼자'라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혼자 있을 때면 심심할 때가 있다.

혼자 밥을 먹을 때면 난감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우두커니 거실에 앉아 TV를 보는 것도 지겨울 때가 있다.

괜히 말이 하고 싶을 때, 수다를 떨고 싶을 때.

그냥 아무나 내 옆에 있어 줬으면 하는 때도 있고, 그리고 추운 날이면 괜히 누군가의 따뜻한 손을 잡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럼 고독한 삶이 무엇인지는 알겠고... 그럼, '고독한 삶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 번째 방법. 단순해지기.

멍... 한 채, 정신나간 채로. 어떤 생각이나 고민도 하지 않고 진지하지 않기. 웬만한 일은 웃어 넘기고, 괜히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하는 미친 짓 하지 않고 그냥 맛난 거 먹고 친구들 만나고 수다 떨면서 유쾌하게 지내기. 무슨 보람 있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괜히 목표 세우고 노력하다가 실패하고 우울해 하지 말고, 그냥 하루 하루 출퇴근 하고 밤에 집에 들어와서 드라마 보고 가끔은 쇼핑도 하고 그렇게 지내기.


이게 마음이 안 든다면 두 번째. 그냥 견디기.

재미있는 일 따위는 찾지도 말고, 인생은 다 그저 그런 거라며 딱히 우울해 하지도, 특별히 기뻐하지도 말고 그냥 그대로 받아 들이며 견디기. 특별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지만 죽지 못해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러 그러려니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기. 딱히 살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딱히 죽을 용기도 없는 사람들에게 적합할 듯 하다.


마지막 세 번째. 목표에 집중하기.

그것이 돈이든, 성공이든, 일이든, 애인이든, 결혼이든, 아이든, 정신없이 무언가에 몰두하면 다른 잡념은 사라지는 법. 돈을 목표로 설정했다면 돈 버는 일에 여념이 없어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 지도 모를 테다. 통장에 쌓여가는 액수를 보며 울고 웃다보면 어느새 백년 중 몇 십 년이 후울쩍 지나가 있겠다. 두 번째 방법 보다는 이 방법이 좀 더 열정적으로 백년을 보낼 수 있겠다.

난 어떻게 나의 백년을 보내야 할까. 그보다 요즘 나는 어떻게 내 백년의 일부를 보내고 있는 걸까.

위 방법이 백년을 보내는 방법의 전부라면 두 번째 보다는 첫 번째나, 세 번째였음 좋겠다. 2010년의 끝자락에 와 있는 지금, 내 100분의 1을 잘 보냈는지, 또 다른 나의 100분의 1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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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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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나에게 최면을 건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불행히도 이 최면이 잘 먹히지 않나보다. 요즘의 내 인생을 평가하면 행복하기 보다는 괴롭고, 재미없고,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내 직장과 건강, 멀쩡한 두 팔과 다리 등 감사한 일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난 대체적으로 밝은 편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인생이 힘들고 고달프다. 더 솔직해지자면, 이제 그만 멈출 수 있다면 멈추고 싶다.


30대에 들어서니 인생은 이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버티는 거다. 어느 정도 진로도 직장도 정해졌고, 그에 따라 내 연봉도 정해졌고, 그러므로 내 삶의 수준도 정해졌다. 큰 지각 변동이 없는 한, 난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 내가 사회에서 대접받는 일보다는 누군가의 밑바닥에서 설설 기어야 하는 일이 훨씬 더 많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보다는 부모의 재력에 의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좌지우지 되는 일을 수없이 보고 있다. 그래서 나도 안다. 나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보다는, 부모의 재력에 의해 할 수 있는 일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진다. 가능성과 희망이 점점 작아지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이제 로또를 맞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지금의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게다. 오히려 중간 중간 큰 사고나 터지지 않으면 다행일 게다.


