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 맑음
오늘의 책 : 그 날은 정말 쇼비뇽 블랑같은 오후였어. 고양이 카프카의 고백.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공교롭게도 요즘들어 읽은 책들이 다 마음에 안든다. 내가 요즘 약간 지쳐서인지도 모르겠다. 웬지 몸이 안좋거나 상황이 좋지 않은 즉, 꽁한 기분에 책을 읽으면 그 내용에 트집을 잡게되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평소라면 좋아할 내용도 괜스리 삐딱하게 보게 된다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고양이 책 2권이 약간 영향을 받은것 같다. 평소라면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인데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특히나 고양이 카프카의 고백은 평소 내가 좋아하는 이우일씨의 작품인지라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는데 약간 시시했다. 얼마전에 읽은 고양이가 쓴 원고을 책으로 만든 책이라는 책처럼 이 책도 고양이가 화자의 입장에서 주인, 즉 진짜 화자인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형식인데 앞에 것을 읽었을때도 좀 시시하다 싶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좀 시시했다. 다만 여전히 그림 부분은 좋았다. 촌철살인의 유머가 있달까. 간단한 그림 한 페이지가 긴 내용보다 훨씬 마음에 들어서 역시 이우일씨의 내공은 죽지 않았다 싶었다. 이우일씨의 만화는 언제봐도 재밌어서 좋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는 눈먼 고양이 호머를 데리고 오면서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작가의 글인데 좀 오버다 싶었다. 삶이란 그렇게 쉽게 바뀌는게 아니고 특히나 애완동물 한 마리로 그렇게까지? 내가 약간 부정적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동물에게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는 책은 약간...뭐랄까, 닭살스럽달까. 여튼 작가 자신의 주장으로는 자원봉사단체에서 근근히 작은 수입으로 살아가던 자신이 눈먼 고양이 호머를 입양하면서 그 고양이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인생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고 한다. 그 결과 승승장구하여 뉴욕에 와서 작가도 되고 유망한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뭐, 그리하여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는데 내 심사가 꼬여서인지 좀 웃겼다. 짐승들이란 눈이 멀었건 다리가 없건 자기 연민의 감정따윈 가지지 않는 법이다. 거기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것은 과도한 의인화가 아닐까 싶다는게 평소 내 생각이기도 했던지라 그런 부분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크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 책이다.
그 날은 정말 쇼비뇽 블라같은 오후였어는 실패작이다. 사실 평소에 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와인에는 뭐랄까 약간 젠체하는 것같은 이미지가 있다. 쉽게 다가서기 힘든 그런 것 말이다. 내 고민이나 사정따윈 상관없이 도도하게 잘난척하는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술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술에서 가지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와인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내게는 와인은 항상 부담스러운 술이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지나치게 많은 종류와 빈티지, 먹는 방법이 어떻고 마리아주가 저렇고 하는 둥의 얘기들. 무슨 술을 공부까지 하면서 먹느냐는게 내 솔직한 감상이다. 사회적 지위가 있으면 와인쯤은 알아야 한다는 요즘 세태도 이런 느낌에 한 몫한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좋아하는 내용이 아니다. 내용이 있는 글이 아니라 그저 그때그때의 자신이 감정을 적어놓은 듯한 글인데 내가 좋아하지 않는 형식의 글이라 역시나 실패구나 싶었다. 샀을때부터 약간 그럴것 같다 싶기는 했었지만 역시나. 다만 책 자체는 참 예쁘게 잘 만들어져있다. 내용과 그림, 종이의 질감, 책의 크기, 색감등이 한데 잘 어울려진 정말 편집이 잘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확실히 요즘 책들은 옛날보다 예쁘다. 편집도 잘되어 있고 책의 요소요소가 잘 어울려진, 내용만이 아니라 책이라는 하나의 물건의 형태로도 훌륭한 책들이 더러 눈에 보인다. 그런 점에서는 참 훌륭하게 만든어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