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멀쩡한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권유하고 싶단다. 그속에서 조금쯤 미쳐보라고. 나는 작업실은 가지고 싶지 않다. 그도 작업실에서 무슨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작업이라는 이름은 내게는 일의 이미지를 너무 짙게 풍긴다. 작업실이라고 이름붙은 곳에서는 무언가 일을 해야만 할것같다. 저자가 말하는 그런 공간으로 가장 비슷한 곳이 내게는 아마도 서재일것 같다. 나는 음악에 별 관심이 없다. 더 자세히는 음악을 듣는것에 별 관심이 없다. 음악이란 내게 그야말로 백뮤직의 의미를 가진다. 생각할때, 산책할때, 멍할때 방해되지 않게 뒤에 깔리는 그런 것. 조금이라도 진지한 무언가를 하려면 없어야 하는 것. 그런 주제에 음악에 대한 책은 참 좋아한다. 오디오에 대한 얘기도 좋아하고 턴테이블에 대한 얘기도 좋아한다. 나는 내가 하지않는 또는 하지 못하는 모든일을 책으로 대체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도 내가 싫어하는 일조차도 나는 책으로 경험하려하고 있다. 그래서 여행책을 사고 음악에 대한 책을 사고 음식에 대한 책을 사고 소설책을 산다. 누구나에게 이런 것이 있다고 본다. 그가 음악에 미쳐있듯이 책에 미친 사람, 운동에 미친 사람, 미식에 미친 사람. 그런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의미를 이해하리라고 본다. 없다면? 글쎄다. 평생을 번 돈을 스피커에 쏟아붙는 사람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 역시 주위로부터 책을 왜사냐는 핀잔을 듣고 사는 사람이다. 특히나 만화책은. 여행서 산 책으로 여행을 갔으면 못가도 유럽은 갔겠다는 소리도 수월찮게 듣는다. 아마 내가 산 책값이면 세계일주도 가능하리라.(엄마에게는 비밀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래서 나는 그가 턴테이블 샀더니 앰프사고 싶고 그러고나니 스피커사고 싶더라는 심정이 이해가 갔다. 피식 웃음도 나고 재미도 있었다. 알아듣지 못할 전문 용어들도 마치 책 제목 읽듯이 읽었다. 누군가에게는 작업실이, 누군가에게는 서재가, 혹은 영화감상실이나 카페같은 그런 곳이 모두에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