주위를 둘러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주변 내 또래들 중 인생을 신나게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모두들 억지로 아침에 일어나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회사에 출근한다. 그냥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거다. 아예 공식이다. 회사는 재미없는 곳, 그저 돈을 위해 다니는 곳. 오히려 회사가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무슨 당연한 말에 괜히 토를 다냐는 면박이나 받을 뿐이다. 그리고 다들 한숨을 내쉰다. 회사 다니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당장 때려 치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나 정작 때려 치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백수로 무엇인가에 도전했을 때, 새로운 곳에서 30대를 신입 사원으로 받아줄 리가 만무하고, 그래서 실패한 다음에 재취업을 하는 것은 신입사원이 취업하는 것보다 몇 백배 더 힘들다. 경직된 취업 시장에서 30대는 무언가에 크게 도전하기 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30대들은 때려치지도 못하는 직장을, 매일 겔겔거리며 다닌다. 집은 언제 장만하나, 아이들 교육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아기를 낳고 맞벌이를 하면 아이 봐 주는 사람 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1억 모으기도 힘든 판에 몇 억, 몇 십억 씩 하는 집을 장만하기란 쉽지 않다. 에잇, 그래서 유학이나 가자, 그래서 몸 값을 좀 높여보자, 마음먹어 봐도 또 유학 자금이 만만치 않다. 등록금은 물론이고 생활비까지. 발버둥쳐도 발버둥쳐도 이제는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서민의 굴레'. 평생 대출금 걱정에 아이들 교육비에 노후 자금 걱정에 허리 필 날이 없는 쳇바퀴 같은 신세들.


그래서 우리들은 우.울.하.다.


그런데도 장영희는 희망을 노래하란다. 물론, 우리보다 형편이 더 안 좋은 사람들도 많다.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고 지긋지긋한 직장마저도 없어 노숙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보다 못한 이들을 보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것도 어찌 보면 비인간적이다. 그래서,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보면서 힘들 내는 일은 어쩌면 너무 잔인한 거 아닐까. 본인에게도 상대방에게도.


그래, 잠시 힘을 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잠깐의 최면일 뿐이다. 이 정도면 감사하지,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나도 내일은 더 행복하겠지, 주문을 외워 봐도 잠시 잠깐일 뿐이다. 조금만 차분하게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과 직면하면 오히려 이러한 최면은 현실도피를 위한 자기합리화다. 내가 지독하게 부정적인 사람이라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실제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 행복한 사람이 없다. 모두들 멀쩡하게 사는 것 같아도 조금만 이야기 해보면 '나는 우울해.'라는 말이 금방 튀어 나온다. 맛있는 음식을 먹건,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건, 친구와 수다를 떨건, 그들의 우울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데도 계속 희망을 노래하라고? 마치 정신병자 같다. 힘들어 죽겠는데 죽지는 못하니까 계속 괜찮다, 괜찮다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정신병자. 그러나 차마 미치지도 못하고 힘겨운 삶을 잊어버리지도, 벗어버리지도 못하는, 그래서 결국에는 삶의 의미도, 가치도, 소명도 잊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할 만큼 미쳐버리는 정신병자. 환각제를 마신 듯, 우리는 어쩌면 하루치 환각제를 마신 채 그 날 그 날을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 희망만을 노래하는 이 책이, 이 사회가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환각제를 마시고 그 힘으로 순간순간을 버텨가라는 우리 사회가 매우 불편하다. 더욱이 긍정적인 태도로 삶을 대하지 못하는 자들을 비난하며, 개인의 우울함을 순전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이 사회에 정말 욕지거리가 나온다. 꾸역꾸역 희망을 피토하며 외치면서 몸이 바스러지도록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것. 그러지 못하는 자들을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것. 희망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고달픈 서민들을 내리치는 채찍질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 모두에게 힘과 용기와 따뜻함을 주신 고 장영희 교수님의 책에 이렇게 막돼먹은 서평을 써서 죄송하다. 요즘 내 마음은 이렇게 까지나 팍팍한가 보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단어에 항상 긍정적인 의미만을 부여해야 하는 잔인함이 때론 힘겨울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내 팍팍한 마음이 조금 물렁해지면, 나도 희망을 붙들고 씩씩하게 전진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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