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ien Rice - My Favourite Faded Fantasy
데미안 라이스 (Damien Rice) 노래 / 워너뮤직(WEA)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조명이 꺼지고, 숨죽인 관객들이 가득찬 올림픽공원 잔디광장에는 빗소리마저 잦아들고 오직 그의 목소리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2013년 서울재즈패스티벌의 피날레는 와인 한 병을 다 비워버린 데미언 라이스가 장식했다. 거세게 내리는 비에 모든 관객들은 젖어가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가 이미 관객들의 마음을 모두 적셔버린 탓이었다. 


그 기묘한 '공명'의 순간에, 모두들 조금씩은 눈시울이 가득 차오를 무렵 데미언 라이스는 떠듬 떠듬, 예의 그 신중한 말투로 감상을 전했다. '아일랜드의 어느 한 구석에서 자라온 저로서는 한국에서의 지금이 마치 꿈과 같습니다. 이 먼 곳 한국에서 제 음악을 듣기 위해 비를 맞으며 사람들이 가득 찬  이 순간이 무척 특별한 순간이네요. Thank you very much' . 관객들에게도 무척이나 낯선 초현실적인 순간이었으리라.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만큼, 그의 음악 외 모든 소리는 사라졌고, 그 순간을 공유하는 모든 이가 마치 하나가 되어버린 느낌.   


그래서였을까, 이듬해 데미언 라이스는 한국을 또 찾았다. 똑같은 공간, 비슷한 계절에 한국을 찾아서는 또 와인을 한 병 다 비우며 관객들 중 몇몇을 무대에 불러들여 듀엣을 시도하는 등, 한 발자국 더 다가서는 행보를 보였다. 그 자리에 울려퍼진 그의 신곡 'The Greatest Bastard'.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감성어린 목소리와, 거침과 부드러움을 넘나드는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은 더욱 깊어졌다. '드디어 이번에 새 앨범이 나온다'라며 수줍게 미소짓는 그의 기쁨을 우리도 안다. 2013년 기묘하게도 미소지으며 장대비를 맞고 있던 수천의 관객들은 2년여를 기다려 왔었다. 그 기다림이 이제야 결실을 맺었다. 


제이슨 므라즈만큼은 아니지만, 데미언 라이스도 친한파 뮤지션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홍대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는 소문은, 이미 많은 SNS를 통해 알려진 사실. 자그마한 체구, 어쿠스틱 기타와 감성을 자극하는 목소리는 떠나간 김광석을 떠올리게도 한다. 쌀아저씨라는 애칭도 그런 친근함의 표시. 그렇게 가까웠던 한국의 팬들에게는 몇 년 만의 그의 앨범 출시 소식은 쌀쌀한 가을날을 데우는 희소식이었으리라. 


11월. 아직 가을바람이 가시기 전에, 마음을 적시는 그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떠나 내 귀에 닿길. 그리고 봄이 되면 자그맣고 귀여운 모자를 쓴 한 아저씨가 기타 하나 달랑 들고 또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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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늑대 2014-11-0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리뷰가 무척 멋지게 서술돼 있네요. 소요님의 리뷰를 보니 데미안 라이스란 음악가가 어떻다라는 게 바로 와닿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더욱 궁금해지네요. 리뷰 잘 봤습니다!

말레나 2014-11-07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앨범이 나온지도 몰랐다가 우연히 들어와 소요님 리뷰를 읽으니
한참 때 데미안라이스를 좋아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 마음이 싱숭생숭 해지네요.

얼른 새 앨범도 찾아 들어봐야겠네요. ^^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