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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마 이야기
나카무라 후미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3월
평점 :
스포일수도....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되는 185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무렵까지가 이 책의 배경이다. 부모도 걱정해줄 가족도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살던 아마네는 첩자로 잠입했다 들켜서 큰 상처를 입고 한 문신사의 집앞에 쓰러진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문신사 바이코는 자신이 평생 지켜왔던 금기의 문신을 마지막으로 새겨보고자 하여 아마네에게 불사의 문신을 새긴다. 깨어나보니 죽지 못하는 몸이 된것을 알고 화를 내지만 정작 바이코는 신귀새김은 본인도 간절히 바라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못하는 법이라며 진짜 죽고 싶다면 지금 당장 신귀를 없애주겠다고 한다. 이리저리 부평초처럼 사는게 지겨워 죽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당장 죽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결국 아마네는 숙명처럼 호쇼 염마라는 새로운 이름과 문신사로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사람일때도 어딘가 칠칠맞고 단정치 못하던 아마네는 염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기실 본질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어딘가 모자라는 사내다. 그런 그를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켜보며 평생 곁을 지켜주는 두 명의 사람이 있다. 한 명은 그가 금주의 신귀를 새겨줌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해준 노부마사이고 다른 한 명은 친구가 남긴 딸인 나쓰다. 늙지 않는 염마에 비해 보통 사람인 나쓰는 처음에는 여동생으로 곧 누나로 엄마로 할머니로 늙어간다.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염마는 불사의 저주를 나쓰에게 지울 생각이 없고 나쓰 역시 변하지 않는 존재인 염마에게 자신의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그저 평생 옆에서 머물기만 한다.
사실 염마는 그다지 긴 세월을 산것도 아니다. 고작해야 백년 남짓이다. 보통 사람도 그 정도야 사니 늙지 않는다는것만 빼면 사는게 지겨운건 아니다. 염마가 두려워하는건 고독이다. 아마네였을때에도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다는 두려움에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 결국 이런 몸이 되고 만 사내. 이제 곧 자신과 평생을 함께 한 제일 소중한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 다시 혼자가 되고 말거라는 사실이 두려운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밝히지 않은채 평생을 보낸 나쓰와 염마지만 이제 끝이 보이는 순간에 염마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기로 한다. 아마도 곧 나쓰와 노부마사는 염마의 곁을 떠나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평생의 숙적이랄수 있는 야차도 염마의 곁을 떠나는 일을 없을것이다. 불사의 생을 가졌지만 단지 그것뿐인 사내. 강인한 정신도 정신도 없이 그저 떠밀려 다니기만 하다 백년이나 지나서야 뭐 좀 깨닫는게 있는것 같은데 앞으로는 어떻게 좀 제대로 살아볼지 모르겠다. 결론을 내지는 않았지만 나름 해피엔딩을 짐작케하는 마지막이다. 제법 두꺼운 책인데 술술 재미있게 잘 넘어간다. 주인공은 전혀 멋지지 않고 주위 사람들은 다 멋지게 나오는게 이 책의 묘미라고나 할까. 도대체 죽지 않는다는 점과 문신기술을 빼면 아무 재주가 없다. 칠칠맞은데다 징징거리는 한심이인데도 나름의 매력이 있달까. 큰 기대없이 사서인지 아주 재미있게 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